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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같은 느낌 中에겐 못느껴"···北, 美와 협상때 자주 불평했다

북 “평양서 하자” … 미 “그럼 미루자” 압박해 싱가포르 관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뒤 백악관을 떠나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배웅하고 있다. NBC뉴스는 이날 ’김영철 부위원장에게는 우방 최고위급 외교관에게 주어지는 의전이 펼쳐졌다“고 보도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뒤 백악관을 떠나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배웅하고 있다. NBC뉴스는 이날 ’김영철 부위원장에게는 우방 최고위급 외교관에게 주어지는 의전이 펼쳐졌다“고 보도했다. [AP=연합뉴스]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식 발표에 따라 드디어 북·미 정상회담이 확정됐다.  
 
지난 3월 8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한 지 83일 만이다. 그동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두 차례에 걸친 전격 방북, 트럼프의 돌발적인 회담 취소, 김영철의 친서 답방 등 드라마 같은 극적 반전들이 있었다. 그 물밑에선 남·북·미·중 간 숨 막히는 첩보전과 밀고 당기기가 거듭됐다. 한·미·일 관계자들이 전한 막전막후를 소개한다. 
  
1 미국, 중재 아닌 북한과 직거래 원했다
 
시간은 거슬러 지난해 여름. 북한 정보 수집과 대북 임무를 전담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KMC)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북한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쪽과 새로운 ‘라인’을 만들고 싶다.” KMC의 답신은 ‘오케이’. KMC도 내심 새로운 라인의 필요성을 느끼던 차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북한 지도부 숙청 과정에서 기존 라인이 실권을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라인이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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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KMC도 김영철에 주목하고 있었다. 김영철은 북한 정보기관인 국가보위성 수장 김원홍과 갈등을 빚고 2016년 여름 혁명화 조치를 당했던 인물. 김원홍은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과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등 고위 간부들의 숙청을 주도하면서 ‘2인자’로 자리 잡았고 김영철도 그 희생양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후 김원홍이 2016년 말 실각하면서 김영철은 다시 권력을 되찾았다. 이후 지난해 여름 CIA에 손을 내민 것이다.
 
당시 미국의 대북 라인은 국무부가 주도하고 있었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였던 조셉 윤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중심으로 한 뉴욕채널은 지난해 6월 북한에 억류된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미국으로 데리고 나오는 데 극적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귀국한 웜비어가 6일 만에 숨지면서 미국 내 대북 강경 여론이 싸늘하게 변한 것이다. 급기야 트럼프는 9월 취임 후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 발언을 퍼부었다. 회의장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자승남 주유엔 북한대사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트럼프가 “북한 완전 파괴” “로켓맨” 발언을 쏟아내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무부의 뉴욕채널이 사실상 문을 닫는 순간이었다.
 
이 와중에 자연스럽게 전면 부상한 게 폼페이오(당시 CIA 국장)-김영철 라인. 이들은 여름 첫 대화를 시작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제3국에서 수차례 만나 정상 간 회동 가능성을 탐색했다. 
 
올해 초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서훈 국정원장-김영철 부위원장 간 직접 대화가 열리기 훨씬 전의 일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김영철이 대북제재 명단에 올라 있어 제3국의 협상 장소를 찾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 관계자는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정부의 중재로 북·미 간 대화 라인이 열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은 훨씬 이전부터 북한과 긴밀한 접촉을 해왔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미·북 간 직거래로 해결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 북한, 9·9절 이전 회담 개최 원한 듯
 
미국은 일찌감치 싱가포르를 후보지로 찍었다. 트럼프는 사전에 ‘개최 장소로 부적절한 곳’을 협상팀에 ‘지침’으로 전달했다. 북한·한국(판문점 포함)·몽골 등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협상 초기 미 외교안보팀 내부 회의에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싱가포르는 중국의 입김이 너무 강한 곳 아니냐”며 태클을 걸고 나서면서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싱가포르가 중립적 성향의 국가이며 경호·의전 등에서 미국이 충분히 분위기를 장악해 나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논란이 가라앉았다. 이번에도 폼페이오의 승리였다. 한때 김정은이 어린 시절 유학했던 스위스의 제네바도 물망에 올라 사전답사팀이 시찰까지 마쳤지만 북·미 회담을 반대하는 ‘시위대 우려’ 때문에 접었다. 북한은 ‘대안’으로 몽골을 주장했지만 인프라 문제로 후보에서 사라졌다.
 
