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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파우스트를 사랑한 비련의 여인이 부르는 노래

[더,오래] 박완·전세아의 시시콜콜 클래식(3)

팝페라 테너이자 뮤지컬 배우인 박완과 콘서트를 기획하는 프로듀서 전세아는 부부다. 음악은 부부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운 매개다. 음악가의 극적인 상황부터 오케스트라 악기 속 숨은 메시지와 윤활유가 되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알고 음악을 들으면 재미와 감동이 배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함께 들을 수 있는 오붓한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쓴다. <편집자>



그의 입맞춤에
내 몸 삭을지라도…
 
‘물레 감는 그레첸'(Gretchen am Spinnrad)’은 17세의 슈베르트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보고 감동해 작곡한 가곡(Lied)이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희곡 '파우스트'는 그가 대학 졸업 즈음 쓰기 시작해 죽기 직전 완성한 대작이며, 훗날 베를리오즈와 구노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중앙포토]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희곡 '파우스트'는 그가 대학 졸업 즈음 쓰기 시작해 죽기 직전 완성한 대작이며, 훗날 베를리오즈와 구노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중앙포토]

 
파우스트는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무려 60여 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비밀을 알아내고 싶어하던 늙은 파우스트는 평생을 바친 학문적 노력이 아무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는 악마와의 계약으로 청춘을 되찾게 된다.
 
파우스트에 감동한 슈베르트, ‘물레 감는 그레첸’ 작곡
그레첸(원작에서 이름은 마르가레테)은 파우스트 제1부 ‘비극’에서 나온다. 청년 파우스트는 교회에서 나오는 순결한 처녀 그레첸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여인을 탐하게 된다.
 
메피스토펠레스(악마)의 농락으로 그레첸은 어머니와 아기를 살해하는 죄를 범한다. 파우스트의 칼에 오빠는 죽게 되며, 결국 감옥에 갇힌다. 그레첸은 모든 형벌을 감수하고 제 죽음으로 신의 심판을 받고자 한다.  
 
슈베르트의 ‘물레 감는 그레첸’은 파우스트와 사랑에 빠진 그레첸이 홀로 방에 앉아 파우스트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곡이다. 하지만 이 음악은 사랑에 빠진 여인의 음악이라기보다는 비극으로 끝나는 결말을 이야기해주듯 비장함과 슬픔이 보이는 곡이다.
 
예로부터 물레에 상징적으로 부여하는 의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풍요와 다산 등 물레에서 짜낸 실은 부의 축적으로 이어지며 번영의 의미로 쓰여왔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거만한 자와 불손한 자를 다스리는 복수의 여신(네메시스)이 들고 있는 상징적인 물건 중 사과 외의 다른 하나가 물레바퀴이기도 하다.
 
오만에 빠져 신의 영역을 넘보는 것은 복수의 여신을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물레는 인간의 우쭐대는 행위에 대한 여신의 보복을 의인화한 것이기도 하다. 네메시스 이름의 어원 중에는 '피할 수 없는'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피할 수 없었던 파국으로 치닫는 파우스트와 그레첸의 저주 걸린 사랑이 들리지 않는가.
 
 
꼭 이 영상을 본 후 이 부분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늦은 저녁 어두운 방 안 구석 한 여인이 왼손으로 물레를 감으며 그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사랑에 빠져있다고 하기에는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짙다.
 
분산화음으로 끊임없이 진행하는 피아노 반주의 음형은 물레 소리의 회전을 나타내며 그레첸의 심란한 마음을 여실하게 표현한다.
 
나의 안식 사라지고
내 마음 무거워
나 다시는 어디서도
내 마음의 안식 얻지 못하리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그레첸은 온통 파우스트 생각뿐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하는 피아노 반주는 사랑의 깊은 비극에 빠진 그녀의 앞날을 예고한다.
 
그의 우아한 걸음
그의 고상한 모습
그 입가의 미소
그 눈빛의 위력
 
2016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해외초청작 '파우스트' 중 한 장면. 토마스 판두르 연출, 류블라냐 국립극단 SNT Drama Ljubljana. [중앙포토]

2016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해외초청작 '파우스트' 중 한 장면. 토마스 판두르 연출, 류블라냐 국립극단 SNT Drama Ljubljana. [중앙포토]

 
그레첸은 파우스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의 모습 하나하나를 묘사하며 마치 눈앞에 파우스트를 그리는 듯 표현한다.
 
마음껏 그에게
입 맞출 수 있다면,
그의 입맞춤에
내 몸 삭을지라도
 
점진적으로 음악은 정점으로 이어지고, 짧은 정적을 형성한 뒤 이어지는 입맞춤을 이야기하는 부분 이외에는 계속 연주가 이어진다. 위기는 다시 고즈넉한 분위기로 묘사된다.
 
비극적 결말을 예고하는 입맞춤 
미소, 입맞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단어이지만 '물레 감는 그레첸'은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해 듣는 이를 불안으로 몰아세운다. 무한한 지경으로 솟구치는 비극의 선율이다.
 
슈베르트의 ‘물레 감는 그레첸’을 가장 잘 표현하는 연주자를 꼽으라면 미국의 드라마틱한 소프라노 제시 노먼을 꼽을 수 있다. 제시 노먼의 중성적인 음성은 극적인 표현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가곡이지만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극적인 연주곡을 다가오는 6월 찬란함 속의 처연한 곡으로 추천하고 싶다.
 
박완 뮤지컬 배우, 전세아 크로스오버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로듀서 cultureqo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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