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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설 속 김정은 “역사상 핵 국가끼리 전쟁은 없어”

오영환의 외교노트 
2011년 8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러 ·중 방문 후 귀국길에 현지 지도차 자강도 용림군에 들렀다. 이곳에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현 국무위원장)이 건설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용림군의 용림댐과 희천1발전소는 김 부자가 전력난 해소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사업이다. [중앙포토]

2011년 8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러 ·중 방문 후 귀국길에 현지 지도차 자강도 용림군에 들렀다. 이곳에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현 국무위원장)이 건설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용림군의 용림댐과 희천1발전소는 김 부자가 전력난 해소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사업이다. [중앙포토]

김일성 3대(代)의 실명 소설은 북한 권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窓)이다. 소설은 허구의 세계지만, 북한 체제는 속성상 최고지도자의 말을 작가의 상상력에만 맡기지 않는다. 3대의 실명 소설이 다큐멘터리 측면이 있는 이유다. 출판의 지향점은 우상화다. 수령·후계 체제를 정당화하고 지도자를 미화하는 작업과 맞물려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실명 장편 소설은 1997년에 함께 출간된 『영생』과 『역사의 대하』가 대표적이다. 『영생』은  94년 1~7월 김일성 주석의 말년을 다뤘다. 미국이 영변 핵 시설 폭격을 검토했던 1차 북 핵위기 당시의 김일성 외교 활동과 현지지도 내용을 중심으로 꾸몄다. 위기 타개의 길을 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김일성 면담 내용이 생생하다. 『역사의 대하』는 93~94년 1차 북 핵위기 상황을 그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더불어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최광 총참모장도 실명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문선규로, 강석주 당시 외무성 제1 부상(사망)을 가명 처리했다. 김정일 지도 아래 외무성 강석주와 김세환 참사(현 김계관 1 부상) 등의 핵 상무조(태스크포스)가 미국에 항복 문서(제네바 합의)를 받아낸다는 것이 줄거리다.
 
『야전열차』 표지. [중앙포토]

『야전열차』 표지. [중앙포토]

지난해 출간된 『야전 열차』는 김정일과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실명으로 나온다. 올 1월의 증보판을 입수해보니 김정일 판 『영생』이다. 2011년 12월 사망한 김정일의 그해 대내외 활동을 담았다. 야전 열차는 김정일이 현지 지도에 사용한 전용 열차다. 북한은 김정일이 “달리는 야전 열차 안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야전 열차』엔 김 부자의 미국관과 핵무기에 대한 시각이 적잖게 녹아 있다. 2011년 2월 김정일 집무실에서 이뤄진 대화를 보자.
 
▶김정일=“경제 제재와 군사적 위협, 대화 놀음은 미국이 정세의 변화에 따라 우리에 대해 늘쌍 써먹곤 하는 주패장(카드)이요.”
 
▶김정은=“그렇습니다. 미국은 정초부터 우리에 대한 제재와 압박 도수를 높이고 있습니다.”
 
▶김정일=“우리가 경제 강국 건설에서 실패를 하게 되면 ‘개혁’‘개방’을 할 것이고 그때는 쉽게 우리의 사회주의 제도를 ‘전복’ 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미국은 그 허황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제재와 대화, 대규모 군사연습을 병행하면서 정세를 긴장시키고 기회를 봐서 전쟁도 불사할 것입니다.”
 
 
핵 보유국으로 미국 야망 꺾어놓을 것
 
▶김정은=“장군님(김정일)께서 선군정치로 제국주의와 강력히 대결하셨기 때문에 조선이 핵보유국으로 세상에 빛을 뿌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어이 미국의 야망을 꺾어놓겠습니다. 역사에는 핵 대 비핵의 군사적 대결은 있었어도 핵 국가 대 핵 국가가 직접 맞붙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은 조선 땅에서 전쟁이 터지면 대양 건너 미국 본토도 무사치 못하다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김정일=“대장(김정은)이 핵무기를 조선 민족의 재부(財富)로, 선군 조선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있는데 미국 따위가 감히 뺏어낼 수 있겠는가. 어림없는 일이요.”
 
김정은이 금수산태양궁전에 전시된 아버지 전용열차를 보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이 금수산태양궁전에 전시된 아버지 전용열차를 보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는 남북 간 긴장이 팽팽했다.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 11월 연평도 포격 때문이었다. 한·미는 2011년 2월 대규모 군사훈련을 했고, 북한은 “서울 불바다”를 위협했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고 있었다. 천안함 사건 직후 “한반도 및 세계가 비핵화할 때까지 핵 억제력을 보유할 것”이라는 독트린을 내놨다(외무성 비망록). 연평도 포격 직전엔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외부에 공개했다. 대화 내용은 올 1월 김정은 신년사와 큰 차이가 없다. 신년사는 “우리 국가의 핵 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 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된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한다”고 했다.
 
