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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완성한 사대는… 전략적 사대? 이념적 사대? 맹목적 사대?

[김환영의 책과 사람] (11) 《세종의 고(苦): 대국의 민낯》 조병인 경청문화연구소 소장

 
“역사를 편식하는 민족은 현재가 산만하다”
세종에 대해서도 역사 편식 없어야  
세종은 神 아니다... 세종의 시련, 고통, 고민도 알아야 한다
 
조선의 사대 외교에는 양면성…
명나라에 일방적으로 괴롭힘과 수탈을 당했다  
하지만 그 시대 사대는 나라와 백성을 위한 유일한 정책이었다  
 
‘경청 리더십’ 발휘한 세종…
반론 제기하는 신하들 설득하고
‘반론하는 신하들 벌줘야 한다’는 신하들을 벌줬다
 
‘정직 결벽증’ 있었던 세종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다” 실천했지만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했다  
 
 
사대주의를 현대식으로 표현한다면 ‘친패권주의(pro-hegemonism)’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한민국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친패권’으로 대응했다. 사대주의나 친패권주의는 주권을 제약한다. 하지만 사대주의∙친패권주의로 조선과 대한민국이 냉엄한 국제질서의 현실 속에서 생존은 물론이고 번영까지 성취한 것도 사실이다.  

 
올해는 세종대왕 즉위 600년이다. 이를 기념해 많은 책이 나오고 있다. 조병인 경청문화연구소 소장은 ‘세종 5부작’을 준비했다. 그 중 첫 권인 《세종의 고(苦): 대국의 민낯》이 출간됐다. 세종 시대 조선-명나라 국제관계를 다뤘다.  
세종의 고 대국의 민낯, 조병인 지음, 정진라이프

세종의 고 대국의 민낯, 조병인 지음, 정진라이프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서 세종이 사대주의의 틀을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세종이 완성한 대명(對明) 사대는 전략적이었을까? 맹목적∙이념적 사대는 아니었을까? 결국에는 독서인들이 판단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범죄학을 전공한 조병인 박사의 이번 책에 나오는 사대 관련 내용은 이런 게 있다.  
 
- 권진이라는 신하가 다음과 같이 세종에 이의를 제기했다. “명나라 황제가 해청(海靑, 매)을 요구하였다고 해서 무조건 해청을 잡아서 바치는 것은 황제의 부도덕에 영합하는 것이다. 바르고 착한 것을 진달하고 간사하고 악한 일을 막아야 하는 의리에 어긋난다.”
 
권진의 주장을 세종이 이렇게 반박했다. “어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사대하려면 마땅히 성심껏 하여야 할 것이고, 황제가 우리나라에서 해청이 난다는 사실을 이미 아는데, 속이면 되겠는가. 백성의 고초를 겪을 것을 나도 잘 알지만, 대의를 생각하면, 민간의 피해는 가벼운 것이고, 사대를 성실하게 하지 않는 것은 무거운 것이다. 황제에게 하기 어려운 일을 권하고, 착한 말을 진달하는 것은 나의 직무가 아니다. 외국의 번왕(제후)은 황제의 허물을 지적할 수 없는 것이다.”(세종 8년/9/29)  
 
- “나라가 태평하여 사방에 근심이 없는 상황에서는, 명나라를 공경하여 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사신을 대접하는 일에 마음을 다해야 할 것이다.”(세종 13년/7/15)
 
- “[고려와 달리] 우리 조선은 개국 이래로 명나라를 성심껏 받들어서 황제들이 우리나라를 후하게 대하였다.”(세종14년/11/18)
 

세종의 사대를 ‘전략적’이었다고 분석하는 조병인 박사를 인터뷰했다. 저자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26년간 연구자로 근무했다. 그가 세종을 연구하게 된 사연도 궁금했다. 인터뷰 요지는 다음과 같다.  
 
