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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클라리넷 신동은 8년동안 뭘했을까

8년 만에 한국에서 독주회를 여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사진 크레디아]

8년 만에 한국에서 독주회를 여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사진 크레디아]

 피아노와 키가 비슷한 작은 소년이 클라리넷을 들고 무대에 오른다. 웬 아이가 어려운 관악기를 불까 싶은 미심쩍은 마음은 첫 몇마디에 날아가버린다. 10살에 클라리넷을 시작했던 김한(22)의 등장은 이랬다.

 
2007년 11세에 서울 금호아트홀의 영재 콘서트로 데뷔한 후 클라리넷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13세엔 형도 아니라 거의 삼촌 뻘인 클라리넷 연주자들과 국제 콩쿠르에서 똑같이 경쟁해 특별상을 받았다. 그의 할머니는 성악가인 박노경 서울대 명예교수, 큰아버지는 작곡가인 김승근 서울대 국악과 교수다.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부터 두각을 나타내기는 힘든 관악기를, 음악가 집안에서 타고난 재능으로 뛰어나게 불어 유명해진 소년이 김한이었다.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 1학년을 마치고 2010년 한국을 떠났던 김한은 그 뜨겁던 스포트라이트에서 일부러 벗어났다. 별다른 연주 소식이나 떠들썩한 승전보도 전해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8년 만인 이달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예고하며 나타났다. 지난달엔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의 부수석으로 임용됐다는 소식도 전했다. 클라리넷 잘 불던 신동은 어디에서 뭘 하다 돌아온 걸까.

 
클라리넷 연주자 김한의 어린 시절. [중앙포토]

클라리넷 연주자 김한의 어린 시절. [중앙포토]

“10대에 10대답게 보냈다. 그 힘으로 지금 음악을 한다.” 5일 서울에서 만난 김한은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신동’이란 타이틀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지금 보면 그게 참 다행이다”라고 했다. 단순히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싱가포르의 예술학교로 유학을 갔던 그는 영국에서 연주한 것을 계기로 중고등학교 과정인 이튼 칼리지에 음악 장학생으로 입학 제의를 받았다. “이튼 칼리지에서는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생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축구하고 친구들이랑 놀며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숙제가 너무 많아서 클라리넷 연습을 못하는 날도 많았다. 공부를 다 마치고 남는 시간에만 연습을 할 수 있었고 내 어린 시절 연주 영상을 보면서 ‘정말 잘 했었구나’하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10대 아이답게 심각한 조바심이나 고민은 없었다. “클라리넷 연주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무의식 중에 당연히 하고 있었지만 음악에만 집중하고 거기에만 온 시간을 바치는 생활은 하지 않았다.”

 
그는 “그때 평범한 아이로 살았기 때문에 다시 음악에 완전히 집중할 에너지가 남았다”며 “10대 때 에너지를 다 써버렸으면 지금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길드홀 음악원을 거쳐 독일 뤼벡 음대에 들어가면서 클라리넷의 기본부터 다시 찬찬히 들여다봤다. 자비네 마이어라는 전설적 클라리네티스트에게 배우기 위해 독일로 갔지만 첫 레슨부터 쉽지 않았다고 했다. “시험삼아 소리를 내보려고 음 몇개를 불었는데 왜 생각없이 소리를 내느냐고 지적을 받았다.”  
8년 만에 한국에서 독주회를 여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사진 크레디아]

8년 만에 한국에서 독주회를 여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사진 크레디아]

 
그는 “음악적 표현과 내고자 하는 소리에 따라 악기를 잡는 자세, 부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신동에서 보통 학생으로 자랐던 김한은 좋은 소리와 표현을 위해 고민하는 음악가로 변화하며 성장해 무대로 돌아왔다. “어렸을 때는 연주가 특별히 어렵다는 생각도 없었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진 재능만 믿고 연주 했는데 이제는 내가 가진 것과 고민해 만들어낸 것의 균형을 잘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연주가 더 어렵다”고 했다.

 
독주자로 출발했고 다른 목관 연주자 함경(오보에), 조성현(플루트)과는 바이츠 퀸텟이라는 5중주단도 만들었다. 올 9월엔 핀란드에서 본격적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시작한다. 독주부터 대규모 합주까지 다양한 무대에 선다. 김한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대를 떠나다시피 했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무대도 있고 연주가 이어지는 게 행운이다”라며 웃었다. 김한의 말처럼 음악에만 몰두하지 않고 살아봤던 시간은 그의 음악의 힘이다. 다시 한번 김한의 말을 빌리면 “음악가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감각적이고 순발력있다는 평을 들었던 ‘신동’ 김한의 음악은 이제 사람의 목소리에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독주회는 10일 오후 2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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