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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조선 왕조 폄하에 이용됐나, 실학을 실사구시하라

[실학별곡 - 신화의 종언] ⑦ ‘왕정 vs 공화정’ 이분법의 오류
‘근대 혁명’ 시기였던 18~19세기 대부분 유럽 국가의 정치 형태는 ‘군주정’이었다. 오늘날까지 서유럽 선진국과 영연방국은 왕을 국가의 중심으로 섬기고 있지만 그 나라들을 ‘근대 국가’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름만 ‘공화국’인 나라보다 훨씬 더 근대적 ‘국민국가’이고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왕정 극복’을 한국 근대화의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제시해온 관행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진은 최근 화제가 된 영국 왕실 결혼식. [연합뉴스]

‘근대 혁명’ 시기였던 18~19세기 대부분 유럽 국가의 정치 형태는 ‘군주정’이었다. 오늘날까지 서유럽 선진국과 영연방국은 왕을 국가의 중심으로 섬기고 있지만 그 나라들을 ‘근대 국가’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름만 ‘공화국’인 나라보다 훨씬 더 근대적 ‘국민국가’이고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왕정 극복’을 한국 근대화의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제시해온 관행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진은 최근 화제가 된 영국 왕실 결혼식. [연합뉴스]

한국의 근대사를 설명할 때 흔히 드는 기준이 ‘군주정(왕정) 극복’이다. 왕이 없어야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왕이 군림하는 군주정은 전(前)근대의 봉건시대로 간단히 치부되곤 한다. 왕의 목을 쳐낸 경험이 없는 우리 역사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콤플렉스를 느끼기까지 한다. 공화정이야말로 절대 선이며 근대국가의 상징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과연 왕정 극복 혹은 폐지가 근대화의 필수 조건일까.
 
유럽의 18세기를 ‘근대 혁명’의 시기로 대개 평가하는데, 19세기까지 대부분의 유럽 국가의 정치 형태는 ‘군주정’이었다. 18~19세기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오늘날의 영국·스페인·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 등 서유럽의 잘사는 이른바 선진국들, 그리고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 영연방국가들은 모두 왕을 국가 권위의 중심으로 섬기고 있다. 이 나라들은 대개 근대민족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왕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왕의 대가 끊기거나 식민지상태로부터 독립하여 왕이 없을 경우에는 이웃 나라에서 빌려와 군왕제를 복원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군주국들을 ‘근대국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왕이 군림하고 있는 나라지만, 오히려 이름만 ‘공화국’인 나라보다 훨씬 더 ‘국민국가’이고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또 공화국이라고 하면 ‘민주공화국’만 있는 줄로 아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대개 왕이 없는 체제를 공화정이라고 정의하는데, 공화정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오래된 공화정은 ‘로마공화정’인데 ‘귀족공화국’이었다. 중세 이탈리아의 수십 개 도시에 ‘귀족공화국’이 존재했었다. 네덜란드는 200여년간 ‘귀족공화정’(1581~1795) 시대를 경험하고 나서 왕정을 채택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화국이 무조건 근대국가라고 한다면. 노예제 국가였던 로마공화국도 근대국가로 봐야 할 텐데 그렇게 보는 경우는 없다. 이탈리아나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 크롬웰의 귀족공화국(1649~1659)도 마찬가지다. 구(舊)소련이나 중국·베트남·북한·쿠바의 경우는 ‘계급공화정’ 혹은 ‘인민공화국’으로 분류된다. 이 인민공화국들은 언필칭 ‘공화국’이라고 해도 모두 다 ‘민주국가’가 아니라 계급독재 국가들이다. 공화국이 곧 민주국가라는 등식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민주주의와 공화제가 결합한 ‘민주공화국’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제대로 구현된 곳을 찾기 힘든데, 그 까다로운 기준을 한국의 조선시대에만 적용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이영재, 『근대와 民』)
 
 
군주정·공화정 정체와 민국 개념 혼동 말아야
 
18세기 영·정조 시대에 ‘민국’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음을 이 ‘실학별곡’ 시리즈의 6회 기사에서 살펴보았다. 탕평군주 시기 ‘민국’ 이념의 대두는 우리 민족의 근대화 과정을 논의할 때 무시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왕정과 공화정을 선악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다. ‘군국(君國)’에서 ‘민국(民國)’으로의 변화 양상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서 많이 발견되는데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다. 잘못된 전제에 의한 고정관념은 새로운 사고를 막는다.
 
