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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넌 누구냐]⑨정권마다 입시 손댔다

아들딸들을 입시 지옥에서 해방해야 한다. 타고난 소질과 적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김영삼 대통령.1995년)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정부는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며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을 내놨습니다. 이른바 ‘5·31 교육개혁안’입니다. 지금까지도 큰 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처럼 '입시 지옥에서의 해방'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정부마다 입시에 손을 댔지만 새로운 제도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고 사교육은 번성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올 8월 대입 개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새로 개펴되는 제도는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요. 이번 ‘대입 넌 누구냐’에선 지난 정부들의 입시 제도 개편 ‘흑역사’를 살펴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96 교육개혁 박람회'에 참석해 열린교실 수업에 참여중인 학생에게 질문하고 있다.[중앙포토]

김영삼 대통령이 '96 교육개혁 박람회'에 참석해 열린교실 수업에 참여중인 학생에게 질문하고 있다.[중앙포토]

김영삼 정부는 대학별 본고사를 사교육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봤습니다. 5·31 교육개혁 이후 정부는 본고사를 금지했죠. 또 기존 내신 성적을 종합생활기록부로 개편해 봉사활동과 독서 및 교내 활동 등을 서술하는 식으로 바꾸고 평가는 절대평가를 도입합니다. 절대평가 도입 이후 각 고교에서 내신 부풀리기, 문제 찍어주기 등이 횡행했습니다. 대학에선 고교 내신을 불신하게 됐죠. 본고사를 못 치르는 상황에서 입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가 됩니다. 초창기 수능은 융합적 수학 능력을 측정한다는 목표로 출제돼 상당히 고난도였고 학생들의 학습 부담은 줄지 않았습니다.
연세대 본고사 원서접수에 몰린 인파. [중앙포토]

연세대 본고사 원서접수에 몰린 인파. [중앙포토]

 일률적 시험은 지양돼야 한다. 대입 제도를 완전히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김대중 대통령.1998) 
200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는 이해찬 교육부 장관 [중앙포토]

200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는 이해찬 교육부 장관 [중앙포토]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1999년 당시 고교 1년생을 대상으로 한 대입 개편을 예고합니다. 당시 교육부는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일선 학교에서 시행하던 야간 자율학습과 모의고사 등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대신 수능을 치르기 전에 대학에서 우선 선발하는 수시모집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교육부 뜻대로 ‘특기 하나’만으로 대학에 가는 제도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1999년 고교 1학년들은 고교 시절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학력이 낮다며 ‘이해찬 1세대’ ‘단군 이래 최저학력’이라 불리기도 했죠. 이 시기 수능은 400점 만점의 총점제를 폐기하고 과목별 점수제가 도입됐어요. 또 상위권 대학은 논술이나 심층 면접 등을 치르기도 했죠. 수시와 정시, 대학별 고사와 수능 반영과목 등을 신경 써야 하게 되면서 입시가 복잡해지기 시작한 때입니다.
 
대입 제도가 합리화돼야 고교의 지나친 경쟁을 막을 수 있다. 학생이 감당할 만한 바람직한 경쟁이 돼야 한다.(노무현 대통령.2006)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2004년 8월,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10여 년간 대입의 양대 축으로 이어져 온 내신과 수능 체제를 완전히 뒤흔들었죠. 우선 내신은 절대평가를 폐지하고 원점수와 상대평가 9등급제를 도입했습니다. 내신 부풀리기를 막아 내신의 신뢰도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대입에서 학생부의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취지였죠. 반면 수능은 점수를 전혀 제공하지 않고 9등급으로만 제공하는 ‘수능 등급제’를 실시하기로 합니다. 수능 변별력을 낮춰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었죠.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 총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대학경쟁력 강화방안과 대학입시 문제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참여정부는 수능 점수 위주의 줄세우기를 개선하기 위해 수능 등급제를 도입했다.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 총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대학경쟁력 강화방안과 대학입시 문제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참여정부는 수능 점수 위주의 줄세우기를 개선하기 위해 수능 등급제를 도입했다. [중앙포토]

