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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김정은, 싱가포르 ‘리콴유 모델’ 배우고 오길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북·미 정상회담(12일)을 코앞에 두고 벌써 기대와 회의가 교차한다. 두 정상의 역사적 첫 만남 자체만으로도 북한 비핵화에 의미 있는 진전이 마련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가 넘친다. 반면 완전한 비핵화라는 본질이 흐려지고 양측의 정치적 필요를 적당히 충족하는 ‘정치쇼’로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 시각도 나온다.
 
영국의 명언이 문득 떠오른다.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는 모두 사회에 기여한다. 낙관론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만드니까.” 낙관론과 비관론이 모두 유용하다니 ‘낙하산을 꼭 챙겨 들고 비행기를 타는’ 자세로 북·미 회담에 임하면 성공 확률을 최대한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우여곡절 끝에 열리는 이번 북·미 회담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좀 다른 제안을 하고 싶다.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만 만나지 말고 현지에 며칠 더 머물면서 오늘날의 싱가포르를 일군 국부(國父) 리콴유(李光耀·1923~2015)의 경험을 학습하고 오길 권한다. 국익을 위해 누구에게라도 배우려 했던 리콴유의 철저한 실용주의 가르침을 리콴유의 장남인 리셴룽 총리가 들려줄 것이다.
 
리콴유는 1965년 독립한 싱가포르를 일류 국가로 만들었다.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과 첫 남북 정상회담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시아와 서구의 문화 차이 및 민주주의’를 놓고 가치 논쟁을 했던 상대가 리콴유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정은의 조부 김일성 주석과 체제 경쟁을 벌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네 마리 용’의 기적을 일군 지도자가 리콴유다. 덩샤오핑이 78년 12월 개혁·개방을 선언하기 한 달 전에 싱가포르를 방문하자 덩에게 개혁·개방 전략을 조언한 인물도 리콴유다.
 
리콴유는 경제 개방과 외자 유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장점 수용, 신권위주의 통치 등을 통해 1인당 GDP가 6만 달러를 넘는 경제 발전과 사회질서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리콴유의 자치정부 수립부터 59년째 집권 중인 싱가포르 인민행동당(PAP)의 성공 경험을 학습하면 체제 불안 때문에 핵을 고집해온 김정은에게 유용한 참고가 될 것이다.
 
2016년 망명한 태영호(56)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쓴 『3층 서기실의 암호』를 보면 2012년 집권 초기에 김정은에게도 나름의 개혁·개방 구상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북한)의 현 경제 시스템으로는 힘들다. 다른 나라들의 경제 시스템을 모두 연구해 보자. 좋다는 경제 이론도 다 가져다가 공부해 보자. 우리도 한 번 해보자.” 이런 말을 했다니 김정은의 마음속에 뭔가 배우려는 자세는 있는 셈이다. 달러를 벌어주고 시민 통제도 용이한 개성공단에 대해 김정은은 “얻는 게 더 많다. 경제특구를 내륙으로 확대해 개성공단 같은 곳을 14개 더 만들라”고도 지시했다고 한다. 체제 질서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룬 싱가포르야말로 개성공단의 확대판이다. 개성공단보다 더 성공적인 중국 쑤저우(蘇州) 공업원구(Industrial park)를 만든 것이 바로 리콴유의 싱가포르다.
 
김정은은 이번 싱가포르 방문길에 그가 집권 초기에 잠시 품었던 개혁·개방의 초심을 새롭게 가다듬고 오길 바란다. 김정일 시대에는 중국식 모델을 건성건성 학습하고 제대로 실천하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김정일은 실패했지만, 김정은은 3층 서기실로 대표되는 내부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방해를 넘어서야 한다.
 
싱가포르 모델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이번만큼은 북한 현실에 맞는 개혁·개방 모델을 만들어 통 크게 한번 추진해 보길 바란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북한 인민에게 너무 큰 비용을 초래한 핵무기를 내려놓고 이제 북한이 살 수 있는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스위스 유학파 출신이니 귀국길에 영문판 『싱가포르 스토리: 리콴유 비망록』을 사길 바란다. 리콴유의 꿈과 노하우를 읽다 보면 북한을 전쟁이 아닌 평화와 번영의 길로 이끌 영감(靈感)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나.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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