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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법원 성사 위해 무리한 사법행정권 행사 정황

김명수 대법원장이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에 참석해 사법부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에 참석해 사법부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김경록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5일 추가 공개한 문건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무리하게 사법행정권을 행사한 정황이 여럿 담겨 있다.  
 
이 문건들을 보면 양승태 코트가 상고법원 도입에 ‘올인’한 나머지 청와대와의 부적절한 교감은 물론 법관 통제에까지 나선 것으로 의심된다. 사상 초유의 ‘사법부 불신’으로 이어진 이번 파동이 그로부터 야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특조단은 이전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발견된 410여 건의 문건 중 8건을 추가로 공개하고, 5월 25일 결과보고서에 인용된 90개 문건의 원문(비실명화)도 공개했다. 안철상 행정처장은 “향후 공개 범위는 더 넓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상고법원 판사 임명, 청와대 뜻 반영”
 
‘BH 민주적 정당성 부여 방안’(2015년 9월 5일 작성)에는 상고심 제도의 키를 쥔 청와대가 사실상 상고법원에서 판사의 임명권을 행사하도록 하면서도, 외관상으론 사법부 독립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여야 한다는 ‘고민’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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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처는 문건에서 “BH 입장에서 ‘선정’에 대한 CJ(chief justice·대법원장)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함”이라고 적었다. 이어 “임명 절차의 핵심인 선정 절차에서 BH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 사실상 최종 후보자의 결정권 또는 거부권을 (BH가) 행사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VIP 보고서’(2015년 8월 3일 작성)는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 상고법원 도입을 설득하려고 가져간 문건으로 추정된다. 행정처는 상고법원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님 의중 최대한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라고 적었다. 진보 인사의 대법관 임명을 막기 위해 상고법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폈다.  
 
상고법원의 대안인 ‘대법관 증원론’에 대해 “배후에서 증원론을 강력 지지하는 민변 등 진보세력이 최고 법원 입성을 시도할 것”이라는 경고성 문구를 담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사법권 독립 침해 안 되게 고민도
 
상고법원 관련 ‘전략 문건’ 외에도 법관 통제와 세월호 참사 재판부의 임의배정을 검토한 문건도 공개됐다. 2015년 9월 작성된 ‘문제 법관 시그널링 및 감독 방안’(인사조치 추가) 문건에 따르면 행정처는 ‘승진을 포기한 판사’(일명 승포판)를 ‘문제 법관’으로 분류해 감찰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 법관들의 스크린도어 출입 기록, 인터넷 사용 시간, 판결문 수 등을 토대로 ‘빅 데이터’를 축적해 조치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 당시 행정처가 영장심사를 청와대 협상카드로 삼았다는 의혹이 담긴 문건도 공개했다. ‘성완종 리스트 영향 분석 및 대응방향 검토’ 문건에서 행정처는 이 사건이 상고법원 도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했다. 행정처는 “적정한 영장 발부 외에는 다른 (청와대) 협력방안이 없다”며 “BH 측의 입장을 최대한 경청하는 스탠스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적었다.
 
행정처는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문건에서 “박지원 의원 일부 유죄 판결, 원세훈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등 여권에 유리한 재판 결과→BH에 대한 유화적 접근 소재로 이용 가능”이라고 밝혔다.
 
 
“성완종 리스트 영장, 청와대와 협력”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이 같은 문건을 작성한 것이 “사법부의 위신을 추락시킨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데 법조계의 이견은 없다. 하지만 문건 내용대로 실제 시행됐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는 주장이 고참 판사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가 검찰 수사 대상이 되는 등 ‘형사 조치’가 이뤄질 경우 사법부의 근간인 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다.
 
4일 서울고법 판사회의가 수사 반대 입장을 결의한 데 이어 5일 서울고법 부장판사 회의가 형사고발, 수사의뢰 등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그런 맥락이다. 김 대법원장이 특조단의 조사결과를 뒤집고 형사고발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문건대로 행동했는지는 논란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특별조사단 조사로 드러난 사법행정권의 부적절한 행사가 사법부 신뢰를 훼손하고 국민에게 혼란과 실망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고법 부장판사들은 또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사법부 구성원들의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소장 판사들의 수사 촉구에 반대하는 한편 사법부의 내홍을 조기에 수습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서울고법에 이어 7일 예정된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도 고법 부장판사들과 비슷한 우려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장 출신의 한 원로법관은 “사법행정권이 남용되고 재판 거래 의혹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법부 구성원 입장에서 면목이 없다. 하지만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겠다고 해서 갈등의 최종 해결기관이 돼야 할 사법부의 재판 결과가 모두 의심받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형사조치를 둘러싼 소장 판사들과 고참 판사들의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11일로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선언’을 의안으로 올렸다. 엄정한 수사를 주장하는 젊은 판사가 많아 사법부에 대한 검찰 수사에 반대하는 고참 판사들과는 다른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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