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비용 개념 실종된 퍼주기 정책, 근면성 갉아 먹어
J노믹스 쇄신, 세금 쉽게 손대는 습성부터 바꿔야
가령 깨알 같이 많은 대선 공약의 하나라고 추석·설 두 차례 겨레의 명절 때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준 것이 일례다. 빚에 허덕이는 한국도로공사는 이로 인한 1000여억원 매출 손실을 감수했다. 서울시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시내 차량 운행을 줄이겠다고 지난 1월 사흘간 지하철 요금을 면제하느라 150억원의 예산을 썼다.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 중단으로 인한 손실 1200억원도 관할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이 떠안았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비급여를 급여 항목으로 대거 돌리는데 5년간 30조원 넘는 재정이 투입된다. 시끌시끌한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이슈에도 유형은 좀 다르지만, 공짜 개념이 섞여 있다. 이례적으로 일자리안정기금 3조원을 책정해 임금 부담이 늘어난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아우성을 잠재울 셈이다. “세수가 수년째 기대 이상이라고 세금을 화수분으로 아느냐”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1분기 빈부 양극화 수준이 사상 최악이라는 통계청 발표에 화들짝 놀란 청와대가 29일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몸소 주재해 150분의 마라톤 회의를 했다. “소득분배 악화는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라는 대통령의 자책이 예사롭지 않다. 분배 통계치가 소득주도성장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셈이다. 서울 강남세무서 민원창구에는 폐업신고 줄이 번호표 뽑고 기다릴 정도로 자영업 붕괴가 심각하다.
흘러나오는 이야기처럼, 소득주도성장의 줄기는 놔두되 근로장려세제(EITC) 같은 곁가지 지원방안을 만지작거리는 미봉책으론 곤란하다. 우선 두자릿 수 최저임금 인상률이 다섯달 동안 일자리와 저소득층 가계 현장에 무엇을 초래했는지 엄밀히 따져야 한다. 세계 수준의 계량경제학을 뽐내는 학계, 순발력 뛰어난 경제관료들이 모이면 최저임금 효과의 조사·분석 만들어내기 어렵지 않다. 차제에 소득주도성장 논란이 해답 없는 정쟁과 국론분열로 치닫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공짜가 종국에 더 비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비싼 공짜를 경험한 곳은 베네수엘라·그리스 같은 나라다. 자유분방한 국민성에 포퓰리즘 정부가 공짜 DNA까지 심은 탓이다. 기업의 공짜마케팅은 장차의 매출을 기대하는 투자 활동이다. 정권의 공짜정책은 납세자 돈으로 쉽게 유권자 매표(買票)를 하려는 선심 생색이거나, ‘아니면 말고’ 식 무책임한 실험과 낭비로 흐르는 게 고작이다. 6·13 지방 선거에서 저질 무상공약을 남발하는 불량 후보의 낙마 운동을 펼쳐야 한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러시아 속담) “공짜점심은 없다”(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는 익숙한 경구를 소박하게 실천하는 분들이 주변에 있다. 65세를 넘겨 지하철 요금 면제지만 “여유 없는 이들만 공짜가 온당하다”면서 꼬박꼬박 티켓을 끊는 어르신의 모습이 더욱 근사해 보이는 요즘이다.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