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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 풍모 풍기던 미술판 큰형님을 그리워하다

2일까지 문영태 유작전이 열리는 김포 ‘민예사랑’의 전시풍경. ‘심상석’ 연작이 보인다. [사진 양정애]

2일까지 문영태 유작전이 열리는 김포 ‘민예사랑’의 전시풍경. ‘심상석’ 연작이 보인다. [사진 양정애]

그의 아호는 집신(集神)이었다. 세상 온갖 귀신을 모아 모든 갈등을 넘어 동서남북 지혜를 녹여내자는 뜻을 품었다. 문영태(1950~2015)가 떠나고 나서야 선후배와 동료들은 그가 진정 집신이었음을 알았다. 화가·전시기획자·문화운동가·민속학자였던 그는 1980년대 미술운동 한복판에서 남이 피하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없는 듯 신출귀몰했기 때문이다. 말수가 적고 앞보다는 뒤에 서 있었지만 미술인 공동체에서 문영태란 이름은 믿음직한 형님의 대명사였다.
 
지난달 19일 오후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민예사랑’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70여 명 손님으로 왁자했다. 경기도 개풍군을 코앞에 둔 서해안 최북단 마을은 고(故) 문영태가 삶의 마지막을 자연을 가꾸며 지낸 곳이다. 손기환, 홍선웅 등 후배 화가들이 함께 예술인촌을 가꾸던 집을 전시공간으로 꾸민 이는 고인의 부인 장재순(62)씨다. 남편의 3주기를 맞아 유작전으로 첫 전시를 연 장씨는 “그이가 남긴 흔적을 보시면서 17년간 가꾼 정원을 거닐어 달라”고 인사했다.
 
화가, 전시기획자, 문화운동가, 민속학자였던 고(故) 문영태.   [사진 중앙포토]

화가, 전시기획자, 문화운동가, 민속학자였던 고(故) 문영태. [사진 중앙포토]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문영태는 81년 발표한 ‘심상석(心象石)’ 연작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돌에 새긴 민중의 마음, 한(恨)과 생명력의 두 얼굴이 겹쳐진 연필그림인데 이번에 다시 전시되면서 재평가됐다. 74학번 동기인 이재권씨는 “영태가 함석헌 선생의 『장자』를 탐독하며 동양사상에 심취한 모습을 봤는데 그 바탕에서 핀 꽃이 ‘심상석’이었음을 알겠다”고 했다.
 
미술평론가 김진하(나무아트 대표)씨는 고인을 “사심(私心)이 없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은 조용한 운동가”라고 돌아봤다. 80년대 미술운동의 중심지였던 ‘그림마당 민’의 관장을 지내면서 공권력의 감시와 탄압에 경영난으로 고생하면서 내색 한 번 안 했고, 무크지 ‘시대정신’을 발간해 미술이념의 틀을 잡아놓고도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인이 투병 중에도 붓을 놓지 않고 저술에 힘쓰던 책상 모습이 전시장 한쪽에 재현됐다. [사진 정재숙]

고인이 투병 중에도 붓을 놓지 않고 저술에 힘쓰던 책상 모습이 전시장 한쪽에 재현됐다. [사진 정재숙]

 
이번 전시에는 고인이 90년대에 ‘경의선’ 모임에 합류하며 작업한 사진연작 ‘분단풍경’도 제대로 선보였다. 월간 ‘사회평론 길’에 24회 연재한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性)’을 정리한 『누가 몰가부(자루 없는 도끼)를 내놓겠는가』는 책으로 꾸며져 나왔다. 선배 화가 신학철씨는 “영태는 글쟁이의 꼿꼿한 기개, 화가의 민중적인 기를 아우르고 있어서 그런 삶 자체가 동시대를 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회고했다. “욕심 안 부리고 같이 세상을 바꾸자는 고인의 태도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니냐”는 김정환 시인의 한마디가 해질녘 김포 들판을 울렸다. 
 
김포=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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