- 책 서문에 “역사를 편식하는 민족은 현재가 산만하다”라고 나온다. 세종에 관해서는 어떤 역사의 편식이 있는가?
“세종이 대단히 훌륭하신 분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제가 기존의 세종 관련 저술을 읽어보고 강의를 들어보니까, 천편일률적으로 세종의 위대한 면, 훌륭한 업적, 찬란한 성취 같은 것들 위주로 조명이 되고 있다. 그 이면에 가려져 있는, 세종이 겪은 여러 시련, 고통, 고민 같은 것들을 조명한 사례가 없다. 역사 이야기가 좀 균형이 맞지 않는다. 세종 시대 역사에 대한 인식이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그래서 뭔가 부자연스럽고, 어딘가 한구석이 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세종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긍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조병인 박사님의 이번 저서는 대체로 굉장히 긍정적이다.
“그렇다. 6백 년 전 세종 시대 조선-명나라 관계가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이 안 된 것 같아서 살펴보니, 우리가 엄청나게 핍박당한 역사를 알게 됐다. 저는 범죄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어떤 갈등상황이 있으면, 어느 쪽이 피해자고 어느 쪽이 가해자인지 따져보는 습관이 있다. 조선의 사대 외교는 일방적으로 괴롭힘과 수탈을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사대는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당시 유일한 생존전략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전쟁을 피하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사대였다고 조명할 수 있다.”
 
- 세종의 사대를 ‘이념적’ 혹은 ‘맹목적’ 사대로 볼 수도 있다.  
“성리학의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할 때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넘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 것도 결국은 성리학 이념에서 나왔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교리를 믿듯이, 그 당시에 성리학, 유교, 유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명나라에 대한 사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발적 사대’였다고 말한다. ‘자발적 사대’ 역시 전략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저는 ‘맹목적인 사대’였다는 말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이념적 사대’라고 한다면 상당 부분 동의할 수 있다.”
 
- 책 전반부는 명나라 요구에 따라 우리가 나이 어린 화자(火者, 조선 시대에, 중국 명나라에 환관 후보자로 보내던 열두 살에서 열여덟 살가량의 남자), 미녀, 하녀, 요리사, 여가수를 보낸 문제를 다루었다. 그런데 세종 즉위 후 약 16년 동안 명나라에 보낸 인원을 모두 합하면 145명이다. 명나라에서 데려간 인원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145명이 적은 인원일까? 우리가 법적으로 범죄사건을 이야기할 때, 그중에서도 살인한 사람이나 사형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사람 한 명의 목숨의 크기가 전 우주보다도 더 크고 무겁다’고 말한다. ‘명나라에 끌려간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마어마한 우주의 크기와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145명은 결코 작은 인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식을 빼앗긴 부모 형제와 친척들이 슬퍼하고 애통해한 것을 생각하면, 145명이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서 처녀 한 명이 끌려갔다고 했을 때, 그녀와 연관된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본가, 외가, 사촌 등등까지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졌을 것을 생각하면, 145명이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 《세종실록》 중에서 외교 관련 내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되는가?
“조선의 외교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와 더불어, 여진족과 일본과의 교린, 오키나와 같은 나라와의 교류를 포함하게 된다. 그런 문제와 직간접으로 연관된 기사들의 건수와 길이를 모두 합치면 전체 실록 가운데 20% 안팎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기록들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지게 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외교를 잘못해서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복지, 문화 같은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50% 이상, 60% 이상의 비중을 가진다고 이해해야 한다.”
조병인 박사

조병인 박사

 
- 《세종의 고(苦)》에 보니까, 오늘날 같으면 말단 실무자들이 처리해야 할 것 같은 하찮은 문제들까지 국왕을 비롯한 최고 엘리트 관리들이 일일이 직접 의논하고 결정하는 장면들이 자주 보였다. 독자 입장에서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비쳤을 수도 있겠다. 황제의 사신들이 문서나 말로 전해준 요구는 하나하나가 곧 황제의 뜻이었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방향이나 정책을 정하려면, 당연히 임금이 관심을 가지고 가닥을 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임금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소한 일들까지 교통정리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임금 혼자서 매사를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우니까 세 정승을 비롯한 경험 많은 신하들의 도움을 받았다. 황희나 맹사성 같은 정승들은 세종보다 서른 살 이상 연상의 백전노장들이었다.”  
 