개최지 결정의 변곡점은 폼페이오의 2차 방북이 이뤄진 지난달 9일. 평양 고려호텔에 폼페이오 장관 일행을 초대한 김영철은 싱가포르로 잠정 합의돼 있던 북·미 정상회담 장소를 평양으로 뒤집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미 소식통은 “김영철이 식사시간 90분 중 50분을 ‘평양에서 열자’는 이야기를 반복했다”고 전했다. 김영철은 “미국과 조선(북한) 모두 자기 땅이 있는데 뭐하러 딴 데서 하느냐. 트럼프 대통령이 과감하다고 하는데 이번에 한번 평양에 와서 통 크게 한번 하시라. 경호도 100% 보장되는 것이 평양이다”고 주장했다. 결국 최종 담판은 이어진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였다. 김영철처럼 강하게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김정은도 은근히 평양 개최를 내비쳤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미국은 ‘싱가포르 안’을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다. 당시의 상세한 대화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못 하겠으면 북·미 정상회담을 연말 이후로 미루자”는 미국의 ‘배수진 작전’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백악관에 정통한 소식통의 이야기다. 북한이 정권수립 70주년을 맞는 올 9·9절 이전에 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3 김정은·폼페이오 2차회담서 신뢰 싹터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두 번째 방북을 위해 지난달 7일 심야(현지시간)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출발했다. 당초 계획은 하루 전인 6일 밤 출발 예정이었지만 북측이 갑자기 “위원장 동지가 급한 일이 생겨 그러니 약속을 이틀만 늦추자”고 제안해왔다.  
 
‘급한 일’이라는 말에 미국 측은 직감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러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 주석을 만나러 간다는 이유로 미국의 국무장관을 나중에 오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절충 끝에 하루만 연기하는 걸로 하고 9일 평양에 들어갔다.
 
폼페이오-김정은의 2차 회동은 1차 때와는 많이 달랐다. 1차 회동과는 달리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했고 악수도 활짝 웃으며 나눴다. 한 소식통은 “2차 회동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쌓이면서 대화도 급진전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위기는 ‘트럼프의 취소 편지’였다. 워싱턴의 소식통은 “김영철이 대화를 주도해온 데 대해 북한 외무성 강경파가 ‘반란’을 일으켰고, 미국 내에선 강경파 볼턴이 폼페이오 주도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게 트럼프 취소 편지의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하마터면 물거품이 될 뻔한 위기에서 다시 대화 재개로 물꼬를 트는 데 성공한 것도 역시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의 접촉 때문이었다. 두 사람 간에 쌓인 신뢰,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공히 회담에 대한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4 미국이 보는 ‘김정은의 변심’ 이유는
 
트럼프가 김정은과 대화에 나서게 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표명한 김정은이 지난해 핵무력 완성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을 보면서 대화 타이밍을 노려왔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지난해 말부터 북한에 자금 유입이 차단되고 ‘돈줄’ 역할을 하던 북한 노무자들의 해외 송출이 끊기면서 북한 내부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간파했다. 소식통은 “우리가 판단하기론 서서히 나타나던 경제제재 효과가 지난해 말부터 확실하게 북한 내부에서 드러났다”며 “이때부터 북한 수뇌부가 뭔가 변화를 도모하려 했고 마침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완성 단계에 들어가면서 병진노선을 경제 쪽으로 선회하는 명분도 있었다”고 진단했다.
 
또 하나는 중국에 대한 불만과 불신. 협상 과정에서 북측은 한·미 동맹의 견고함과 상호 신뢰를 빗대 “중국엔 그런 걸 못 느끼겠다”란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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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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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