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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의 퍼스펙티브] 미·중은 기술전쟁 본격화 … 한국은 강 건너 불구경

무역전쟁 
지난 2월 평창올림픽 개막식의 겨울밤 하늘을 수 놓았던 새떼의 눈부신 비행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새가 아닌 드론이었다. 고공 촬영의 개인적 용도부터 택배, 농약 살포, 스포츠 중계, 영화 제작, 재난 구호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드론. 세계에서 드론 최강자는 누구일까. 중국 창업 기업인 DJI이다.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석권하고 있는 DJI의 드론을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드론 비행 과정에서 교환되는 비행 장소, 비행시간 등 정보들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4월 하순 중국 2위, 세계 4위 통신장비업체 중국 ZTE가 미국 정부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향후 7년 동안 미국산 제품을 ZTE에 판매 금지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미국이 경제 제재를 하던 이란과 수상쩍은 거래를 하다 발각된 ZTE가 미국 정부의 시정명령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ZTE의 주가는 폭락했다. 파산 위협까지 몰린 ZTE는 경영진 교체와 엄청난 벌금 납부를 조건으로 제재를 피해가려 한다. 위기는 진행형이다.
 
며칠 후 로이터통신은 세계 최대 통신망 장비업체인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조사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ZTE보다 더 엄격한 조치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곁들였다. 빅데이터 기반의 4차산업혁명을 구현하는 핵심 전송수단이 될 5G 통신망 구현에 총력을 기울이는 ZTE와 화웨이로서는 미국산 장비와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 미국의 제재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가속하는 미·중 첨단 기술전쟁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국의 중국 견제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2015년 가을 미국 LA 공항으로 입국하던 중국 과학자가 현장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됐다. 미국 유학을 끝내고 미국 기업에서 일할 때 안보에 민감한 정보를 중국으로 유출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랄 수 있는 구글·아마존·페이스북은 중국에서 철저하게 차단·봉쇄되고 있다. 대신 중국은 그들의 구글·아마존·페이스북을 만들어 냈다.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가 바로 그들이다. 중진국 수준에 도달한 13억 중국 시장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중국 기업에만 활동 공간을 허용한 디지털 산업에서 중국은 세계 최고의 창업 기업을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중국은 더는 짝퉁·싸구려를 만들던 중국이 아니다. 1978년 중국의 개혁 개방으로 선회했던 중국의 ‘이념보다는 실용’의 최전진 실험기지였던 선전은 이제 세계 IT 기업들의 메카가 되었다. DJI·ZTE·화웨이·텐센트가 자리 잡은 선전은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한적한 어촌이던 선전은 40년 만에 200m가 넘는 초고층 빌딩이 10개(중국 최대)가 넘는, 인구 1200만 규모의 초거대 혁신창업 도시로 변모했다. 경제 규모에서 홍콩을 앞질렀다는 선전은 창업과 혁신의 열기 속에 매일 아침을 연다.
 
세상은 새로운 기술 변화의 변곡점에 서 있다. 빅데이터와 디지털 기술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융합되면서 상상 속에 있었던 것들이 현실 세계로 들어오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등 4차산업혁명으로 명명된 역사적 변곡점에서 중국은 있는 힘을 다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중국은 이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다. 19세기 후반 서세동점(西勢東占)의 거센 물결 속에 삼켜졌던 중국의 ‘150년 굴욕’의 세월을 끝낼 수 있는 순간을 잡았다고 그들은 판단한다. 78년 이후 지금까지의 경제 실험이 추격전(따라잡기)이었다면, 역사의 커브 길로 접어든 이 순간 이제는 추월하여 전세를 뒤집으려고 한다.
 
임기 제한을 철폐한 시진핑 주석은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이란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 목표 실현의 핵심은 기술 대국 중국이다. 중국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세계 최강 선진국을 실현한다는 중국몽(中國夢)의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미 중국은 ‘제조업 2025’란 목표를 설정하고, 기술 자립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 추월의 아련한 기억
 
기술 변화기는 새로운 승자를 만들어 냈다. 90년대 정보통신 기술혁명은 한국을 IT 강국으로 탄생시켰다. 80년대 후반 IT 개도국이었던 한국은 디지털 이동통신으로의 변화 시기를 선진국 도약의 계기로 활용했다. 우편배달과 전화 사업을 해 오던 체신부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했지만, 변화를 기회로 활용하는 정부 능력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싱크탱크에 청사진을 그릴 것을 주문했다.
 
독점과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는 기회를 포착할 수 없다는 인식이 모였다. 민간의 창의와 활력을 도입하기로 방향을 정하고 경쟁 도입, 개방, 자율화의 큰 원칙을 세우고 규제 개혁과 민영화를 추진했다. 이런 청사진 아래에서 전화 사업에 경쟁을 도입하고, 민간 사업자들이 이동전화시장에 진입했으며, 전국을 연결하는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축됐다.
 
