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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베트남전쟁에 들뜬 김일성에 "그 얘긴 그만"

[차이나 인사이트] 한반도에서 전쟁의 운명 가름한 북·중 정상회담
 
정상회담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위험성이 상존한다. 실질 권력을 장악한 최고 지도자가 직접 교섭에 나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한과 중국의 지도자들은 일찍부터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김일성은 기록으로 확인된 것만 24회, 김정일도 최소 9회 이상 중국을 방문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최근 잇따라 중국을 찾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 직후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할 것으로 알려진다. 북·중 관계에서 정상회담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  
 
북·중 정상회담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운명을 결정했다. 1950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 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의 남침에 대한 동의와 지지를 결정했다. 이로 인해 김일성은 남침을 강행할 수 있었다. 반면 75년 4월에 있었던 북·중 정상회담의 결과는 달랐다. 김일성이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와 같은 것”이라며 남침 무력통일 구상을 밝히자 마오가 “정치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며 김일성의 말을 막았다. 남침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북한과 중국 간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를 영구적인 동맹 관계로 묶기도 했다. 61년 7월 김일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동맹조약을 체결하며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당해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될 경우 모든 힘을 다해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자동개입조항을 삽입했다. 이 조약은 유례없이 갱신 기간을 정하지 않아 영구조약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김일성이 북·중 동맹조약을 체결하기 불과 5일 전 모스크바에서 먼저 북·소 동맹조약을 체결해 중국으로부터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중 정상회담은 긴장과 대립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가져오는 역할도 종종 수행했다. 64년 11월부터 70년 4월까지 북·중 간엔 정상회담이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새로 등장한 브레즈네프 중심의 소련 지도부에 대한 북·중의 평가가 엇갈렸고, 베트남전쟁에 대해서도 입장 차이가 발생했으며,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의 김일성 비판 대자보로 인해 북·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이처럼 파국으로 향하던 양국 관계를 회복시킨 건 70년 4월 저우언라이의 평양방문 회담이었다. 저우는 김일성과의 정상회담에서 “북·중 관계는 강산이 맞닿은 이웃이며 우리의 전통 우의는 피로 다져진 관계(鮮血凝成)이고 입술과 이가 서로 의지하는(脣齒相依) 걸 구현하는 것”이라 말하며 관계 회복 의지를 피력했다. 이에 대해 김일성은 “우리 양국 간에는 일정 기간 부자연스러운 시기가 있었지만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화답하며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이뤘다.
 
92년 8월의 한·중 수교는 북한 지도부에 커다란 충격과 배신감을 안겼고 상당 기간 북한과 중국 간에 정상회담이 중단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김정일이 2000년 5월 베이징을 방문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지기까지 8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김정일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은 옳은 것으로 조선노동당은 이를 지지한다”고 선언해 양국 관계를 회복하는 한편 중국의 대북 경제원조를 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김정일 시기 본격화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양국 관계는 물론 최고 지도부 간의 교류도 원활하지 못했다.
 
북·중 정상회담은 중국에 적지 않은 이점이 있다. 중국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존재감을 부각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감소한다는 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2001년 9월 평양을 방문한 장쩌민은 김정일에게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16자 방침을 내놓았다. “전통을 계승하고 미래를 지향하며 선린우호 관계 속에 협력을 강화하자(繼承傳統 面向未來 睦隣友好 加强合作)”는 게 그것이다.
 
아울러 장쩌민은 김정일에게 ‘5개 항 건의’를 제시했다. “양국 간 고위층 교류를 유지하고, 국제와 지역의 중대 문제에 대한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며, 중국 공산당과 조선 노동당의 양당 소통과 교류를 강화하고, 양국의 경제무역 협력을 발전시키며, 청소년들의 왕래 및 인적 교류를 강화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는 이후 후진타오(胡錦濤)와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지도자들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늘 강조하는 내용이다.북·중 정상회담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북한 지도자의 방중은 대부분 비밀방문이거나 비공식 방문 형태를 띤다는 점이다. 보안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인데 오히려 이 점이 세계의 시선을 끈다. 또 북·중 최고 지도자 교류는 정부 주도가 아니라 당 대 당 관계의 형태를 띤다. 따라서 북한 지도자를 가장 먼저 영접하는 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다. 북·중 지도자들은 국제 정세가 엄중할 때는 1년에도 서너 차례 만났다. 미·중 관계 정상화가 논의되던 71~72년에 김일성과 저우언라이는 네 번이나 회담했다. 김정일 역시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네 차례나 방중해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다졌다.
 
이제 김정은의 두 차례 방중에 이어 시진핑이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을 찾으면 북·중 관계는 전략적 협력을 위한 정상궤도에 완전히 진입하게 된다. 시진핑은 평양에서 김정은으로부터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듣고자 할 것이다. 지금까지 북·중 역사를 볼 때 양국 지도자들이 정상회담을 빈번하게 가진 건 이를 통해 실무 관료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거나 진전시키기 위해서였다. 북·중은 관행적인 정상회담을 통해 지도자들 사이의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하고 나아가 상대국에 대한 관심과 정보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양국 국민의 호감도 또한 제고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이제 다시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북·중 간의 정상회담 회복을 통해 양국 관계를 밀착시키고 있다는 건 우리 입장에선 한동안 한국으로 기울었던 중국의 균형추가 다시 북한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에겐 또 하나의 숙제가 부과되는 셈이다. 결국 우리 정부로선 향후 북한 비핵화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좋든 싫든 중국의 역할과 존재감을 인정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건설적 조력자로서 중국을 견인하는 정교한 접근법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하겠다.
 

◆박병광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중국정치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만정치대학 방문학자 역임. 현재 한국세계지역학회 회장으로 외교부 평가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대외관계와 군사안보 문제 등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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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