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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두테르테의 꿈 ‘아시아의 진주’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필리핀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73)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한 살이 많다. 세계 최고령 국가 지도자인데 그의 태도와 맵시에선 젊은 기운이 넘쳐 난다. 어제 한국에 입국할 때도 노타이에 검은색 가죽잠바를 걸쳤다. 쏘는 눈빛으로 의장대 사이를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니 조폭 잡는 강력계 형사 같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정치인 아버지의 엄한 가정 교육에서 반항적인 10대를 보냈다. 차량과 오토바이의 스피드를 즐기고 총기 수집이 취미다. 고교 시절 퇴학을 두 번 당했다. 왜소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겁이 없고 싸우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평판이 생겼다.
 
두테르테는 오늘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만찬도 같이한다. 재작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때 주머니에 손을 끼고 껌을 씹는 것 같은 이상한 행동은 안 하길 바란다. 외교 소식통들은 두테르테는 막상 회담에 들어가면 진지하고 겸손하고 다정다감해진다고 했다. 빈곤과 외환(外患)에 시달리는 조국을 과거 화려했던 ‘아시아의 진주’로 부활시키는 것이 그의 꿈이다. 두테르테가 한국에서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것은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운동’이라고 한다.
 
두테르테 입국 때 그를 맞이한 한국 측 인사는 흥미롭게도 전제국 방위사업청장이다. 두테르테의 가장 큰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방위사업청은 외국에 한국 무기를 파는 창구다. 필리핀 대통령이 한국의 뛰어난 전투기나 고속정·잠수함 등을 도입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의 무력 시위로 영유권을 빼앗기다시피 한 필리핀 서해(스카버러 암초섬)를 회복하기 위해 두테르테가 암중모색을 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스카버러 암초섬은 필리핀 수비크만에서 서쪽으로 126해리,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남쪽으로 500해리 떨어졌다. 거리로 보면 필리핀 땅이다.
 
미국·필리핀 동맹에 따라 수비크만에 미 7함대 해군, 그 주변에 클라크 공군기지가 있던 40여 년간 중국은 스카버러를 자기 영해라고 주장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상황이 바뀐 건 1992년. 반미(反美)운동의 여파로 필리핀 의회가 ‘미군 주둔 재연장 법안’을 부결시켰다. 충격 속에 미군이 철수하자 힘의 공백을 중국이 메우기 시작했다. 2012년 어느 날 중국이 암초섬에 콘크리트로 활주로를 깔아 H-6 전략폭격기를 이착륙시켰다. 중국 전함과 어선들이 드나들었다. 스카버러는 순식간에 중국 손에 넘어갔다. 필리핀 사람들은 속수무책, “우리 땅을 도둑질하지 말라”고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그렇다고 군인이 고작 10여 만 명, 세계 100위권인 경제력에다 사분오열된 필리핀 정치로 중국과 맞짱 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국은 위협만 한 게 아니다. 찾아가면 수백억 달러씩 경제 지원을 챙겨 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다. 지기 싫어하고 강한 자에게 대드는 두테르테도 “중국과 전쟁을 해서 이길 힘이 없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꼬리를 내렸다. 두테르테는 지금 때를 기다리고 만들고 있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을 키우고 국민이 외국에 나가 우스운 대접을 받지 않는 경제를 일으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필리핀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부국(富國)이었다. 마르코스라는 희대의 착취적 독재자(1965~86년 재임) 아래서 국민은 빈곤에 빠졌고, 포퓰리즘이라는 민주화 운동의 부작용으로 미군이 철수하자(92년) 국력은 한 번 더 쇠퇴했다. 한국은 아슬아슬하게 필리핀의 실패를 피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아시아의 부국 소리를 듣고 있으나 더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추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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