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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스(philos)

[책 속으로] 김수영의 행복어 사전
투스쿨룸 대화

투스쿨룸 대화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말들은 그 정확한 발생의 기원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밥이라는 말을 누가 처음 만들어냈는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에 대해 예외인 아주 소수의 단어들이 있습니다. 철학, 그러니까 필로소피아(philosophia)라는 말이 이 중 하나입니다. 필로소피아라는 말은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가 처음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좋아함 혹은 사랑을 뜻하는 필로스(philos)와 지혜를 의미하는 소피아(sophia)를 결합해서 이 신조어를 세상에 내놓았죠. 피타고라스는 무슨 생각으로 이 두 말을 붙여 쓰게 되었을까요.
 
그 역사적 장면은 이러합니다. 피타고라스는 어느 해에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에 있는 도시 국가 플레이우스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레온이라는 왕이 이 작은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죠. 그는 피타고라스와 오래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학식과 인품에 깊이 빠져들었던 모양입니다. 레온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학문을 공부하셨기에, 이렇듯 훌륭하고 아름다운 말씀을 많이 하시는지요.” 사실 평범한 질문입니다. 전문가는 고대 그리스어로 “소포스(sophos)”,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불렸습니다. 젊은 왕 레온은 피타고라스에게 그가 도대체 어떤 분야의 “소포스”인지 그러니까 어떤 학문과 지식에 정통한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요즘의 말로 하면 무슨 과 교수님이신지 정도 될까요.
 
이에 대해 피타고라스는 자신은 지혜로운 사람 그러니까 “소포스”가 아니며 단지 지혜를 좋아하는 사람 그러니까 “필로소포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레온 왕은 필로소포스, 그러니까 철학자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는 놀라서 그 뜻을 물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왜 자신이 “소포스”가 아니라 “필로소포스”인지 설명합니다. 그에 의하면 오직 신만이 지혜를 소유합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포스”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오로지 지혜를 바라고 욕구하며 좋아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여기가 역사상 최초로 철학, 그러니까 필로소피아라는 말이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철학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에서 출발했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한계를 짓는 사람들이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한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혜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특별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피타고라스가 지혜에 대한 사랑을 말할 때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누리는 기쁨에 대한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행복은 결핍이 충족될 때 찾아옵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완전한 충족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결핍과 욕망과 사랑이 어찌 완전히 채워질 수 있겠는지요. 나의 갈구가 조금씩 채워지는 느리고 충만한 과정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결핍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질문은 사랑, 곧 결핍에 대한 질문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BC 106~43)가 『투스쿨룸 대화』라는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후 AD 3세기경 활약했던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남긴 기록은 이 두 사람의 대화를 좀 더 짧고 분명한 방식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레온은 피타고라스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는군요. 이 질문에 대해 피타고라스는 “저는 지혜를 좋아하는 사람, 필로소포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철학은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소유가 아닌 결핍을 고백하는 장소였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필로스는 무엇에 대한 것입니까. 당신에게 제일 중요한 결핍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결국 당신의 행복은 어디에 놓여 있습니까.
 
김수영 한양여대 교수 ksypb@naver.com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플라톤으로 박사 학위.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지냈다. 현재 SeriCEO철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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