소설엔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도 곳곳에 나온다. 군사 훈련을 미국의 핵전력 전개를 넘어 북한의 경제 활동까지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 중지에 집착하는 이유다. 북한 경제는 1976~93년의 한·미 연례 기동훈련(팀스피릿)에 맞대응 훈련을 하다 곤두박질쳤다. 에너지·식량을 소진했다.
 
▶김정일=“반세기나 계속된 미국의 대조선 침략 책동만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강성국가 건설한 지도 오랬을 겁니다.”
 
▶김정은=“‘키 리졸브’ ‘독수리’ 합동군사연습이 우리의 핵과 미사일 제거를 노리고 있는 이상 우리 군대와 인민은 침략자들의 핵 공갈에는 우리 식의 핵 억제력으로, 미사일 위협에는 우리 식의 미사일 타격전으로 맞설 것입니다.”
 
▶김정일=“군사적 대응은 대장이 맡으시오. 외교적 측면에서 대응은…내가 언젠가도 대장에게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외교전에서의 승부는 책략과 여론전에 적지 않게 관계될 테지만 (그) 보다는 국력과 군력입니다. 막강한 군사력, 주먹이 세면 크게 말씨름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김정은=“명심하겠습니다. 장군님의 선군정치를 생명으로 받들겠습니다. 핵 열강들이 병풍처럼 조선을 둘러싸고 있는 오늘날 강력한 군사력, 핵 억제력만이 우리의 존엄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켜줄 것입니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 리비아 카다피 정권 붕괴의 교훈은 컸던 것 같다. 김정일은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진정성 요구를 놓고 “우리를 무장해제시키고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손쉽게 가로타고 앉으려는 흉책”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결국 리비아는 군사적 수단까지 포기하면서 양보했지만 보상은 전혀 받지 못했고, 관계 정상화가 아니라 미국의 농락물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북한이 미국의 리비아 모델 언급에 단세포식 반발을 하는 것은 이런 것과 맞물려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한계훈으로 나오는 김계관은 김정일의 절대 신임을 받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김정일에게 수시로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다.
 
미·중 관계에 대한 내용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정은은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의 대중 압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기본 목적은 중국의 손발을 얽어매서 우리를 더욱 고립시키고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의 전통적인 우호 친선관계에 쐐기를 든든히 박아 깨뜨리자는 데 있습니다…바로 조·중 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서 기본인 제 2조(자동개입 조항)를 거세함으로써 조·중 두 나라의 군사적 협조 관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자는 겁니다.” 김정일이 그해 5월 방중에 나선 것은 대미 견제와 후방 다지기 차원이다.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차례 방중한 것과 동전의 양면이다.
 
 
몸 불태워서라도 평양 밤거리 밝혔으면 …
 
김일성 3대 주요 실명 장편소설

김일성 3대 주요 실명 장편소설

소설은 북한 경제난도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지금껏 김정일 동지의 가슴을 허비던 가장 큰 아픔 중의 하나가 인민들의 식량문제였다”고 했다. 김정일은 “전기가 제대로 오지 않아…가슴이 아프기 그지없다. 내 몸을 불태워서라도 평양시 밤거리를 환하게 만들고 온 나라를 밝게 비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한다. 김정은은 현지 지도에서 김정일 꿈에 김일성이 나타나 커다란 돈 자루를 주며 나라를 구원하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장군님 내심 속에 텅 빈 국고와 숨죽은 공장, 기업소들, 식량난에 시달리는 인민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사회주의 조선을 지켜내야 한다는 갈망이 끓었으면 그런 꿈을 다 꾸시었겠는가”라고 했다.
 
지금 북한의 노선은 『야전 열차』의 시점인 2011년과 판이하다. 7년 전은 북한이 핵무기를 고도화하면서 핵·경제 병진노선(2013년)으로 치달을 때다. 현재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경제 건설 기치 아래 핵의 ‘사석(捨石) 작전’에 나섰다. 그러나 북한 문제의 밑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대미 관계는 북한에 근본 모순이다. 체제 안보와 경제가 직결돼 있다는 것이 북한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대중 관계다. 중국은 북한에 버팀목이자 대미 관계의 지렛대다. 밉고 싫어도 이혼할 수 없는 관계다. 마지막은 경제난이다. 김정일이 소설에서 언급한 “에너지·식량·자금(외화)의 대 곤란”이다. 시장의 몫이 커지면서 핵 개발에 따른 대북 제재 고통 지수는 더 올라갔다.
 
북한 비핵화 협상이 본궤도에 오른 지금은 핵 문제의 뿌리를 도려낼 기회다. 북핵은 북한 문제의 결정체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와 관계국의 CVIG(guarantee·체제보장) 맞교환을 통한 CGIP(peace·평화)는 그 첫째다. 동시에 관계국 간 또 다른 P(prosperity·번영)의 모색도 필요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북한의 자구 노력이다. 북한이 경제난을 외부 요인에서 찾고 중국과 한국에 기대는 한 김정은이 내세우는 단번 도약은 불가능하다. 타성을 깨야 한다. 다른 하나는 비핵·평화·경제 노선으로의 전환이다. 그래야 진정성이 입증된다. 북한을 보는 눈을 크게 떠야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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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