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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이라 “상화와 우정이 한·일 이어주는 스위치 됐으면”

고다이라 나오가 8일 도쿄국제포럼에서 중앙 SUNDAY와 인터뷰를 하면서 평창올림픽 당시 이상화의 레이스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일본 팬들을 진정시킨 ‘쉿’ 동작을 재현해 보이고 있다. [정영재 기자]

고다이라 나오가 8일 도쿄국제포럼에서 중앙 SUNDAY와 인터뷰를 하면서 평창올림픽 당시 이상화의 레이스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일본 팬들을 진정시킨 ‘쉿’ 동작을 재현해 보이고 있다. [정영재 기자]

2018년 2월 18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이미 1000m에서 은메달을 딴 고다이라 나오(32)는 500m에서 36초94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금메달이 유력한 고다이라를 향해 일본 응원단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그 순간 고다이라는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갖다대며 ‘조용히 해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음 조에서 레이스를 준비 중인 이상화(29)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해 달라는 뜻이었다.
 
이상화는 37초33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에 이어 이 종목 올림픽 3관왕을 노리던 이상화의 도전이 은메달로 끝났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링크를 돌던 이상화가 고다이라의 품에 안겼다. 두 사람은 친자매처럼 다정하게 껴안고 링크를 돌았다. 태극기와 일장기가 아름답게 어울렸다. 국적과 라이벌 의식을 떠나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평창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평창이 끝난 뒤 나는 꼭 고다이라를 만나고 싶었다. 일본 언론도 인터뷰 하기 어렵다던 그를 8일 오후, 도쿄역 근처에 있는 도쿄국제포럼 내 커피숍에서 만났다. 고다이라는 이날 저녁 도쿄국제포럼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에서 선수단 주장 자격으로 금메달을 받는다고 했다.
 
평창 올림픽 최고의 순간으로 꼽히는 이상화-고다이라의 포옹 장면. [연합뉴스]

평창 올림픽 최고의 순간으로 꼽히는 이상화-고다이라의 포옹 장면. [연합뉴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선수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오늘 같은 시상식에 참석하거나 그동안 도움 받았던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지낸다. 중간중간 훈련도 한다.”
 
훈련은 어느 정도 강도로 하나.
“올림픽 시즌 때와 거의 비슷한 정도다. 난 훈련 하는 게 일상이고 그게 가장 만족스럽고 편하다.”
 
고다이라 선수를 만난 분들은 무슨 얘기들을 하나.
“평창 때 그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말한다. 언제나 이상화와 세트로 얘기한다(웃음).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는 한국 분들이 좀 많아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유명인사가 됐다는 생각이 드나.
“어디를 가든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해서 거리를 편하게 다니지 못한다. 식당에서 밥값을 안 받겠다고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초밥집에서 서비스를 자꾸 주면서 더 먹으라고 해서 혼났던 적도 있다.”
 
한국 가면 그런 대접을 더 받지 않겠나.
“그럴 수도 있겠다. 불고기·순두부찌개·비빔밥·잡채·부침개 등 한국 음식은 다 좋아한다. 매운 것도 잘 먹는다.”
 
이상화 레이스 전에 “쉿” 한 건 어떤 마음이었나.
“냉정하게 나를 컨트롤했다. 내 레이스 뒤에 2개 조가 남아 있었다. 모든 선수가 페어하게 전력을 다해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끝났다고 해서, 좋은 기록이 나왔다고 해서 감정을 폭발시키고 세리머니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팬들은 좋은 기록을 세웠을 때 기뻐하고 환호할 권리가 있지 않나.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선수다. 관중이 기뻐하고 환호하는 순간을 억제시켰다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 행동에 후회는 없다. 왜냐하면 올림픽은 선수를 위한 무대이고, 그렇게 가야 성공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길 거라는 자신감은 아니었나.
“사실 그 순간 상화한테 이긴다 진다, 이길 수 있는 타임이다 이런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이 기록에 대한 만족, 내 가진 것을 다 발휘한 것에 대한 만족감은 있었다. 금이든 은이든 상관 없었다.”
 
이상화가 뛸 때 어느 정도 기록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나.
“전혀 안 했다. 내 레이스가 끝났기 때문에 스케이트 하는 친구를 응원하는 기분으로 지켜봤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의 내 모든 행동은 퍼포먼스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그날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또 있나.
“시상식 직전에 상화가 ‘나 울 것 같아’라고 영어로 말했다. 난 ‘울지 말고 웃으면서 시상대 올라가자’고 얘기해줬다. 그래서 시상식 때 모두 웃을 수 있었다.”
 
