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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北 향한 편향성의 함정

[배명복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외눈 아닌 두 눈으로 봐야 있는 그대로 북한 볼 수 있어…북한 바로보기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좌담회를 통해 그들의 솔직한 얘기를 들어볼 요량으로 ‘보통’ 탈북자들을 수소문하다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하나같이 난색을 표명해서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하자고 해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 대해 함부로 입을 열기가 너무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화해 국면 혼란스런 대북 인식
김정은 변신에 당혹감 느끼지만
남북 관계 지속발전 위해
균형적, 종합적 시각 필요

문제는 문제대로 인식하면서
시장화 노력 등 긍정적 요소
적극 찾아 격려하는 것이
북 변화 위한 실용적 접근

북한의 노예국가적 요소
상황과 관점 따라 달리 볼 수 있어
북한 인권 개선은
관계 발전의 조건 아닌 결과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그들 처지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태어나 살던 곳을 버리고 남한 사회에 들어와 정착했다. 3만 명이 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설 같고, 드라마 같은 사연과 경험을 갖고 있다. 대부분 천신만고 끝에 한국 땅을 밟았다. 자유 세계에 살고 있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의 이면에는 조국과 가족, 친구를 등진 ‘배신자’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최근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진전은 복잡미묘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잘 풀리길 기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왠지 모를 걱정과 불안감에 휩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혼란스러운 건 탈북자들만 아니다. 남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불과 몇 달 새 너무나 달라진 김정은의 모습은 당혹감 그 자체다. 자신의 고모부와 이복형을 살해하고, 걸핏하면 핵 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던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평화의 동반자’로 대접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다소곳이 귀 기울이며 국가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더구나 지금 그는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와 일대일 담판을 앞두고 있다. 닷새 후 싱가포르 회담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마주 앉는 초현실적 장면을 접하며 우리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정은에 대한 신뢰가 15%에서 65%로 폭등했다는 한 여론조사는 아노미에 빠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나. 여전히 수령 중심 일인 독재, 세습 봉건왕조 국가인가. 그저 가난한 불량국가인가. 나름 일말의 진실을 가진 주체적 자주국가인가. 북한을 ‘악(惡)’으로 본다면 북한과의 진정한 화해·협력은 불가능하다. 필요하면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지만 악과 함께 먼 길을 끝까지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을 보는 우리 시각에 문제가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관계 발전은 남남갈등의 벽을 넘지 못해 결국 한계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외교관 출신으로 최고위급 탈북자다. 그는 베스트셀러가 된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탈북 동기를 비교적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책에는 그가 탈북 결심을 굳히고 그 사실을 두 아들에게 털어놓는 대목이 나온다.
 
“더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지금까지 노예처럼 살아온 것만 해도 충분하다. 나는 탈북하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탈북하면 우리 형제와 가문이 큰 불이익을 당하겠지만 우선 우리 먼저 자유를 찾자. 그들을 위해 열심히 살면 된다. 아버지로서 너희들에게 줄 수 있는 유산은 자유다. 한국에 간다 해도 우리가 바라는 바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너희만이라도 자유롭게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2016년 3월 중국 내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의 집단 탈북 사건을 계기로 북한 당국은 외교관 자녀 중 25세 이상은 무조건 귀국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어렵게 합류해 영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던 큰아들을 다시 북한에 ‘인질’로 보낼 수밖에 없는 반인륜적 상황이 태 전 공사가 탈북을 결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자식들에게만은 노예의 사슬을 끊어주어 자유롭게 꿈을 좇게 하고 싶어 탈북했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봉건사회를 거쳐 노예사회로 퇴행했다고 말한다. 또 북한은 핵심계층과 동요계층, 적대계층으로 분류된 신분제 사회라고 강조한다. 적대계층 중에서 북한 사회에 저항하거나 반발한 주민은 처형하거나 수용소로 끌고 감으로써 온 나라가 감옥화, 병영화됐다고 지적한다. 북한에는 인간의 기본권인 의사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 생산수단 보유의 자유는 물론이고, 자기 자식을 자기가 관할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다면서 오늘의 북한은 나라 전체가 오직 김정은 가문만을 위해 존재하는 현대판 노예제 국가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은 북한 주민을 노예사회에서 해방시키는 노예해방 혁명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남북전쟁으로 미국의 흑인 노예가 해방됐듯이 북한 주민에게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이 남북통일이란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주민들은 하루빨리 노예 상태에서 해방될 날만을 고대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김정은이 평화의 사도로 묘사되는 걸 보면서 서글픈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북한은 화해와 공존,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하루빨리 무너뜨려 흡수통일을 해야 할 악의 체제다.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 모두 순진하게 김정은에게 속고 있다는 얘기다.
 
태 전 공사의 증언록을 읽었다면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로 있는 박한식(79) 박사가 최근 출간한 『선을 넘어 생각한다』도 같이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조지아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며 북한을 50여 차례 방문했다.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보고, 다양한 북한 사람들과 접촉해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깊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김일성 주체 종교가 지배하는 신정(神政)국가다. 그의 어록은 성경이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父子)를 칭송하는 노래는 찬송가다. 배타적 민족주의와 집단주의에 기반한 주체 종교를 지탱하는 조직은 조선노동당으로, 360만 당원이 북한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세력이다.
 
북한에 백두혈통에 의한 세습 독재와 인권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가 바라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 신뢰는 대화의 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결과라며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역설한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질성 회복을 추구할 게 아니라 이질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북한은 노예국가라는 태 전 공사의 주장에 대해 우리 사회의 북한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으로, 2002년 탈북해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주성하 씨는 “북한 사회에 노예적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도 회사에 종속돼 월급 받고 다니다 보면 할 말 마음대로 못하고 참으며 다니지 않느냐”며 “각자 처한 상황에서 어떤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처럼 노예적 삶을 못 견뎌 탈북한 사람도 있지만, 그 정도 위치에서는 만족하며 사는 북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에 공개처형과 정치범 수용소 등 인권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 사회에도 나름대로 인간의 삶과 행복이 있다”면서 어느 한 쪽만 볼 게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북한을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각자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보고 그것이 북한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 교수의 주장 역시 ‘애꾸눈 시각’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 체제가 노예국가적 성격을 가진 것은 맞지만,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전술적 측면에서는 좀 더 실용적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북한 체제의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인식하면서 긍정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인정해 주는 태도를 갖는 것이 현실적 접근이란 것이다. 예컨대 시장화를 일궈낸 북한 주민들의 억척스러운 삶의 태도와 이를 국가가 용인하고 활용하는 점은 긍정적으로 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홍 실장은 “남북 화해 과정에서 북한을 보는 시각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 정책에 맞춰 북한을 보는 프레임을 인위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동엽 교수(북한대학원대학)는 “북한을 노예국가라고 얘기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인권 문제일 것”이라며 “남북 관계 발전을 통해 북한 사회를 자연스럽게 변화시키고 그걸 통해 인권 문제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나타냈다. 핵 문제와 인권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 관계 발전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패배주의적인 사고란 것이다. 그 역시 두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지 않고, 좌·우 한쪽 눈으로만 북한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북한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편향성의 함정에 빠져 있다. 코끼리의 앞다리나 뒷다리만 만지고 자기가 만진 것이 북한이라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한이 가진 문제를 외면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문제만 부각하는 것도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북한은 미화할 대상도 아니지만, 타도와 전복을 외치며 무조건 폄하할 대상도 아니다. 균형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자연스러운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문제는 문제대로 인식하면서 긍정적 측면을 찾아 고무하고 격려하는 것이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실용적 자세라는 홍 실장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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