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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트럼프 속내 읽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2006년 당시 국무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가 한 만찬에서 뉴욕타임스 기자와 부시 대통령 이야기를 하다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 “그래서 말이에요, 내가 남편(husband)에게 그 이야기를 했는데….” 아차 싶었던지 그녀는 바로 말을 고쳤다. “부시 대통령(President Bush)에게 그 이야기를 했는데….” 라이스 장관은 독신이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한 신문의 만평은 “라이스가 부시를 남편처럼 생각하고 있는 본심을 들켰다”고 꼬집었다.
 
부시 대통령도 구설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번은 NBC방송에 출연해 교사들 앞에서 연설하는데, “난 모든 교사에게 감사(thank)드린다”고 해야 할 부분을 “난 모든 교사의 엉덩이를 때려주고(spank) 싶다”고 말하고 말았다. 비평가들은 “학창 시절 공부를 못하던 부시가 교사들에 대해 안 좋았던 속내가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것”이라고 흥미롭게 해석했다. 라이스나 부시의 진심이 뭐였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정치인의 말에는 숨기려 하는 속내가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한마디에서 진의를 읽곤 한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예외적 존재다. 말 한마디에서 진의를 찾기보다, 말 백 마디에서 허언(블러핑)을 소거해 속내를 찾아야 한다.
 
트럼프가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뒤 내놓은 여러 발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는 “비핵화를 천천히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비핵화 완료까지 ‘최대 압박’을 계속한다”는 원칙을 “이제 그런 말을 더는 쓰고 싶지 않다”고 뒤집었다. 일각에선 ‘고도의 협상술’로 본다. 유연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 의견으론 트럼프의 북핵 대응은 ‘무원칙’에 가깝다. 그때그때 자신이 처한 정치적 입지에 따라 표변한다. 그러니 ‘미국의 방침’과 ‘트럼프의 방침’이 충돌한다. 문제는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의 원칙이 곧 미국의 원칙이 될 것이란 점이다.
 
북한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자니 회담이 깨질 것 같고, 그렇다고 구체적 비핵화 논의 없이 회담을 실패로 끝내기엔 쏟아질 비난이 부담스러운 게 현재 트럼프가 직면한 상황이다.
 
“나는 나를 사면할 절대적 권리가 있다. 특검은 위헌이다.” 트럼프가 4일 트위터에 띄운 글이다. 난 이게 소거법에 의한 진짜 트럼프의 속내라고 본다.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트럼프의 목을 겨누기 시작했다. 별 알맹이가 없어도 트럼프가 반드시 이번에 북·미 회담을 해야 하고, 앞으로도 ‘수시로’ 해야 하고, 노벨평화상을 따야만 되는 이유가 숨겨져 있다. 특검과 탄핵의 방패막이로 북·미 회담만 한 게 없다.
 
트럼프가 김영철을 만난 뒤 “우리는 (북한과) 6000마일(약 9600㎞)이나 떨어져 있다”고 한 것도 또 하나의 속내로 읽힌다. 6000마일은 북한에서 미 서부까지의 거리다. 현 ICBM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트럼프는 뭔가에 꽂히면 그 숫자를 외워 인용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싱가포르에서 비핵화는 ‘향후 과제’로 넘기고 ICBM을 폐기(혹은 반출)하는 선에서 ‘타협’하려는 속내가 6000마일이란 숫자로 튀어나온 것일 수 있다. “일자리 10만 개가 날아갔다”는 말이 한·미 FTA 재협상 대공세를 알리는 시발점이 됐듯 말이다.
 
종전선언 가능성에 우리 정부는 들떠 있는 분위기라 한다. 하지만 어정쩡한 합의로 트럼프는 생색내고, 북한은 경제 숨통 트고, 한국은 계산서를 부담하는 ‘불균형 3각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런저런 걱정에 싱가포르 출장길이 그리 홀가분하지 않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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