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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편집국장레터]탄광 속 카나리아, 김동연 부총리

  
 1910년대 초 영국의 광부들은 새장 속 카나리아와 함께 탄광 갱도에 내려갔습니다. 카나리아가 노래를 멈추면 광부들은 급히 작업을 중단하고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무색무취한 일산화탄소의 독성에 카나리아가 민감했기 때문입니다. 1986년 전기 경보장치가 발명되면서 카나리아는 광부들의 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VVIP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양한 레벨의 협상들이 숨가쁘게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6월 첫째주 레터는 시선을 나라 안으로 돌려봅니다. 지난 한 주 국내 뉴스에선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중심에 섰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에 영향을 미쳤느냐, 아니냐는 논쟁 때문입니다. 논쟁의 전개는 이랬습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5월15일 고위당정청협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는 없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16일 국회 기획재정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20일 춘추관 간담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주 부담 완화가 안착되는 모습이다. 6월부터 고용 여건이 회복될 거다"
  ^김 부총리(23일 부산벡스코 기자간담회)= "(최저임금)인상이 삶의 구조 해결엔 좋은 일이지만, 시장과 사업주들이 얼마나 수용성이 있는지도 봐야 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LG 구본무 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LG 구본무 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①소득주도 성장 ②혁신 성장 ③공정경제라는 세 축이 핵심입니다. 그 중 최저임금 인상을 바탕으로 한 소득주도 성장은 대선공약이자 가장 중요한 정책 틀입니다. 김 부총리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고용 감소와 소득 감소라는 현실 앞에서 경제사령탑인 김 부총리가 먼저 ‘틀’을 유연하게 돌아보자고 문제 제기를 한 겁니다.
 논쟁은 청와대 안으로도 들어갔습니다.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가 지난달 29일 열렸습니다. 김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도 “하위 20%(1분위,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층) 소득이 감소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고 합니다. 반면 청와대 참모들은 부총리의 발언이 경제정책의 실패로 확대재생산될 수 있다며 반박했습니다. 논란은 회의 결과를 전한 서면 브리핑으로 더 불거졌습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앞으로 장하성 정책실장이 주도해 관련 부처 장관들과 함께 경제 전반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회의를 계속 개최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주도해’라는 문구가 문제였습니다. 경제사령탑인 김 부총리의 입지가 위태롭다는 해석을 낳았습니다. 청와대는 브리핑 문구에서 ‘주도해’를 빼고 ‘장 실장이 관련부처 장관들과 함께’로 수정했지만 이미 불길이 번진 뒤였습니다.
 김 부총리에 대한 공격은 더 노골화됩니다. 이튿날 민주당 의원 출신인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최저임금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통계가 있는지, 영세업자ㆍ소상공인 등 고용이 줄어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경제부총리가 신의 영역에 있느냐”고 비판했습니다. 김 부총리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습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 논쟁에 쐐기를 박습니다.
“1/4분기 가구소득 1분위 소득이 많이 감소한 건 아픈 대목이다. 당연히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라거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증가 때문’이라는 진단이 성급하게 내려지고 있다. 정부가 잘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효과를 충분히 자신있게 설명해야 한다. 긍정적인 효과가 90%다.”
면전에서 이 얘기를 들은  김 부총리의 표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걸 봤을까요. 문 대통령은 “혁신성장에 대해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에서 더욱 분발해 주시고, 규제 혁파에도 속도를 내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경제전반이 아니라 “혁신성장”만, 칭찬이 아니라 “분발”이란 표현을 쓴 걸 보면 대통령은 맘에 없는 소리를 잘 못하는 스타일인가 봅니다. 최저임금 논쟁은 결국 이렇게 일단락됐습니다.
3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018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운데)가 문재인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끝나자 물을 마시고 있다. 오른쪽은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청와대사진기자단]

3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018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운데)가 문재인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끝나자 물을 마시고 있다. 오른쪽은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유연하고 사람 좋다는 평가를 받는 김 부총리가 보름 넘게 야당이나 언론도 아닌, 대통령의 사람들을 상대로 논쟁을 벌인 건 심상한 일이 아닙니다. 기재부 주변에선 “부총리가 그만둘 각오를 했다”는 얘기까지 들립니다. 경제 지표들이 빨간 불로 바뀌는 상황에서 청와대 인(人)의 장막을 넘어 대통령 귀에까지 들어가라고 목청을 높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논쟁의 끝을 지켜보는 마음은 개운치 않습니다. 김 부총리가 ‘탄광 속 카나리아(Canary in a Coal Mine)’의 심경은 아니었을까요.
 
 미국 정치에서 정책의 선의(善意)를 표현할 때 ‘의도(intention)’란 단어를 씁니다. 정책의 의도는 대부분 선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 시절 역점사업으로 추진했던 ‘오바마케어’도 그랬습니다. 늙고 병든, 가난한 미국의 하층민들이 병원비가 비싸 의료 혜택을 못 받는 현실을 아프게 지켜본 오바마 대통령은 오바마케어를 밀어 붙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선한 intention은 엉뚱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사람들의 의료비 부담이 커지고, 의료 혜택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오바마케어에 참여하는 보험회사가 줄면서 보험서비스가 줄어드는 악순환도 생겼습니다. 재임 중 오바마의 든든한 ‘배경’이었던 빌 클틴턴 전 대통령조차 “어느 날 갑자기 2500만명 이상의 국민이 보험에 가입하고, 또 파산하는 미친 시스템이 있다. 1주일에 60시간을 일하고도 보험료는 배로 인상되고 보장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혹평했습니다.  
 선한 정책이 늘 선한 결과를 낳는 건 아닙니다. 풍선효과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선한 정책의 혜택이 미칠 것으로 예상됐던 ‘그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경제부총리가 말하려 했던 건 그 얘기가 아닐까요.
 
 중앙SUNDAY는 이번 주 20대 국회의원들의 후원금 씀씀이 실태를 스페셜리포트로 다룹니다. 중앙선관위에 자료 공개 요청을 해 회계사들과 분석했습니다. 뉴스 포커스로는 병원의 주사 감염실태를 다룹니다. 신년 초 중앙SUNDAY가 스페셜리포트로 다룬 방탄소년단(BTS) 얘기도 후속으로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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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