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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올인' 실제 주인공 차민수 5단 "바둑이 그리워 돌아왔다"

'시니어바둑리그'를 통해 국내 바둑계로 돌아온 차민수 5단. 정아람 기자

'시니어바둑리그'를 통해 국내 바둑계로 돌아온 차민수 5단. 정아람 기자

"바둑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차민수(66) 5단이 시니어바둑리그를 통해 국내 바둑계에 돌아왔다. 그는 2003년 배우 이병헌이 출연했던 SBS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이다. 1984년 프로 도박사가 된 그는 1986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넘게 포커 세계 랭킹 3위를 지켜냈고, 포커 세계 챔피언에도 오른 바 있다. 2007년 '카지노인터내셔널그룹(CIG)'을 설립해 카지노 관련 사업을 했을 정도로 도박업계에선 유명한 인물이다.
 
1976년 미국에 이민을 떠난 뒤 이따금 한국을 찾았던 차 5단이 다섯달 전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이번엔 완전히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집을 구했다. 한국에선 프로 도박사가 아닌 프로기사로 활동을 개시했다. 4개월 넘게 진행되는 2018 시니어바둑리그에 출전 의사를 밝혔고, 음성인삼 팀의 선수로 발탁됐다. 시니어바둑리그 선수 가운데 최고령자다. 
시니어바둑리그 개막전에서 만난 음성인삼의 차민수(왼쪽) 5단과 영암월출산의 김종수 8단. [사진 한국기원]

시니어바둑리그 개막전에서 만난 음성인삼의 차민수(왼쪽) 5단과 영암월출산의 김종수 8단. [사진 한국기원]

 
시니어바둑리그 개막전이 열린 4일,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 근처에서 만난 차 5단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신 곳이 충북 음성인데, 음성인삼 팀이 나를 선수로 뽑더라. 어머니께서 나에게 바둑을 다시 두라고 하시는 의미인가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둑 선수로 복귀한 소감을 묻자 "아직은 선수로 뛰는 게 익숙하지 않고 어리둥절하다. 그간 인터넷으로 가끔 두었을 뿐 실전 대국은 거의 하지 못했다. 실전 감각이 아직 잘 살아나지 않은 거 같다"고 밝혔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차 5단의 인생은 말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다. 그는 과거 서울 영등포구의 유명 극장이었던 경원 극장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74년 프로 입단했지만, 사고뭉치였던 그를 어머니가 1976년 미국으로 쫓아내다시피 보낸 뒤 밑바닥 인생을 경험했다. 주유소 점원으로 일하며 하루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좌절에 빠져 마약에 손을 댔으며 이혼을 경험했다. 수중에 단돈 18달러만 남아 거지처럼 살기도 했다.  
 
프로 도박사로 재기할 수 있었던 건 치프 존슨 캘리포니아주립대 포커학 교수 덕분이었다. 한국 프로기사가 미국에 이민 왔다는 소식을 들은 치프 존슨 교수는 차 5단을 찾아와 '포커를 가르쳐줄 테니 대신 바둑을 지도해달라'고 제안했다. 포커를 기껏해야 '운칠기삼(運七技三)'의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차 5단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프로 도박사로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 등 큰 성공을 거둔 차민수 5단. [사진 차민수 제공]

프로 도박사로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 등 큰 성공을 거둔 차민수 5단. [사진 차민수 제공]

 
차 5단의 설명에 따르면, 도박은 수학적인 계산과 확률에 의해 최상의 정답을 찾아 나가는 정밀한 게임이다. 최고수가 되기 위해 바둑에서 '기재'가 필요하듯, 도박에서는 '카드 센스'가 필요하다. 카드 센스는 포커 카드를 순간순간 독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차 5단은 남다른 카드 센스가 있었다.
 
"나는 사람 이름은 20번 들어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숫자는 한 번 들으면 바로 기억한다. 젊은 시절 눈이 좋을 때는 상대가 마지막 장을 뜨는 모습을 보고, 좋은 카드인지 나쁜 카드인지 바로 파악했다. 순간적인 분위기를 보고 상대의 패를 읽는 것이다."
 
1986년부터 그는 카지노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해부터 1997년까지 포커게임 수입 1위를 기록했다. 당시 한 해에 250만 달러(약 26억원)에서 400만 달러(약 42억원)를 벌어들였다. 한 해 100만 달러(약 10억원)를 넘게 버는 도박사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차 5단의 인생 이야기는 2003년 SBS 드라마 '올인'으로 제작되며 다시 한번 큰 화제를 끌었다. 
 
2003년 드라마 '올인' 팀과 만난 차민수 5단. 왼쪽부터 배우 이병헌, 차민수 5단, 유철용 드라마 감독. [사진 차민수 제공]

2003년 드라마 '올인' 팀과 만난 차민수 5단. 왼쪽부터 배우 이병헌, 차민수 5단, 유철용 드라마 감독. [사진 차민수 제공]

배우 이병헌과 차민수(오른쪽) 5단. [사진 차민수 제공]

배우 이병헌과 차민수(오른쪽) 5단. [사진 차민수 제공]

 
"바둑과 포커는 끝을 알 수 없다"
 
프로 도박사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마음 한 편에는 늘 바둑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늘 바둑이었다"고 말했다. 바둑과 포커 가운데 무엇이 더 어렵냐고 묻자 "포커와 바둑 둘 다 매우 어렵다. 차이가 있다면 바둑은 수읽기 자체가 어렵지만, 포커는 상대에 따라 판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어 "포커는 상대의 실력을 정확히 알기 어렵고, 무슨 패를 가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상대방에 따라 게임을 하는 방식이 전혀 달라진다"며 "상대에 따라 변화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심리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바둑과 포커의 닮은 점에 대해서는 "둘 다 끝이 없고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끝이 정해져 있으면 재미가 없는데, 바둑과 포커는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다. 또한 '승부'라는 면에서 보면 바둑과 포커는 공통점이 많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바둑에서 목표를 물었다. 차 5단은 "나의 목표는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나는 살면서 워낙 세계적인 천재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천재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다. 천재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다. 이왕 바둑계로 돌아왔으니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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