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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터닝 슛, 마라도나 ‘신의 손’ … 월드컵은 드라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D - 12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스포츠 이벤트가 될 것이다.”
 
1930년 6월 21일. 높이 30cm, 무게 1.8㎏의 황금 트로피를 내놓은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줄 리메(프랑스)는 처음 치르는 세계 축구대회, 월드컵의 미래를 이렇게 장담했다. 재정 형편 때문에 다음 대회를 걱정해야 했던 월드컵은 88년의 세월을 살아남았다. 첫 대회에 13개국만 나섰던 월드컵은 전 세계 210개국이 6개 대륙으로 나눠 예선을 치르는 단일 스포츠 최대 규모 대회가 됐다. 6월 14일 개막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무게 430g, 둘레 69cm의 축구공에 세계인들이 울고 웃을 것이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끈 펠레. [AP=연합뉴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끈 펠레. [AP=연합뉴스]

◆월드컵을 빛낸 골과 스타=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개막전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월드컵 사상 첫 골을 넣은 프랑스의 루시앙 로랑은 “그 골이 가진 의미를 당시엔 상상하지 못했다. 고국으로 돌아가니 신문에 조그맣게 내 골 기사가 나왔더라”고 회고했다. 이후 20차례 열린 월드컵 본선에선 모두 2379골이 터졌다. FIFA가 지난 4월 선정한 역대 월드컵 ‘아름다운 골 8’엔 2002년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가슴 트래핑 후 왼발 슈팅으로 골문을 가른 박지성의 골도 있었다. 박지성은 “월드컵에서 골을 넣으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만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짜릿했다”고 회상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에서 ‘신의 손’으로 골을 넣는 마라도나. [사진 FIFA 페이스북]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에서 ‘신의 손’으로 골을 넣는 마라도나. [사진 FIFA 페이스북]

골을 넣은 뒤 펼치는 세리머니는 월드컵의 또 다른 재미로 꼽힌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콜롬비아와의 16강전에서 골을 넣은 뒤 코너킥 지점으로 달려가 현란한 춤을 춘 로저 밀러(카메룬) 이후 개성 넘치는 세리머니가 등장했다. 1994 미국 월드컵 8강전에서 골을 넣은 브라질의 베베토는 동료와 함께 양손을 모아 흔드는 자세로 기쁨을 만끽했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한 ‘요람 세리머니’였다. 2002 한·일 월드컵 미국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안정환은 같은 해 겨울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석연찮은 동작으로 김동성을 실격시키고 금메달을 딴 안톤 오노(미국)를 비꼬는 할리우드 액션 세리머니로 화제를 모았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우승에 성공한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마르셀 드사이-로랑 블랑. [AP=연합뉴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우승에 성공한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마르셀 드사이-로랑 블랑. [AP=연합뉴스]

월드컵 스타는 말 그대로 ‘월드 스타’가 된다. 브라질의 3연속 우승(1958, 62, 70년)을 이끈 펠레와 아르헨티나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에 기여한 디에고 마라도나는 축구의 전설로 불린다. 역대 월드컵 ‘아름다운 골 8’엔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68m 드리블 후 골을 넣은 마라도나,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끈 골을 터뜨린 펠레도 포함됐다. 마라도나는 공중에 뜬 볼을 손으로 쳐 넣은 뒤 “내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 골을 넣었다”는 말도 남겼다.
 
월드컵 통산 최다골(16골)을 넣은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 [중앙포토]

월드컵 통산 최다골(16골)을 넣은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 [중앙포토]

1970년대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이끈 요한 크루이프, 선수(1974년)와 감독(1990년)으로 독일의 우승에 기여한 프란츠 베켄바워, ‘아트 사커’로 프랑스의 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을 견인한 지네딘 지단도 월드컵 역사에 진한 향기를 남겼다. 월드컵 통산 최다 골을 넣은 미로슬라프 클로제(독일·16골)와 2위 기록을 가진 호나우두(브라질·15골)에겐 독특한 사연이 있다. 클로제는 19살까지 목수 일을 하면서 축구 클럽에서 뛰었고, 호나우두는 브라질 빈민가 출신이었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스타가 됐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광장을 붉게 물들인 거리응원. [신인섭 기자]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광장을 붉게 물들인 거리응원. [신인섭 기자]

◆지구촌을 들썩이게 한 순간=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 박두익이 조별리그 이탈리아전에서 터뜨린 골은 북한의 사상 첫 월드컵 8강을 이끌었다. FIFA와 외신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이변”이라고 소개했다. 1950 브라질 월드컵 결승에서 우루과이 알시데스 기지아가 터뜨린 한 골은 브라질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 골로 브라질이 우루과이에 1-2로 패하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경기장에 있던 관중 2명은 심장마비로 숨졌고, 2명은 자살했다. 1994 미국 월드컵 미국전에서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자책골을 넣어 1-2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던 그는 귀국 열흘 만에 여자친구와 있다가 괴한 2명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월드컵 ‘아름다운 골8’에 선정된 박지성의 포르투갈전 골 세리머니 장면. [중앙포토]

월드컵 ‘아름다운 골8’에 선정된 박지성의 포르투갈전 골 세리머니 장면. [중앙포토]

월드컵이 국가와 사회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기도 했다.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에 오르는 동안 누적 인원 2200만명이 길거리 응원에 나서 국민 통합을 이뤘다. 프랑스는 1998 월드컵 우승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포용하는 연대감이 형성됐다. 반면 201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에 1-7로 대패한 브라질에선 “이럴 거면 왜 월드컵을 유치했냐”는 비판과 분노가 쏟아졌고, 방화·시위 등 후유증도 컸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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