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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여행기를 연주하다

WITH 樂: 멘델스존 교향곡 ‘이탈리아’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런던심포니가 연주한 멘델스존 교향곡 ‘이탈리아’‘종교개혁’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런던심포니가 연주한 멘델스존 교향곡 ‘이탈리아’‘종교개혁’

산 아래로 흐르는 물은 산에서 색을 빌려온다. 오케스트라 음악 역시 서로의 소리를 빌려온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다. 다음은 지휘자의 몫이다. 좋은 지휘자란 악기들이 서로에게 잘 물들어가도록 도와주는 소리의 연금술사다. 과거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제왕적 지휘자들이 권위를 앞세워 이를 해결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호통’ 대신 ‘소통’의 시대다. 지휘계에서 이런 변화를 실천했던 인물이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클라우디오 아바도다.  
 
그는 ‘황제’ 카라얀에 이어 베를린필의 수장이 된 최초의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다. 재임 기간 동안 민주적 지휘자상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카라얀의 후임자를 뽑는 투표에선 3순위 후보군에 있었다. 로린 마젤과 다니엘 바렌보임을 지지하는 단원들 사이의 내홍이 심해지고, 이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수긍할만한 무난한 지휘자로 그가 선택되었다. 어부지리로 클래식 음악계의 정상에 선 것이다.  
 
아바도는 이탈리아 남자 특유의 쾌활함과 르네상스로 상징되는 그 나라의 인문정신을 간직한 지휘자였다. 상임지휘자가 된 후 오케스트라의 민주적 소통과 현대음악을 레퍼토리에 포함하는 혁신을 시도했다. 물론 이런 변화가 늘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미래를 내다 본 혜안이었음은 분명하다.  
 
아바도의 많은 연주 중 말년의 말러 음반을 제외하고 가장 선호하는 것은 베를린필 이전 시절의 연주다. 특히 런던심포니와 연주한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는 초록이 짙어지는 계절에 듣기 좋다. 이 곡은 청년 멘델스존이 음악으로 남긴 이탈리아 여행기다. 멘델스존보다 앞선 세대였던 괴테는 18세기 말 이탈리아 전역을 둘러보고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책을 썼다. 청년 멘델스존도 괴테의 여행기를 읽었을 것이다.  
 
괴테는 이렇게 쓰고 있다. “아름답게 갠 좋은 날씨에 갯벌과, 바다와 결혼한 여왕 베네치아를 내 눈으로 바라보고, 또 그녀의 품속에서 친구들에게 인사를 보낼 수 있으리라.” 멘델스존의 교향곡은 괴테의 문장에 대한 음악적 변용 같다. 이 음반에서 아바도와 런던심포니도 이탈리아풍의 유기농 사운드를 들려준다. 베네치아의 꽃향기와 파란 하늘, 물감을 풀어놓은 바다 빛이 동시에 연상되니 말이다.  
 
1악장 주제 선율을 주도하는 런던심포니의 현악은 지중해의 햇빛을 머금은 미풍이다. 아바도는 속도감과 더불어 세부적인 선율 묘사를 놓치지 않는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구사한다. 이어 등장하는 목관도 떠다니는 흰 구름처럼 느긋하다.  
 
2악장은 순례자들의 행진을 보고 만든 곡이어서인지 느리고 우울하다. 하지만 심각하진 않다. 거대한 성당 앞에 섰을 때 느끼는 경건함 정도다.  
 
4악장에서 멘델스존은 전력투구를 한다. 꽤나 과격하게 첫 문을 연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현악은 한껏 흥겨워져가는 축제 분위기를 제대로 그려낸다. 괴테가 “로마의 사육제에서 무리지어 다니는 거대한 인파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묘사하기 힘든 감흥”이라고 했던 흥분 상태다. 금관과 팀파니 역시 무리를 따라 분주하게 내달린다. 그러나 지나치게 두드러지지는 않다. 아바도가 베를린필을 맡고 금관주자들에게 소리를 줄여줄 것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이 시절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것 같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이탈리아’는 역시 이탈리아 사람이 연주하는 것이 어울린다. 곡이 가진 지역적 색채가 그렇다. 하지만 그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런던심포니의 탁월한 연주 때문에 다른 음반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 음반은 나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이 곡을 대표하는 음반으로 꼽힌다.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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