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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의 테크닉과 농익은 완숙미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정경화 바이올린 리사이틀, 3일 오후 롯데콘서트홀
 
음악의 감동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름다운 음향이 주는 쾌감? 황금 비율과 구조가 주는 균형감? 그 너머 더욱 깊은 곳에서 오는 감동도 존재한다. 3일 오후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연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청년기의 완벽한 테크닉, 중년기의 노련한 원숙미, 여기에 부상을 겪고 재기한 만 70세 거장의 절치부심은 청중의 옷깃을 여미게 했다.  
 
정경화가 금빛 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로 나왔다. 고(故) 이영희 한복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 큰 키의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는 2011년 이래로 꾸준한 음악 파트너다.  
 
첫 곡은 포레 소나타 1번 Op.13. 격정적인 피아노 전주에 이어 정경화의 활이 과르네리를 갈랐다. 생각보다 색채감이 짙고 밀도 높은 음색이었다. 특유의 단호한 맺고 끊음은 소리가 만들어지기까지 엄혹한 과정을 떠올리게 했다. 여전히 검객의 몸가짐이다.  
 
보잉(활쓰기)을 하는 팔의 힘은 넉넉했고 이따금 온몸을 도약하며 발을 딛기도 했다. 바이올린 음색은 경질의 강철같이 울렸다. 극적으로 1악장이 끝나자 박수 치는 청중을 정경화가 몸짓으로 제지했다.  
 
2악장은 케너의 영롱한 피아노에 정경화의 진지한 바이올린이 갈마드는 형국이었다. 70대 바이올리니스트 중에 저렇게 형형한 음색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정경화는 팸플릿 떨어뜨리는 소리 등으로 소란한 객석을 잠시 쳐다보기도 했다. 
 
그는 연주에 온몸을 다 사용했다. 움츠렸다 일어서는 동작에서 무릎을 구부렸다 펴며 스텝을 옮겼다. 고음은 폐부를 찔렀다. 꿈을 꾸듯 몽롱함이 지속됐다. 3악장에서는 힘을 조금 뺐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걸음 같은 연주가 부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마지막 악장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곡상을 잘 어울리게 해석했다.  
 
다음 곡 연주를 하기 전에 정경화는 앞줄에 앉아있는 꼬마 아이를 보고 웃었다. 4년 전 런던 무대에서 기침하는 아이 부모에게 “아이가 큰 다음 왔으면 좋겠다”고 언급해 불거졌던 논란이 떠올랐다. 그때보다 누그러진 태도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은 빠른 템포로 시작했다. 정경화의 관록은 이런 곡에서 특히 잘 드러났다. 치열하면서도 간구하는 듯한 음색으로 브람스 음악의 진지함을 유지했다. 느린 2악장에서는 서정적이면서 굳은 심지가 느껴졌고, 3악장의 텁텁한 맛과 깊이는 거장이란 칭호에 손색이 없었다. 4악장까지 들으며 브람스 소나타야말로 예전보다 현재의 정경화에 가장 어울리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부의 첫 곡은 바흐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였다. 무대 후면과 측면의 청중들에게까지 골고루 인사한 정경화는 심호흡 후에 활을 들었다. 연주가 진행되며 긴장이 실오라기처럼 풀려가기 시작했다. 무심히 활을 긋는 정경화의 바흐에서 단조로운 일상이 쌓여 하나의 빛나는 장을 이루는 모습을 보았다. 성부의 구분이 비교적 뚜렷했고, 힘겨운 패시지에서도 얼버무리며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절정을 이루는 부분에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선보였다. 문답처럼 진행되는 곳에서 여유는 없었지만 강철 같은 위엄이 곡을 앞으로 밀고 나갔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이었던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는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한 음 한 음엔 여유가 있었다. 피아노에 바통을 넘길 때 정열적인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케너의 피아노 악보에 다가가 보면서 함께 연주하고 있음을 어필했다.  
 
2악장에서 물결치는 피아노는 꿈속을 연상시켰다. 약간 홍조를 띤 연주였다. 열띤 활 끝이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몇 번이고 돌려 말하는 듯한 3악장. 정경화의 바이올린은 적막 속의 불빛이었다. 또렷하게 전개된 4악장에서는 약간의 루바토를 섞는 여유도 보여줬다. 마지막 순간은 하얗게 타버리는 연소로 눈이 부셨다. 정경화의 표정에는 울음과 웃음이 섞여 있었다. 부상 끝에 컴백한 2011년 이후 지켜본 수많은 그녀의 연주회 중에 이날 공연은 수위를 다툴 만했다. 그야말로 완전한 회복, ‘70세의 출발’이란 구호를 연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앙코르 첫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였다. 정경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주에 마음을 담아냈다. 크라이슬러 ‘사랑의 기쁨’은 구김이나 꾸밈이 전혀 없이 무위의 경지를 들려줬다. 관객 중 한 명이 “사랑해요!”하고 외쳤다. 정경화는 양팔을 크게 들어 하트 모양을 그렸다.  
 
마지막 앙코르는 드뷔시의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수많은 인생의 모퉁이를 돌아 거울 앞에 선 누이, 그녀가 체득한 아득한 경험의 깊이는 심연과 맞닿아 있었다. 이 곡을 연주하는 70세 정경화는 또 다른 출발선 위에 서 있었다. ●
 
글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김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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