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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의 품격?···어느 전과21범의 철칙 3가지

암호화폐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중앙포토]

암호화폐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중앙포토]

“제가 저지른 범행 일체 기록입니다.”
30대 사기범 A씨(37)가 경찰에 붙잡힌 뒤 한 얘기다. 그가 증거물이라며 제출한 휴대전화에는 자신이 최근 몇 개월 동안 저지른 사기행각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돼 있었다. 언제·어디서·누구로부터·얼마를·어떻게 등 시간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됐다고 한다.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김태성 수사관은 지난 6일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범인은 통상 자신의 행적이나 범행 사실을 지우기 마련인데, 10년 넘게 형사 생활하면서 이렇게 철저하게 목록을 적어 놓은 범인은 처음”이라고 했다. A 씨와 관련된 내용은 김 수사관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사기에도 품격이 있다(?)
 
A씨가 경찰에 붙잡힌 것은 지난 4월 초. 가상화폐 비트코인 채굴기(그래픽 카드)를 판매한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뒤 87명으로부터 1억2800여 만원을 가로 챈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범인과는 달리 그는 경찰 조사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범죄행각을 상세히 기록한 휴대전화를 증거로 제출했다. 경찰은 같은 달 중순 A씨를 구속,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그는 왜 자신의 범죄기록을 상세히 기록했을까. 그만의 철칙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전과 21범인 그가 사기행각→구속→석방 등의 과정을 거치며 터득한 자신만의 노하우라는 것이다. 
 
경찰이 말한 그의 철칙은 크게 세 가지다. ‘제3자처럼’, ‘철저하게 기록한다’, ‘(붙잡히면 경찰에게) 있는 그대로 진술한다’ 등이다. 
암호 화폐 채굴기 모습. [중앙포토]

암호 화폐 채굴기 모습. [중앙포토]

 
제3자 처럼 행동한다
 
범행과정에서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업자와 함께 가상 화폐 비트코인 채굴기 사업을 하면서 1억원을 투자받았다가 탕진했다. 지난해 말 동업자로부터 돈을 독촉받게 되자 사기행각을 벌였다. 인터넷 중고물품 판매 사이트에 ‘(가상 화폐 비트코인) 코인 채굴기(그래픽 카드) 판매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당시 그래픽 카드 1개 가격이 30만~40만원씩 했다고 한다.
 
이때 그는 자신이 아닌 타인 명의의 휴대전화와 통장을 이용했다. 주로 지인이 아닌 주변 인물의 것을 사용했다. 자신이 묶고 있는 여관주인에게 “오늘 몇 시쯤 OOO이라는 이름으로 입금되는데 그거 며칠 치 제 방값입니다”, “20분 뒤에 사장님 계좌로 얼마 입금될 텐데 술 좀 주세요”라는 식이다. 자기가 직접 수령하지 않고서도 돈을 받아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인 것이다.
 
그는 피해자끼리도 거래토록 했다. 한 피해자가 “채굴기가 안 왔다. 환불해 달라”고 하자 A씨는 “기다려 달라. 잠시 뒤 OOO 이름으로 입금될 예정”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앞서 구매 의사를 밝힌 피해자에게 환불을 요구한 피해자의 계좌로 입금토록 한 것이다. 
인천지방경찰청 전경. [중앙포토]

인천지방경찰청 전경. [중앙포토]

 
철저하게 기록한다
 
경찰이 첩보 입수 후 3개월여 동안 확인한 피해자는 모두 40여 명. 피해자 진술과 증거까지 모두 확보해 A 씨에 대한 구속수사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A 씨가 피해자가 87명이라고 진술한 것이다. 피해 금액만 1억2880만원이라고 했다. 확보되지 않은 40여 명의 진술 확보가 쉽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전국에 분산돼 있어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제출한 휴대전화에는 87명의 신상·전화번호·피해 금액·시간과 장소 등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었다.
 
김 수사관은 “A가 ‘형사님 제 범행 기록 이게 전부입니다’라고 내민 휴대전화를 봤는데 정말 기가 찼다”며 “그의 증빙자료(?)로 덕분에 87명의 피해 조사를 쉽게 했고, 구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기 사건은 각각 한 건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재판과정에서 추가로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형량이 늘어나거나 벌금이 더 많아지다 보니 추가되는 것을 미연에 막기 위해 꼼꼼하게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에게 있는 그대로 진술한다
 
A 씨의 경우처럼 인터넷 사기 피해자는 전국에 분산돼 있다고 한다. 문제는 해당 경찰서가 이들 피해자를 모두 확인하기란 어렵다는 것. 결국 확인된 것만을 가지고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게 통상의 절차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후 피해자가 나오면 개별 건으로 처리되는 사기 사건의 특성상 재판이 지연되고, 벌금과 형량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꺼번에 재판을 받을 경우 양형을 이유로 형량을 낮게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추가될 수록 불리하다는 것이다. A 씨는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전과 21범인 그가 메모 습관을 들이고, 붙잡혔을 때 경찰관에게 모든 사실(피해자 몇 명인지 여부 등)을 밝히는 이유다.
 
김태성 수사관은 “절도범은 다시 범행을 저지르더라도 절도를 하는 등 통상 자기가 하던 범행을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 ‘수법 범죄’라고 부른다”며 “A도 수법 범죄자 유형이다 보니 자신에게 어떤 게 유리한 것인지 터득한 나름의 노하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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