대학과 교원단체, 사교육 업계 등의 반응은 제각각으로 갈렸고, 학생들은 대입에 관한 어느 한 요소도 가볍게 여길 수 없게 됐습니다. 경쟁이 심해진 내신, 여전히 중요한 수능, 상위권 대학의 필수 요건인 면접 및 논술까지. 2006년 인터넷에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란 동영상이 올라와 화제가 됐습니다. 서울 광화문에선 입시 개편에 반대하는 학생들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대입 제도 개선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입시에 시달리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점수 위주 선발 방식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이명박 대통령. 2009)
이명박 정부는 2008학년도에 시행한 수능 등급제를 곧바로 폐기합니다. 결국 수능 등급제는 2008학년도 단 1회만 활용되고 사라졌죠. 이명박 정부는 대입 자율화를 표방하며 ‘입학사정관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했습니다. 대학을 지원하면서까지 확대에 나섰죠. 대학마다 입시 제도가 제각각이라 대입이 역대 가장 복잡한 시기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EBS 본사를 방문해 고교수능 국어강의를 녹화 중인 교사를 격려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수능 문제의 70%를 EBS와 연계하는 정책으로 수험생 학습 부담을 경감하려 했다. [중앙포토]

이명박 대통령이 EBS 본사를 방문해 고교수능 국어강의를 녹화 중인 교사를 격려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수능 문제의 70%를 EBS와 연계하는 정책으로 수험생 학습 부담을 경감하려 했다. [중앙포토]

학생의 다양한 잠재력을 보고 뽑는다는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는 스펙 쌓기 열풍이 불었어요. 공부 외에 비교과 영역 활동까지 대입 필수 요소가 되면서 이를 관리하고 자기소개서를 써주는 신종 사교육도 등장했습니다. 수능은 학습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로 EBS 교재에서 70%를 연계 출제하기로 했고, 영역별 만점자 1%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학생들이 너무 어렵게 공부하지 않도록 국·영·수를 수준별(A,B형)로 선택하는 ‘선택형 수능’도 도입했죠. 그러나 수능 난이도는 매년 들쭉날쭉했고, 출제 오류도 빈번했습니다. 선택형 수능은 오히려 혼란만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죠.
 
입시제도의 급격한 변화로 혼란을 주는 것보다는 몇 가지 핵심 정책을 일관성을 갖고 꾸준히 추진한다면 사교육 문제 해결은 물론 학벌 중심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박근혜 대통령.2013)
박근혜 정부는 지난 정부의 선택형 수능을 폐기했습니다. 학습 부담 경감을 목표로 대입 제도를 개편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수능 영어·한국사 절대평가 전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도입입니다. 학종은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입학사정관제가 지나친 스펙 경쟁을 일으켰다는 비판에 따라 도입됐는데요. 각 학교는 교외 활동을 배제하고 학교 안에서의 교육 활동 위주로 학생부를 작성하고, 대학은 학생부를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입니다. 학교에서는 학종을 대비하기 위해 강의식 수업을 벗어나는 등 긍정적 변화도 나타났죠.
 
하지만 학종은 대학이 대체 뭘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는지 알 수 없어 ‘깜깜이 전형’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기준을 모르니 학생들이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해서 부담이 더욱 커졌죠. 게다가 매년 늘어나던 수시모집 비율이 70%를 넘으면서 정시 모집이 너무 줄었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포항여고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에 따라 대입 제도를 개편하겠다며 국가교육회의 주도 하에 대입 개편 공론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포항여고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에 따라 대입 제도를 개편하겠다며 국가교육회의 주도 하에 대입 개편 공론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교육은 가장 정의롭고 공정해야 한다. 입시제도는 단순하고 공정하다고 국민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문재인 대통령.2017)
문재인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 마련에 나섰습니다. 23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말했던 ‘입시 지옥에서의 해방’이 이번엔 이뤄질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벌써 회의적인 반응이 많습니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 대입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정부가 자기만의 대입 제도를 만들려고 하는 데 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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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