이상화와 친해진 계기가 있나.
“내가 세계 무대에 처음 도전했을 때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상화와 같은 대기실을 썼다. 상화와 더 친해지려고 한국어를 배웠다. 내가 2013년 링크에서 넘어지고 성적이 나오지 않아 울고 있을 때 많은 친구들이 와서 위로해줬다. 그렇지만 같이 울어준 선수는 상화뿐이었다.”
 
 
조랑말한테 “날씨 좋네” 인사하기도
 
고다이라가 한국의 목재 장인 사광성씨가 만든 나무축구공 선물을 들고 러시아 월드컵 한·일 양국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정영재 기자]

고다이라가 한국의 목재 장인 사광성씨가 만든 나무축구공 선물을 들고 러시아 월드컵 한·일 양국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정영재 기자]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두 선수의 아름다운 우정처럼 한·일 관계가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두 선수의 이런 모습이 껄끄러운 양국 관계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물었다. 명답이 돌아왔다. “양국 문화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모든 분들이 그 장면을 보고 호감을 느낀 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장면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의 스위치가 되면 좋겠다.”
 
본인이 생각하는 스포츠맨십 또는 올림픽 정신이란 뭔가.
“쓰는 말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른 사람들이 스포츠라는 것을 함께 하면서 교류하고 마음이 통한다는 거다. 상대를 이기려고 경쟁하기보다는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서 스스로를 높이는 게 스포츠 정신이 아닐까.”
 
이상화 선수는 평창 끝나고 은퇴할 줄 알았는데 계속 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고다이라 선수에게 자극을 받은 게 아닐까.
“다시 시작한다니 기쁘다.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부끄럽다, 그래서 그만둘 거다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스케이트를,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했으면 좋겠다.”
 
 
상화가 시상식 전 “울 것 같다” 말해 다독여
 
선수로서 황혼기인 20대 후반에 네덜란드 유학을 갔고 이후 기록이 좋아졌는데.
“선수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상체를 세우는 ‘성난 고양이 주법’을 배웠는데 사실 적응이 잘 안 돼 고생을 많이 했다. 일본에 돌아와 유키 마사히로 코치와 동작을 섬세하게 다듬으면서 좋아졌다. 사실 성난 고양이 주법은 기술적인 부분보다 마음가짐이다. 눈을 날카롭게 뜨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달려드는 것이다. 내가 좀 착한 성격이라서(웃음).”
 
네덜란드 유학 시절엔 조랑말이 유일한 친구였다던데.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과 대화를 많이 했다. 조랑말한테 ‘오늘 날씨 좋네’라고  말을 걸기도 했다. 언어가 좀 되면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빙상 선수로서 앞으로 목표는.
“하나는 상화가 갖고 있는 500m 세계기록(36초36)을 깨는 것이다. 더 본질적인 것은 ‘궁극의 스케이팅’을 하는 것이다. 몸의 움직임, 스피드, 마음,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감각을 느끼고 싶다.”
 
인생의 목표는.
“내 주위 사람들이 언제나 웃음이 넘치는 후회 없는 생을 사는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해 스케이팅 외에 뭔가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 그중에 결혼도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도 할 거다. 그런데 아직….”
 
나가노 병원 소속 … 경기 끝나면 환자들에게 인사
고다이라 나오

고다이라 나오

고다이라 나오는 1998년 겨울 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 현 출신이다. 그가 졸업한 신슈대학도 나가노에 있다. 고다이라의 현 소속팀도 나가노 현 마츠모토 시에 있는 아이자와병원(모자에 이름)이다. 그는 이 병원의 스포츠 장애 예방센터 직원이지만 병원에서 근무하지는 않는다. 대학 졸업 후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던 고다이라를 이 병원의 아이자와 다카오 이사장이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는 “올림픽 개최 도시인 나가노 출신 선수가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훈련과 경기 출전에 어려움을 겪는 건 안될 일”이라고 했다. 고다이라는 대졸 사무직원에 준하는 급여를 받고 주거 비용과 원정 경비 등을 지원받았다. 네덜란드로 2년 유학을 다녀온 비용도 병원 측에서 지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모든 경기를 ‘장기 출장’이란 이름으로 출전한다. 병원 직원은 물론 환자들까지 고다이라의 열렬한 팬이다. 고다이라는 대회가 끝나면 늘 메달을 걸고 병실을 돌며 환자들과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다이라는 “14년간 함께 한 유키 코치와 헤어질 수 없어 대표팀에 들어가지 않았다. 재정적으로 힘들었지만 주위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쿄=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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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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