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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칼럼] 워라밸에서 바브밸 시대로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저널리스트 데이빗 색스가 말한 ‘아날로그의 반격’ 현상이 도시 곳곳에서 관찰된다. LP 레코드로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카페들이 성행하고, 작은 동네서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중심가로부터 떨어져 있거나 주택가에 있는 데도 애써 찾아가는 마니아층이 상당하다. 아마도 음악과 책 향기 속에서 나와 취향이 비슷한 동시대인들과 소통하고 싶어서일 게다.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목공이 ‘소확행’(小確幸) 취미활동으로 자리 잡았고, 만년필을 사용하는 학생들, 수제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젊은이들도 늘었다. 폴라로이드나 로모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터넷 게임이 아니라 직접 만나서 즐기는 보드게임도 유행이다.
 
아날로그의 반격을 ‘복고의 귀환’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인간은 행복을 ‘상태’로 인식하지 않고 ‘기억’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뇌 속에 저장된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 보라 하면, 과거의 한순간에서 애써 찾지만, 당시엔 그 시간이 행복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행복으로 덧칠된 복고의 기억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시대가 바뀌어도 종종 소환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때가 참 좋았었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데이빗 색스는 아날로그의 반격 현상을 복고의 귀환이 아니라 디지털 문명의 반동으로 바라본다. 결핍은 욕망을 낳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자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소셜 미디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아날로그의 결핍은 욕망과 동경을 만들어낸다. 그는 디지털은 우리에게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디지털만으로 궁극의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아날로그 경험을 통해 ‘진짜 세계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노력이 아날로그의 반격을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이제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만이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디아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아날로그 시대를 향수처럼 추억하는 중년 세대에게나 통하는 대답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일치되고 두 세계가 뒤섞인 시대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불분명한 세계로 진화하고 있다. LP판의 소음이 아날로그적인가, 음악회 현장의 관객 숨소리까지 재생하는 블루레이가 더 아날로그적인가? 문구매장에서 산 만년필을 쓰는 행위가 아날로그적인가, 3D프린터로 만년필을 만들어 사용하는 게 더 아날로그적인가? 쉽게 답할 수 없다. 특히나 태어나서 처음 읽은 책이 전자책 동화이고 e북 교과서로 세상을 배운 세대에게는 아날로그 결핍으로 인한 욕망 자체가 결핍돼 있을지 모른다.
 
아날로그 반격의 기원을 ‘아날로그가 대면접촉을 늘리고 사회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할 수도 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이 1937년부터 75년간 800여명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해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행복과 건강의 핵심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였다. 배우자·가족·친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했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경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대면접촉과 사회적 관계 맺기를 증진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가 아니어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걸 충분히 경험한 세대는 관계 맺기에 서툴고, 타인과의 대화·논쟁·화해·설득의 경험이 부족하다. 젊은 세대들이 이별 통보를 문자메시지로 하는 건, 매너가 없어서가 아니라 얼굴을 마주 보며 이별을 말할 사회성이 부족해서다.
 
이것도 아날로그의 반격을 충분히 설명하진 못한다. 우선 디지털 문명이 대면접촉을 줄였다는 증거가 불명확하다. 우리의 사회성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고 느슨한 구조로 바뀌었을 뿐 사회성 자체가 떨어진 건 아니다. 가족관계는 붕괴하고 있지만, 친구 반려동물 등과 대안가족을 만들고 있으며,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장착된 로봇으로 사회적 관계 맺기가 확정될 것이다. 로봇은 그 자체로 아날로그지만 그 안에 디지털이 장착되면서 우리의 사회성 또한 확장된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가 아니라, 반려동물·로봇 등 누군가와 사회성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행복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성의 갈구로 아날로그의 반격을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내가 가장 신뢰하는 아날로그 반격 가설은 ‘뇌와 몸의 균형’을 향한 갈구다. 디지털은 뇌만 자극하지만, 아날로그는 몸도 자극한다. 디지털 문명 세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들의 뇌는 지나치게 많은 자극을 받는 반면, 몸을 쓰고 반응하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몸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뇌가 그것을 해석하고 결정하면, 다시 몸이 세상에 적용하는 일상적 경험을 우리는 회복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워라밸 만큼이나 몸(바디)과 뇌(브레인)의 균형 즉 ‘바브밸’을 중시해야 한다. 디지털 문명이 우리를 뇌와 손가락만 발달한 E.T.로 만들지 않도록, 아날로그 경험을 통해 몸의 자극과 반응에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날로그의 반격은 더욱 반갑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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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