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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3가 노가리 골목에선 밤마다 ‘생’난리가 난다

사람들로 붐비는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 테이블이 펼쳐져 있는 곳은 낮에는 이면도로로 쓰이는 공간이다. 하루 평균 3000여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김경빈 기자]

사람들로 붐비는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 테이블이 펼쳐져 있는 곳은 낮에는 이면도로로 쓰이는 공간이다. 하루 평균 3000여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김경빈 기자]

지난 4일 서울 지하철 을지로3가역 뒤편의 이면도로. 낮엔 화물트럭만 오가던 이면도로 위엔 오후 6시가 지나자 수백 개의 간이 테이블이 펼쳐졌다. 길 양편 호프집들이 내놓은 테이블이다. 어둠이 내리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도로 곳곳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나이 지긋한 노인부터 20대 젊은이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테이블마다 빠짐없이 시켜놓은 안주는 노가리(2~3년 된 어린 명태)다. ‘인쇄 골목’으로 불리던 이곳이 최근 ‘노가리호프 골목’으로 통하는 이유다. 김종덕 을지로동장은 “퇴근길 간단한 안주와 함께 가볍게 한잔 하려는 시민들이 노가리호프 골목을 찾으면서 지역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후 6시~자정까지 영업, 옥외 요리 금지
 
노가리호프 골목의 원래 이름은 ‘을지로 인쇄골목’이다. 행정상으론 을지로13길과 충무로9길 등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 덕에 인쇄소와 관련 가게가 많았다. 이 지역에 노가리와 맥주 등을 파는 호프집이 활성화된 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부터다. 주머니가 홀쭉해진 직장인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호황은 10년쯤 이어졌다.
 
그러던 노가리호프 골목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손님이 줄었다. 상인들 사이의 다툼도 잦아졌다. 이면도로를 중심으로 마주하고 있는 상점끼리 도로에 서로 자기 테이블을 놓겠다며 시비가 이어졌다. 다툼과 신고가 반복되면서 점차 거리를 찾는 발길도 줄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상인들이 뜻을 모았다. 2016년 8월 일대 상인들이 도로 위 옥외영업을 공식 허가해 줄 것을 중구청에 요청했다. 때마침 중구청도 을지로 일대의 야간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는 고민을 하던 시점이었다.
 
노가리가 구워지는 모습. [김경빈 기자]

노가리가 구워지는 모습. [김경빈 기자]

상인들은 지난해 3월엔 ‘을지로 노가리호프 번영회(이하 번영회)’를 조직한 뒤 상권 활성화와 질서 있는 옥외영업을 하겠다는 상인 간 자율협약을 체결하며 구청을 설득했다. 그러자 구청도 노가리호프 골목 내 옥외영업을 허가하고 시설 기준을 마련했다. 도로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별도의 도로점용 허가도 내줬다. 이면도로 위 영업이 합법화되면서 자연스레 상인들의 신고와 다툼도 줄어들었다.
 
덕분에 요즘 노가리호프 골목은 낮보다 밤이 더 붐빈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상인의 요청에 행정이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쇠락해 가던 도심 지역을 되살려 낸 것”이라며 “비슷한 형편의 다른 지역에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카페도 20곳 생겨나 다른 지역서 벤치마킹
 
옥외영업을 허가한 구간은 을지로11길, 을지로13길, 충무로9길, 충무로11길 일대 이면도로(총 연장 465m)다. 이곳에만 모두 17곳의 호프집이 있다. 해당 이면도로가 사유지인 경우 부설 주차장을 제외한 공지에서 영업이 가능하다. 옥외영업을 허가한 배경에는 을지로동의 특수성이 있다. 을지로동은 주민등록 인구가 1654명(지난달 말 기준)에 그친다. 그나마 대부분 실거주자가 아니다. 김 동장은 “을지로동은 특성상 늦게까지 도로 위에서 음식을 팔아도 뭐라고 할 주민이 많지 않았다”며 “구청 입장에서도 상인들 요청을 적극적으로 들어줘도 큰 부담이 없었다”고 말했다.
 
옥외영업 허가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이 지역 호프집들의 매출이 허가 이전보다 세 배 이상 뛰어올랐다. 지금도 일 평균 3000여 명의 시민이 이곳에서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손님층도 다양해졌다. 예전엔 주로 장년층 이상의 손님이 많았다면 이제는 20대도 즐겨 찾는다. 손님이 많다 보니 일부 호프집은 하루 수십만㏄의 생맥주를 팔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생맥주가 가장 잘 팔리는 동네’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노가리호프 골목을 찾는 시민이 늘면서 지역 상권도 함께 살아났다. 최근엔 호프집 외에도 젊은층이 주로 찾는 카페 20여 곳이 들어섰다. 소문이 나면서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 등 다른 지역 상인회에서도 벤치마킹을 나오고 있다. 정규호 번영회장은 “미국 CNN에서 노가리호프 골목을 알리는 방송이 나간 뒤 외국인 손님도 심심찮게 찾아온다”고 소개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노가리호프 골목 경쟁력의 원천은 다양하다. 우선 도심에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서울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에서 한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이면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테이블을 볼 수 있다.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다. 노가리가 한 마리에 1000원, 생맥주는 500㏄에 3500원이다.
 
노가리 소비량이 워낙 많다 보니 일부 호프집은 아예 원양어선과 연간 계약을 맺어 노가리를 확보해 놓기도 한다. 정규호 번영회장이 운영하는 뮌헨호프의 경우 한 해 8t의 노가리를 구입한다. 그는 “노가리는 손님들에게 내놓는 서비스 개념으로 한 마리당 1000원이란 가격을 정했다”고 소개했다.
 
상인들 사이에도 불문율이 있다. 우선 이면도로의 중앙선은 호프집 야외 테이블을 놓는 경계로 통한다. 영업은 반드시 자정까지만 하고 영업을 마친 뒤 꼼꼼하게 거리를 청소하는 건 기본. 지역 내 다른 업종의 상점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또한 이윤은 최대한 지역 사회에 환원한다. 번영회 소속 상인들이 매년 힘을 모아 관내 저소득층을 돕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놓는 이유다.
 
 
노가리 한 마리 1000원, 생맥 500㏄ 3500원
 
점포 앞에는 간단한 식탁과 의자·파라솔 등 이동식 편의시설을 놓을 수 있지만 색상은 가급적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단색으로 해야 한다. 물론 보행자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하다. 쓰레기통을 내놓거나 옥외 조리는 금지 사항이다. 서울 중구청은 이 일대 간판을 통일하고 광고물도 정비해 노가리호프 골목을 도심 속 명소로 가꿔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노가리호프 골목 상인들에게도 고민이 있다. 손님은 늘었지만 수익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인건비나 재료값은 늘었지만 박리다매가 기본 원칙이다 보니 가격을 올리는 데 대한 거부감이 크다. 일이 고되다 보니 일손을 구하는 것도 만만찮다. 그래도 상인들에게는 꿈이 있다. 정 회장은 “현재 17곳인 호프집을 적극적으로 늘려 이 일대를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처럼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로 키워나가고 싶고 이에 상인들도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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