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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시각각] 6·13 지방선거 지지율 조사의 함정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안녕하십니까?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 조사입니다. 누구를 1순위로 지지하십니까? 1번 민주당 박원순, 2번 한국당 김문수, 3번 바른미래당 안철수, 4번 정의당 김종민, 5번 민중당 김진숙, 6번 대한애국당 인지연, 7번 녹색당 신지예, 8번 우리미래 유인철, 9번 친박연대 최태현, 10번 기타후보, 11번 없음, 12번 잘 모름.”
 
요즘 ARS(전화자동응답)로 실시되는 지방선거 여론조사 질문이다. 다 듣기도 벅차다. 끝까지 참고 지지하는 후보 번호를 누르면 다시 질문이 이어진다. “그 다음 2순위로 지지하는 후보는 누굽니까? 1번 김문수, 2번 안철수 (중략) 9번 박원순…”(공정성을 위해 질문마다 후보들 순번이 바뀐다)
 
이게 끝이 아니다. 세 번째 질문이 개시된다. “응답자님 선택과 별개로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서울시장 후보는 누구입니까?” “1번 안철수 2번 김종민…(중략).” 끝났느냐고? 아니다. “다음은 서울시 교육감 후보 지지도 조사입니다. 누구를 지지하시나요? 1번 곽일천, 2번 두영택…(중략) 11번 잘 모름.”
 
장장 9분간 이어지는 질문을 끝까지 듣고 버튼을 전부 눌러야 유효 응답으로 간주된다. 박원순·김문수·안철수 빼고는 듣도 보지도 못한 후보들 이름을 줄줄이 들어줘야 하는 고역은 물론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사람은 ‘없음’ ‘잘 모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이 항목은 무조건 마지막에 나온다).
 
어여쁜 목소리의 여성 조사원이 걸어오는 여론조사도 바쁘다고 끊는 사람이 100명 중 80명이다. 기계로 걸어오는 ARS는 끊기가 더욱 용이해 100명 중 95명이 응답을 거절한다. 요즘은 스팸전화 가려 주는 앱이 발달해 액정에 ‘여론조사’ 시그널이 뜨면 그냥 끊어 버리는 사람이 더욱 느는 추세다. 모처럼 전화를 받아준 사람도 9분에 달하는 질문 홍수에 질려 중간에 끊어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ARS는 응답률이 2~3% 나오면 잘 나온 것이 된다. 2~3%는 어떤 사람들일까. 기계음으로 10분 가까이 이어지는 질문을 일일이 듣고 응답하는 이라면 특정 정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정치 고관심층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ARS 조사는 열혈 지지층이 많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실제보다 더 유리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한 조사업체 대표는 “ARS 조사 말미에 ‘이번 지방선거에 투표할 것이냐’는 질문을 넣었더니 20대 응답자 중 90%가 ‘반드시 투표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실제 지방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은 40% 선에 그친다. 이 전문가는 “여당 지지 성향이 강한 20대 정치 고관심층이 과대 표집된 확실한 증거”라며 “요즘 여론조사는 여당 지지층이 실제보다 최대 20%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야권만 대상으로 한 조사도 마찬가지다. 김문수와 안철수 후보 단일화를 놓고 ARS로 여론조사를 하면 김문수가 유리하게 나오고, 전화면접으로 조사하면 안철수가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 열혈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많은 김문수가 ARS에서 실제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6·13 지방선거는 여론조사의 무덤이다. 열기가 없다 보니 의뢰율이 2016년 총선의 30%밖에 안 된다. 돈줄이 마른 조사업체들은 회당 1000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전화면접 대신 비용이 그 3~4분의 1 선인 ARS를 선호한다. 1만 명에게 전화하면 200명 받을까 말까 한 조사다. 열혈 지지층은 과잉표집되고 중도나 무당층 참여율은 제로에 가까울 조사를 바탕으로 언론은 연일 지방선거 판세를 경마식으로 보도하기 바쁘다. ‘여론’에 따르기보다 유권자 개개인이 후보의 정책과 인품을 냉정히 평가해 소신껏 한 표를 던질 필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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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