영·정조 시대의 ‘민국’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곧바로 이를 ‘국민주권국가’와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다. ‘민국 담론’은 영·정조 시대의 백성에게 나라의 주권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주권은 왕에게 있었지만, 영조 시대를 기점으로 민국이란 표현이 급증하는 이유를 규명해보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헷갈려 하는 독자들이 더러 있어서 좀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민국 담론’을 체계화한 황태연 동국대 교수에 의하면, 근대 정치학의 기본 개념에 대한 혼동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민국은 신분 차별의 여부와 관련된 용어로, 임금의 나라 혹은 귀족의 나라가 아니라 백성의 나라라는 의미일 뿐이다. 즉, 귀족 같은 특권 신분이 해체되어 모두가 백성이 된 경우를 가리킨다. 민국이 주권의 소재를 나타내는 국민주권국가를 뜻하지는 않는 것이다. 나라의 주권이 어디에 있느냐를 기준으로 하는 정부형태(군주정·귀족정·공화정·민주정 등)와 민국 개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민국은 군주정·귀족정·공화정·민주정 등 그 어떤 정체와도 결합될 수 있다. 군주정이면서 민국일 수 있고, 공화정이면서 민국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네덜란드·스웨덴·일본 같은 ‘입헌군주정’도 ‘백성의 나라’로서의 민국을 기반으로 하고, 미국·프랑스·대한민국 같은 ‘민주공화국’도 민국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2세 이후의 프러시아, 요셉 2세 이후의 오스트리아, 에카테리나 여제 이후의 러시아 같은 ‘계몽군주정’도 마찬가지인데, 조선의 영·정조는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학 용어로 군주정이나 공화정은 ‘정체(政體)’에 속하는 반면, 민국은 ‘국체’에 속한다. 국체와 정체를 혼동하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착각’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본다.(황태연, 『한국 근대화의 정치사상』)
 
근대지향의 어떤 이념을 실학이라고 부를 경우, 민국을 추구한 영·정조는 실학에 해당하는 새로운 관점에서 재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왕이었기 때문에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계사의 실상과 다른 이중 잣대를 우리 역사에만 적용하는 것이다. 18세기의 소위 실학자로 불리는 이들은 오히려 양반 사족 중심의 신분제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근대 지향의 진보적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고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한국 근대화의 진정한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영·정조가 근대화를 모두 추동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래로부터 백성들의 압력도 동시에 살펴봐야 할 것이다. 18세기의 실학자들에게 주로 맞춰진 근대화의 초점을 다양한 차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한국사를 새롭게 보려는 시도들이 비록 조금씩이나마 늘고 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1996년에 조선왕조실록의 민국 용어를 처음 발굴한 데 이어,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4년 『다시 찾는 우리역사』의 전면개정판에 통사로서는 최초로 민국 개념을 적용하며 ‘백성의 나라’로 해석했다. 2011년엔 김백철 계명대 교수가 이태진 교수와 함께 『조선후기 탕평정치의 재조명』을 펴내며 민국 관련 연구를 정리했다.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은 우리나라 국호를 설명하며 민국 개념을 적용했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는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2016),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2017), 『한국 근대화의 정치사상』(2018) 등을 연달아 펴내며 민국이 ‘백성의 나라’임을 사료를 통해 실증하고 이를 한국 근대화의 주요 사상으로 정립해냈다. 최근에는 이영재 박사(한양대 학술연구교수)가 『근대와 民』을 펴내며 ‘민국 담론’에 가세했다.
 
 
실용 지나친 강조, 일제 총독부 입맛에 부합
 
조선과 대한제국이 일제 침략으로 패망하면서 우리의 역사조차 일제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었다는 점에서부터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할 듯하다. 우리 역사에 대한 근대적 서술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1890년대부터 시작했다. 망국의 지식인들 가운데에는 나라가 망한 원인으로 조선 정부의 책임을 물으면서 그나마 재야의 지식인들은 나름대로 근대국가를 꿈꾸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재야 지식인의 사례로 선택된 것이 소위 실학이었다. 1910년대 최남선의 주도로 ‘조선광문회’가 펼친 고서적 간행사업은 1930년대 ‘조선학 운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다산 정약용 서거 100주년을 맞아 위당 정인보 등이 추진한 『여유당전서』 간행은 실학을 새로운 학문의 영역으로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이후 식민사관 극복과 조국 근대화 정책과 맞물리며 실학은 20세기 최고의 지위를 차지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형성된 ‘실학의 신화’ 가운데 하나는 조선 정부의 무능으로 훌륭한 실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영조는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경연에서 강하였고, 정조는 화성 신도시 건설에 정약용의 제안을 활용했다. 실학자의 말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수용할 만한 것은 수용했다.(김백철, ‘탕평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제 강점기 실학을 강조한 이들은 망국의 설움 속에서 비판적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조금이나마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자 실학을 내세운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좋은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식민사관의 경계에 함몰되며 일제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을 수도 있다. 조선 정부와 재야 지식인을 무능과 유능으로 대립시키는 설정, 그리고 실학자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조선 정부 비판은 일제 총독부 입맛에 그리 거슬렸을 것 같지 않다. 효용과 실용의 지나친 강조도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이나 제국주의 논리와 결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실학연구는 일제 때도 비교적 용인되었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 더 풀어봐야 할 의문점들이다. 실학의 실사구시가 필요하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자문 전문가=한영우·오금성·김영식 서울대 명예교수,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황태연 동국대 교수, 장득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참고자료
황태연, 『한국 근대화의 정치사상』, 청계, 2018.
이영재, 『근대와 民』, 모시는사람들, 2018.
김영식, 『정약용의 문제들』, 혜안, 2014.
역사학회 편, 『정조와 18세기』, 푸른역사, 2013.
이태진·김백철 엮음, 『조선후기 탕평정치의 재조명』, 상·하권, 태학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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