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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싸움서 꿀리기 싫다?···시진핑 전용기 택한 김정은

12일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세기적인 담판’에 나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했다. 김 위원장의 이날 싱가포르 이동은 세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을 남겼다. 본 게임(북ㆍ미 정상회담) 이틀 앞서 싱가포르에 도착했다는 사실과 중국 항공기를 이용한 것, 그리고 중국 영공을 통과했다는 점이다.  
중국 에어차이나 항공기가 10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해, 베이징 상공을 거쳐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다. [플라이트레이더24 캡쳐]

중국 에어차이나 항공기가 10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해, 베이징 상공을 거쳐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다. [플라이트레이더24 캡쳐]

 
김 위원장은 회담 일정보다 이틀이나 앞서 평양을 떠났다. 이는 북ㆍ미 정상회담 개최국인 싱가포르가 김 위원장을 공식 초청했고, 이날 오후 리센룽 (李顯龍) 싱가포르와 회담을 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싱가포르는 지난 2일 북한 대표단의 체재비를 부담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공식 방문일 경우 초청자 부담의 관례에 따라 북한의 자존심을 세워 주면서도 자연스럽게 ‘결재’가 가능하다. 북한으로써도 일요일 오후 북-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한 뒤, 며칠 더 머물며 미국과 회담하는 형식으로 실리와 명분을 챙길 수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건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방문에 중국 항공기(에어 차이나)가 투입됐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날 보잉 747-400기종 한대(B-2447)를 내줬다. 평소 여객기로 활용하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전용기로 사용하는 두 대중 하나다. 중국은 이를 위해 지난달부터 해당 기종의 운항을 중단하고 개조한 뒤 지난 8일 베이징-평양 노선에 투입해 시험운항을 거쳤다.  
 
김 위원장이 전용기로 사용하는 ‘참매-1호’의 운항 거리는제원상 9200㎞다. 또 2000년대 초반에 도입한 투볼레프(TU-204-300) 여객기(보잉 737급)도 보유하고 있다. TU-204의 운항 거리는 6500㎞로, 평양~싱가포르의 거리(4800㎞) 1.5배를 날 수 있다. 2016년까지 싱가포르와 국경을 접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까지 직항을 운영했다. 이론적으로는 일각에서 제기했던 안전이나 직항이 어렵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북한이 중국의 대형 항공기를 동원한 건 궁금증을 낳는다. 북한과 중국은 지난달부터 시진핑 주석이 전세기로 사용하는 항공기를 제공하는 문제를 협의해 왔다고 한다. 참매-1호가 싱가포르까지 운항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보다 안전한 방법을 찾으려는 차원이란 추정이다. 정부 당국자는 “항공기는 비행시간에 따라 부품을 교체하기 때문에 운항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중국 항공기가 더욱 안전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최고 존엄’의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는 속성상 김 위원장의 첫 서방 세계 나들이에 보다 안전한 방안을 모색해 왔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4시 18분 베이징 공항을 출발해 순안공항을 거쳐 싱가포르까지 10시간 18분 동안 수상한 행적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세기임에도 불구하고 베이징~평양 왕복에 각각 CA121, CA122편을 사용했고, 베이징 상공에서 착륙하지 않은채 CA61편으로 바꾸고 싱가포르로 향한 것도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또 평양에서 북쪽으로 기수를 올렸다, 베이징을 거쳐 중국 영공을 가로지르는 항로를 택한 것 역시 불시착이나 외부의 공격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이 항공기는 평양 인근에선 아예 위치 발신장치(트랜스폰더)를 꺼버리며 위치를 감추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맞짱’을 앞둔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차원일 수도 있다. 각국의 전용기는 국력을 상징하고, 자존심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어포스-원(1)이라 불리는 미 공군 1호기를 이용한다. 첨단 통신 및 방호 장비를 갖춘 2대의 항공기가 다닌다. 반면, 김 위원장이 한참 뒤떨어지는 참매를 타고 등장한다면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갈 수 있다. 외교의전을 담당했던 전직 당국자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하듯 외교에서 의전은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며 “중차대한 협상장에 소형 중고 자동차를 타고 등장하는 것과 렌터카라도 대형 승용차 뒷좌석에서 내리는 건 마음가짐이 다른 것 아니겠냐”고 비유했다. 위축되거나 주눅이 들지 않기 위한 차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려고 하는 중국의 ‘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정전협정 당사국으로서 역할을 강조해 왔다.(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 그런 만큼 자신들이 직접 회담장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우방국인 북한에 시 주석의 전세기(전용기)를 내줌으로써 뭔가 자신들이 역할을 했다는 족적을 남길 수 있다. 다만, 북한이 김 위원장의 목숨을 중국 조종사에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실무협의에서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항공기는 기종별로 면허가 있는데 북한에는 조종사가 없어 중국인 조종사가 조종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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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