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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들을 위한 각오

문병주 사회 부데스크

문병주 사회 부데스크

얼마 전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항소심이 시작됐다. 중학생 딸의 동창을 성추행하고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후텁지근하고 좁은 재판정은 취재 기자들로 붐볐다. 당연히 관심사는 예전과 달리 삭발을 하고 나온 이영학이었다. 그 맞은편엔 노신사 한 명이 자리했다. 35년째 검사 생활을 하고 있는 서울고검 정명호(61) 검사였다. 이 재판 외에도 오전부터 6시간 넘게 그는 자리를 지켰다. 며칠 후 그를 다시 만났다. 조심스럽게 “지휘 간부도 아닌데 왜 변호사 개업 안 하시고 재판정에 앉아 계시느냐”고 물었다. 사법연수원 13기인 그는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과 동기다. 문무일(18기) 검찰총장과 직속 상관인 조은석(19기) 서울고검장이 한참 후배다.
 
“검사직이 좋아서죠. 10년 전쯤 검사장 승진이 안 됐을 때 개업도 고려했지만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품위를 지키며 살 결심을 했어요.” ‘더 킹’과 같은 흥행 영화들을 통해 각인된 검사라는 직업의 권력 지향적 모습이 아니었다. 최근 보도들을 통해 돋보였던 엄청난 의기가 있는 검사들의 이미지와도 멀었다.
 
언뜻 김웅(29기) 인천지검 검사가 ‘생활형 검사의 사람공부, 세상공부’라는 부제로 쓴 『검사내전』이 떠올랐다. 검사들도 일반 회사 직원이나 다름없는 샐러리맨처럼 산다는 내용이다. 프롤로그에 담은 몇 줄은 특히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한 선배 검사로부터 들은 말을 이렇게 전했다. ‘자신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라는 것이었다. 나사못의 임무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이 맡은 철판을 꼭 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는 내 할 일만 하겠다는 식으로 해석한다면 “당신도 대한민국 검사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선배 검사의 말은 뇌리를 깊이 파고들었다. 어떤 정치적 파동이나 사회적 변화가 있더라도 오늘 나에게 맡겨진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역 쪽에 갈 때면 어김없이 칙칙한 검찰청 건물로 눈길이 간다. 수년 목격한 바로는 일찍 찾아온 더위에 에어컨도 못 켜는 사무실에서 선풍기와 부채에 의지해가며 수많은 검사와 수사관이 각자 맡은 크고 작은 사건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대다수는 사회 현상에 대해 공개적 입장을 발표하지도 않고 기자 회견을 하지도 않는다.
 
이참에 같은 샐러리맨으로서 이런 각오를 해본다. 나사못이 되진 못하더라도 단단하게 철판을 물고 있는지, 녹은 슬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고. 또한 여력이 된다면 오래오래 녹슬지 않도록 페인트 칠도 자주 해줘야 한다고.
 
문병주 사회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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