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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왜 ‘귀양가라’는 말이 반가웠을까

[김환영의 책과 사람] (13) 《다산학 공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다산을 2018년에 공부할 이유는?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썩어 문드러진’ 나라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다산이 절실한 영감 제공
 
다산 사상의 양대 분과는?
나를 다스리고 닦는 경학
세상에 봉사하는 경세학
 
다산의 경고와 꿈은?
‘지적 수준만 높은’ 소인배들이 나라 망쳐
공정한 나라 만들어야 나라다운 나라로 발돋움
 

다산 정약용(1762~1836)은 40~57세에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5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귀양 가게 됐지만, 그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나는 겨를을 얻었다. 하늘이 나에게 학문을 연구할 기회를 주었다”며 기뻐했다.  
 
다산학 공부

다산학 공부

《다산학 공부》 박석무, 송재소, 임형택, 다산연구소 엮음, 김수경, 김언종, 김태영, 김태희, 김호, 방인, 백민정, 이광호, 이영호, 이은호, 한형조 지음, 돌베개
 
《다산학 공부》라는 책이 올해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을 맞아 출간됐다. 다산학 연구자 14분이 투입됐다. 일반인을 위한 ‘다산 입문서’다.  
 
《다산학공부》의 반은 다산의 경학(經學), 즉 다산의 사서육경(四書六經) 연구에 대한 연구, 반은 다산의 경세학(經世學)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을 총괄 기획한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을 만났다. 다음이 인터뷰를 편집, 요약한 결과다.  
 
- 오늘날 다산을 연구해야 할 뭔가 절박한 이유가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다산이 자기가 살던 시대를 부패한 시대로 인식한 것이다. 좀 과격하게 이야기한다면, ‘썩어 문드러졌다’는 부란(腐爛)이란 말이 있다. 다산은 ‘이 썩고 문드러진 나라를 그대로 두면 나라가 망한다’고 인식했다.  
안 망하려면 이 부란한 세상을 뜯어고쳐야 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썩어 문드러진 적폐들을 뜯어고쳐야 된다는 뜻이다.
그 동안의 쌓인 불공정하고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부패의 구조를 뜯어고쳐서 정직한 나라, 깨끗한 나라, 좋은 나라로 만들어 보자, 이것 아닌가.
다산이 주장했던 논리들을 200년 후 오늘로 오버랩 시켜 봐도 부족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없다. 당시 다산은 당연한 이야기를 했고, 지금도 다산의 이야기는 너무도 당연하게 들린다.
부패를 막고 여러 가지 제도를 바꿔서 나라다운 새로운 나라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우리는 다산의 《목민심서》라든가 《경세유표》의 기본적 논리를 다시 검토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대로 실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산을 원용하고 긍정적인 내용을 다시 구현해 보고 새로운 논리를 첨가할 수 있다.
‘한번 좋은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다산의 생각과 저희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다산 공부를 다시 좀 해보자! 하는 논리가 나왔다.”
 
- 다산은 왜 사서육경을 공부했는가?  
“사서육경은 인간이 되는 길을 찾는다. 요즘으로 말하면, 인성교육이다. 인문학이다. 어떻게 인격자가 되고 사람다운 행위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인간으로 만들어 줄 것인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고 하지 않는가? 수기(修己)하는, 나를 다스리는, 나를 닦는 학문이 경학(經學)이고, 치인(治人) 하는, 남에게 봉사하는 게 경세(經世)다.  
지금 우리에게는 지적 수준이 높고 능력도 뛰어나고 아는 것도 많지만, 인격 수양이 안 돼 나라를 망치고 세상을 그르치는 소인배들이 많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사람다운 일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려고 잘못된 판단을 한다.
이를 고쳐주려면 결국 수기의 학문을 해야 하는데, 그 당시 교과서는 사서육경이었다. 오늘의 우리는 사서육경에 비할만한 그런 학문적 역량으로 우리 인격을 수양해야 한다. 그게 우선이다. 그게 본(本)이다  
수기하고 나서 치인을 하려면, 경제학, 정치학, 공학 같은 것을 통해서 인류의 삶을 넉넉하게 만들고 풍부하게 만드는 경세학을 해야 한다.
근본은 사람됨(수기, 경학)에 있고, 각론은 ‘잘 먹고 잘살고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치인, 경세학)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 두 축으로 우리가 이번에 《다산학 공부》라는 책을 만들어 냈다.”
 