20세기가 끝날 때 세계는 한국을 IT 최강 선진국으로 칭찬하기 바빴다. 당시의 추진 전략은 철저한 ‘불균형 발전’ 전략이었다. 다른 경제부처는 IT에서 번 돈을 그들도 같이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의지를 넘을 수 없었다. 싱크탱크와 민간이 참여하는 연구개발 추진 체계는 한국의 IT 기술과 역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이때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삼성은 전자제품에서 소니를 추월하고, 통신에서 에릭슨과 노키아를 누를 수 있었다.
 
지금의 중국을 보면 그때의 한국이 떠오른다. 중국은 기술 변화기라는 변곡점에 강력한 추진 체계를 갖췄다. 미국의 견제를 뚫고 중국은 기술 굴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최대 강점은 8억의 인터넷 사용자들과 그들이 생산해 내는 빅데이터이다. 포털 검색, 온라인 쇼핑, 음식 배달, 차량 호출, 모바일 결제 등으로 축적되는 빅데이터는 중국 기업들에 보물창고가 됐다.
 
중국, 시간의 축적 따라잡으려 해
 
중국의 구글인 바이두가 3년간 AI 인재 10만 명을 키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이런 기반에서 나온다. AI 분야에서 미국에 뒤진 중국이지만 2030년 AI 세계 1위라는 목표가 공허한 구호만이 아닐 듯하다. 중국은 자국 시장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규모와 빈도의 실험으로 선진국의 앞선 경험에 필적하려는 의도적인 시도를 해 왔다.
 
서울대 이정동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간의 힘으로 시간의 축적을 따라잡으려는” 국가적인 전략을 추진해 온 것이다. 미국의 견제로 중국의 추격 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중국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DJI는 6개월이 멀다 하고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연구개발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붓고 상상을 초월하는 인센티브로 동기 부여를 하지만 과감한 시도를 가능케 하는 규제 환경이 배후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선전의 DJI 본사 앞 인파로 득실거리는 광장은 시험 비행하는 드론으로 넘쳐난다.
 
한국에서 드론 사업을 시도해 본 사람들은 한국의 규제 환경이 얼마나 끔찍한지 안다. 시험 비행을 위해 요구되는 수많은 허가를 받아 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면 “내가 왜 이 짓을 해야 하지? 중국산 드론은 너무나 매력적인 가격으로 이미 시장을 홀리고 있는데”라는 의구심에 사업을 포기한 창업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대중국 기술 전략 수립돼야
 
한국의 드론 좌절은 산업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IT 강국 한국을 만들어 냈던 ‘자강과 혁신’의 추진 체계는 사라지고, 이젠 희미한 옛 추억이다. 중국의 질주는 놀라운 기세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중국에 기술 추월을 허용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그때 가서 중국 기업에 지분 투자나 하고 주식이나 사면서 만족할 것인가.
 
지금 한국 정부는 4차산업혁명이란 역사적 변곡점에서 길을 잃은 듯하다. 강력한 경쟁 상대인 중국은 질주하는데, 한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가하다. 중국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해외 시장에서 기업사냥, 인재 사냥에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제도적 장치를 내세워 강력한 중국 견제에 나섰지만, 한국은 중국 기업들에 인재도 빼앗기고, 그 인재와 함께 설계도도 넘어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중국의 외국기업 차별에 대한 국가 전략도 희미하다.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약속을 믿고 중국에 공장을 세운 삼성SDI·LG화학은 기술력이 훨씬 뒤떨어지는 중국 배터리 업체에 시장을 빼앗겼다. 이런저런 규제를 내세우는 중국 정부를 감당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는 것조차 주저해 왔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의 하나인 배터리 기술의 우위를 국가 차원에서 유지하려는 국가 전략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에 진출하는 중국 기업과 기술에 대한 국가적 정책도 실종 상태이다. 중국산의 저가 물량 공세에 싸다고 무조건 쓰다간 톡톡히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전략적 고려를 정책 당국은 하고나 있는지 알 수 없다. 안방 시장을 무기로 세계 최대 통신기업이 된 화웨이는 오래전부터 한국 기간통신망에 그들의 장비를 판매하려고 공들이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이 요란하게 울리는 화웨이 경계경보는 한국에 없다.
 
중국을 시장으로만 간주하는 어설픈 기회론으론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경쟁력만 있으면 문제없다는 기술 만능주의 역시 본질을 호도한다. 우물쭈물하다간 한국은 중국에서 기회도 잃고 무시당하는 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그 우려를 불식하려면 대 중국 기술 경쟁 전략 수립부터 먼저 세워야 한다. 그 전략은 산업현장과 통상·안보·외교가 모두 연결되는 청사진이어야 한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통상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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