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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호수’ 칸트 113년 만의 한국어 전집

독일 철학자 칸트

독일 철학자 칸트

“학회가 철학 분야에서는 최초로, 칸트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게 아닌가 합니다.”
 
다섯 명의 칸트 전문가들은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4일 낮 서울 서소문로의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 국내 첫 칸트 전집(한길사) 출간 기념 간담회장 풍경이다. 집단지성의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칸트학회의 전집 출간은 2013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으면서 본격화됐다. 1905년 석정(石亭) 이정직의 『강씨[칸트]철학설대약』을 시작으로 칸트가 국내 소개된 지 1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순수이성비판』 등 ‘세 비판서’ 위주로 소비될 뿐 전모가 번역되지 않고 있었다. 학술 가치가 높은 서한집이나 강의록 등이 외면당했다. 전집이 진작에 출간된 일본, 심지어 중국 비해서도 뒤떨어져 있었다는 얘기다.
 
전집 간행사업단 책임연구원을 맡은 영남대 최소인 교수는 “최대한 많은 학자가 참여해 공동번역했고, 외국 학자까지 초청해 번역은 물론 해제·역주 부분까지 심사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칸트 전집이 출간됐다. 사진은 그의 전집 5권.

칸트 전집이 출간됐다. 사진은 그의 전집 5권.

학자들은 특히 국내 초역, 논란 많은 용어의 번역을 통일한 점을 전집의 성과로 꼽았다. 칸트 전집은 모두 16권이다. 1차로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등 세 권이 먼저 나왔고 늦어도 내년 가을까지는 완간된다. 그중 1~3권, 5권, 10·11권, 14·15권이 전체 또는 부분 초역이다(칸트학회 홈페이지(www.kantgesellschaft.co.kr) 참조).
 
번역 용어 통일의 대표적인 사례는 칸트 철학의 성격 규정에 핵심적인 두 형용사인 ‘transzendental’과 ‘a priori’다. 역자에 따라 ‘선험적’ ‘선천적’ ‘초월적’ 등으로 뒤섞여 옮기는 두 용어 번역의 통일을 위해 학회는 두 차례 학술대회까지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합의하지 못했고 결국 용어조정위원회가 ‘transzendental’은 ‘선험적’으로, ‘a priori’는 음역해 ‘아프리오리’로 번역하기로 했다.
 
이충진 칸트학회 회장은 “앞으로 더 좋은 번역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번 학회의 번역 텍스트가 일종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transzendental’ 등의 번역은 학회 번역을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칸트 전문가 공동체의 결정사항이어서다.
 
칸트에 대한 대중의 상식은 시계처럼 오차 없는 철학자였다는 정도다.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정언명령의 저작권자로, 윤리·도덕적 딜레마 상황의 입법권자처럼 여겨졌다. 최소인 교수는 “칸트 철학을 흔히 호수에 비유한다.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이 칸트로 흘러들었고, 칸트 이후 철학이 모두 칸트로부터 흘러나왔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충진 회장은 “칸트 철학을 왜 21세기에 읽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질 것을 요구하는 게 칸트 비판철학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칸트 철학은 찾는 사람이 적어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인문 인프라”라며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읽는 ‘칸트 학교’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수배 충남대 교수, 김재호 서울대 교수, 칸트학회 김화성 총무가 함께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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