- 다산은 대체로 성선설(性善說)의 입장을 취했는가?
“기본적으로 그렇다. 유교의 기본은 ‘성선이냐 성악이냐’로 나뉜다. 같은 유교지만 순자는 성악이고, 양웅 같은 사람은 ‘성악혼재설’이다. 다산은 순자도 양웅도 잘못 생각했다는 입장이었다. 사람의 기본은 선하다. 하지만 세력상, 어떤 때는 세력에 따라서 인간은 악해질 수도 있고, 선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산은 난선이악(難善易惡), 착하기는 어렵고 악하기는 쉽다고 했다. 형편, 환경에 따라서 그렇다는 말이다. 인간의 본질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 청렴은 다산의 사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아, 내가 청렴해야지, 청렴해야지’하는 어떤 개인적인 차원도 있지만, 과도한 아파트 가격이나 과외비 부담 같은 국가나 사회의 원인, 구조가 개인의 청렴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목에서 다산의 위대함을 우리가 발견하게 된다. 요즘 말로 한다면, 성리학자들은 ‘인문학적 소양만 제대로 갖추면 인격자가 되고 만사가 해결된다’는 식이다. 다산은 인문학적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 치인지학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제도와 법을 만들고, 관행을 새롭게 세워야 하고, 현장에 있는 것을 고치고 바꿔 변화를 일으켜야 부패할 수 없는 사회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그는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를 썼다.  
돈의 유혹이나 권력의 압력이 재판에 가해지면 엉터리로 재판할 수가 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그게 《흠흠신서》다. 재판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 재판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이게 흠흠신서의 기본 논리다.  
경세유표는 ‘신아지구방(新我之舊邦)’이다. 우리들의 오래된 날을 한번 새롭게 만들어보자. 이를 위해 우리의 제도를 바꾸자. 돈 먹는 사람은 다시는 세상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만들어주자.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엄청난 형벌을 받게 하자.  
인간의 성선설만 믿고도 세상이 된다는 게 성리학인데 다산은 그 두 가지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제도적 변화, 법률적 변화, 사회 모순의 해결을 통해서 인간의 청렴성을 유지해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좋은 세상이 온다. 인간의 성품은 착하니까 가만히 놔두면 좋은 세상이 된다?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발견한 분이 다산이라고 우리가 본다.”  
 
- 오히려 유배를 갔기 때문에 엄청난 업적을 남기셨는데…. 유배가 그렇게 오래 안 풀린 이유가 있는지.
“다산이 활동한 시대는 정조 정권이었다. 정조 정권은 다산같이 상당히 진보적인 인재들을 활용했는데  정조가 돌아가시고 순조가 들어선다. 그것도 아주 어려서. 11살에 순조가 집권하게 되는데 외척이나 궁중에 있는 즉 말하면 대왕대비, 정순대비라든가 이런 분들이 섭정하면서 정조 시대의 개혁적 논리는 완전히 깔아뭉갰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18년이었다. 
18년 동안 계속 다산의 논리를 반대하는 입장이 집권했기 때문에 귀양살이했다. 18년 후에 풀어준 것도 다행이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으니까. 유배지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때 좀 개명한 사람이 몇 사람 있었다. 그래도 ‘이제 귀양살이를 할 만큼 했으니까 풀어주자’는 사람이 있어서 풀려 나온 것이다.  
유배지에만 있었더라면 책을 완전히 정리할 수가 없었다. 18년 동안 초고로 만들어 놓은 것들을 집에 돌아와서 더 많은 자료를 토대로 교정하고 가필하고 정리할 기간이 주어진 것이다.  
유배지 18년은 저술기, 돌아가실 때까지 57세에서 75세까지 18년은 정리기였다. 인생도 정리했지만, 저술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그 36년 기간이 오늘의 다산을 있게 만들어 줬다.  
그래서 ‘유배를 갔으면 어쩌고 안 갔으면 어쩌고’ 하는 논란이 나왔다. 유배 안 갔으면, 정승 판서는 했을 수 있을망정 저서는 안 나왔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점에 대해서 다산을 제일 잘 아는 네 살 위의 형, 정약전이 아주 정확히 적어놨다. 정승판서를 못해서 경륜을 펼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요즘 시국에 큰 변화가 있었겠느냐. 영구토록 이 나라의 미래가 잘 될 수 있는 저술을 남김으로써 유배는 오히려 불행이 아니라 다행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고 정리했다. 이게 다산을 정리하는 말 중에 참 중요한 이야기다.”  
 
- 마지막으로 강조하실 말씀은?
“다산은 28세에 벼슬을 시작하면서 각오를 시로 읊었다. “둔졸난충사(鈍拙難充使)”. 나는 둔하고 졸렬해서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제대로 역할을 하지는 못할 사람이다. 그러지만 나는 각오하는 바가 있다. 하나는 공(公) 하나는 염(廉)이다. 공정하고 공평한 이런 정치, 이런 생활. 그다음이 청렴. 이 두 가지 글자로 내 일생을 규정하고 확정 짓고, 내가 그것도 적당히 하는 게 아니라 온 정성을 바쳐서 공렴의 세상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가 아직 탁월한 어떤 일류 국가,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없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고 청렴하지 못한 것 때문에 그렇다.  
이제는 정권도 바뀌었고, 적폐도 청산한다고 떠들어대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고 한다.  
다산의 염원인 공과 염. 이 두 가지가 좀 제대로 실현되고 실천되어 빛을 발하는 세상이 되면, 다산도 지금 지하에서 눈을 제대로 감으실 것이다. 우리나라도 좀 괜찮을 나라로 한 발짝 발돋움해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요새도 신문, 텔레비전을 보면. 계속 돈 먹고 들어간 고위공직자 이야기가 군데군데 나오고 있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보지만, 아직도 근절이 안 됐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공직자들을 신뢰할 수가 없다. 신뢰하지 않는 한, 믿어주지 않는 한, 정치가 제대로 갈 수가 없는 거다. 공렴으로 가자. 그게 제가 할 마지막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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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