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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넘는 김정은 야속했다…탈북소녀가 본 판문점 회담

탈북민 김미경(가명, 20) 씨가 중앙SUNDAY 기자와 만나 최근 남북한 정세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미경씨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신인섭 기자

탈북민 김미경(가명, 20) 씨가 중앙SUNDAY 기자와 만나 최근 남북한 정세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미경씨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신인섭 기자

남북 대화 분위기가 한창이다. 70년 만의 기회에 걸린 기대도 크다. 현재를 조금 더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탈북민이 그렇다. 중앙SUNDAY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탈북 청소년 교육 시설인 ‘다음학교’에서 탈북 소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2011년 북이탈청소년 교육센터로 시작한 다음학교에선 현재 53명의 탈북 청소년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나는 평범하면서, 평범하지 않다. 내 이름은 김미경(가명ㆍ여ㆍ20).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친구와 자취를 하며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이다. 교육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다. 엄마와 세 살 아래 여동생은 광주광역시에 거주하고 있다. 고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량강도 해산시다. 고향 얘기가 나오면 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나는 탈북민이다. 2016년 3월에 탈북했다. 계획했던 건 아니다. 돌아가신 아빠를 대신해 엄마는 북ㆍ중 국경을 넘어 약초를 파는 보따리상을 했다. 그러던 중 2014년 어느 날 국경을 넘다 체포됐다. 수용소에 보내지면 모진 고초를 겪을 게 뻔했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탈북뿐이었다.
 
남북 정상회담 보며 ‘야속하다’ 생각 들어
 
탈북민들 사이에서도 최근 상황이 큰 화제다. 당장 통일이 올 것 같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 보는 사람도 상당수다. 남한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그다지 미워하지 않는다. 사실 ‘북에선 그럭저럭 살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밀무역 등 조금만 법을 어기면 웬만큼 생활할 수 있다.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매일 배를 곯거나 하진 않는다.
 
남쪽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하다. ‘남에 간 탈북민들은 남쪽 정부의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된다’는 식의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서다. 다만 TV로 본 김정은 위원장의 편안한 모습에 놀랐다는 탈북민들이 많다. 그는 북에선 거의 신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남에 와서는 그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는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신격화된 그의 이미지와 관련해 북한 내부에선 ‘거짓으로 가득한…’이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주변의 남한 분들이나 언론은 정상회담장에 나타난 김 위원장의 뚱뚱한 모습이나 걸음걸이를 보고 놀리듯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탈북민으로서 김 위원장의 모습을 봤을 땐 ‘야속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경선을 넘는 모습에서 특히 그랬다. 여동생과 함께 생면부지의 안내자(탈북 브로커)를 믿고 압록강을 건너고 대륙을 횡단해 라오스와 태국 국경을 넘던 일이 떠올랐다. ‘저 사람에겐 한 발짝 내딛기만 하면 되는 길이 내게는 반년 가까이 목숨을 걸고 떠돌아야 하는 길이었구나’라는 생각에 목이 메었다.
 
탈북민들 사이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ㆍ미 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변화가 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친구들과도 통일이 언제 올지 얘기하곤 하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워하는 것 같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편히 통화하고 안부라도 묻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탈북민 중 상당수가 북에 가족이나 친지를 남겨두고 왔기 때문이다. 북한 생각을 하며 술로 날을 지새우는 이도 많다. 난 이곳에선 행운아로 여겨진다. 2년 넘게 엄마의 생사도 모르고 떨어져 살았지만 탈북하고 나서는 엄마와 세 살 아래 여동생까지 셋이 함께 남한에 살고 있으니까.  
 
탈북민이라고 밝히기엔 아직 부담
 
탈북하고 2년이 지났지만 북한 사람이라고 말하긴 아직 꺼려진다. 다른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보지 않을지, 내 행동이 북한 사람들을 욕먹게 하진 않을지 늘 걱정이다. 나뿐 아니라 탈북민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남한 사람들은 대체로 탈북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은 것 같다. 탈북민을 세금 도둑으로 여기는 분도 있는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ㆍ미 회담 소식이 남한 사람들의 그런 선입견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그래도 그 기사들에는 긍정적인 댓글이 더 많이 달리는 것 같으니.
 
탈북민들의 진짜 고민은 어떻게 남한 사회에 적응하고 생존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나는 2020학번 대학생이 되는 걸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교육 전문가가 꿈이다. 하지만 남한은 탈북민에겐 너무나 어려운 곳이다. 세상도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변한다. ‘열심히 해도 안될 것’이란 생각에 자포자기한 사람도 적잖다. 남한은 탈북민이 도움 없이 일어서기엔 정말 어려운 곳이다.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교통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걸 농담하듯 웃으며 얘기했다고 들었다. 남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난 평소엔 학교 부근에서 자취하며 지낸다. 엄마가 있는 광주광역시엔 석 달에 한 번 정도 간다. 처음 갈 때 서울에서 광주까지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의 얘기를 들으며 ‘북한에서 비슷한 거리를 이동하려면 열흘은 걸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요즘 새삼 북한과 남한을 비교해 생각할 때가 있다. 지난 2년은 북한에서의 일을 생각하기보다 남한에서 하루빨리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숨 가쁘게 살아온 시간이었다. 남한은 여전히 내게 신기한 곳이다. 특히 북한과 달리 ‘엄청나게 잘 연결된’ 사회다. 처음 와선 신호등이 너무 신기했다. 신호등끼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질서 있게 색깔이 바뀌는 건 지금도 놀랍다. 병원이나 동사무소에 가면 클릭 한 번에 모든 업무가 끝난다. 북에서라면 며칠씩 걸릴 일이다.
 
물론 남한이라고 다 좋아보이진 않는다. 내게 남한은 너무 정이 없는 사회다. 지하철이나 버스는 물론 학교에서도 서로 말은 안 하고 핸드폰만 본다. 게다가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북과 남의 장점이 골고루 잘 섞이는 그런 시대가 빨리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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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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