- 책에 보니, 황제의 요구와 호가호위하려는 사신의 요구를 분간하는 게 우리 조정의 골칫거리였다.  
“그 부분이 가장 혼란스러운 대목이다. 아마 세종도 그 부분이 제일 답답했을 것이다. 사신들의 말이 정말 황제의 뜻인지, 아니면 사신들이 중간에서 슬쩍 황제의 뜻인 양 속임수를 쓰는 것인지를 놓고 항상 의문 속에서 응대했다. 사신들이 물품들을 챙겨가는 것은, 명백하게 사신들의 ‘농간’이었다. 그런 행태들이 명나라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황제가 ‘칙서에 없는 요구는 일제 들어주지 말라’고 칙서를 보내오니까, 조선의 임금과 조정 대신들은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됐다. 칙서에 없다고 해서 일절 주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국익을 생각해서 칙서와 상관없이 사신들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두고 임금과 대신들이 옥신각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실록에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 조선왕조의 군주정은 ‘전제 군주정’이 아니라 ‘토론 군주정’이었다. 세종시대는 군신 사이에 활발한 토론이 벌인 시대였다.  
“사실은 제가 그 대목 때문에 세종을 공부하게 됐다. 40년 가까이 범죄의 인과관계를 탐구하면서 ‘폭력과 갈등’의 발생구조를 따져보니까, 대부분의 ‘폭력과 갈등’이 아주 사소한 말실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별다른 악의 없이 한 농담이 상대방 자존심을 건드려, 극도의 굴욕감을 느끼고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소통이라는 주제를 공부하다가 경청의 위력을 알게 됐다. 역대 인물 가운데 경청을 가장 잘한 사람을 찾다가 세종을 만났다. 제가 2년 전 《세종식 경청》을 내기에 이르렀다. 제가 세종에 흠뻑 빠지게 이유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세종의 남다른 경청자세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많은 리더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공통으로 내놓는 말 가운데 하나는, ‘내 방은 항시 개방돼 있으니, 언제든지 편하게 찾아와서 무슨 이야기든 기탄없이 털어놓으라’이다. 하지만 막상 하급자가 반론을 펼치면, 그 말이 지극히 옳더라도 속으로 ‘버릇없는 행동’으로 여기고 불이익을 주거나 은근히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놀랍게도 세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세종은 그런 신하들을 도리어 감싸주고 두둔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신하를 나무라거나 비난하는 대신들을 도리어 벌을 줬다.”
조병인 박사

조병인 박사

 
- 책에 “세종은 정직 결벽증이 있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세종은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다(Honest is the best policy.)”를 실천한 것 같다. 하지만 유능한 리더라면 필요에 따라 거짓말도 하고 때에 따라 과장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이상 적당한 용어가 떠오르질 않아서 ‘정직 결벽증’이라는 용어를 썼다. 세종은 근본적으로 바탕이 너무 정직해서, 거짓말을 하려고 하면 알레르기를 느끼는 분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는 세종도 거짓말을 했다. 세종도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거짓말도 하고 속임수도 썼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실 말씀은?
“제가 《세종의 고》를 쓴 이유는,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려면 역사를 균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특정 인물을 편향적으로 소개한 경우가 대단히 많다. 특히 세종의 경우는 유난히도, 칭찬 일변도, 찬양 일색으로 되어 있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세종을 다른 군왕들과는 다르게 신(神)처럼 살았던 존재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품었다. 그뿐만 아니라, 훌륭한 업적이나 성취 위주로만 세종을 소개하면, 훨씬 더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세종의 업적들이 오히려 과소평가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제 책에서는 일체의 화려한 성취들을 모두 생략했다. 세종이 극도로 힘든 상황과 험난한 가시밭길을 어렵사리 헤쳐나간 천신만고의 행적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가 배우고 새겨야 할 것들을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저자로서 《세종의 고》를 통해서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것은 ‘인욕(忍辱) 리더십’이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을 것 같은 극단의 악조건하에서도, 끝까지 인내했다. 세종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갖은 굴욕을 꿋꿋이 감내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난 다음, 세종의 업적에 대해 깊이 알아간다면, 세종의 면모가 한층 더 위대하고 장엄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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