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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없으면 부처도 필요없다” 적멸에 든 설악의 주인

‘걸림 없는 도인’ 무산 스님의 영결식이 30일 오전 설악산 기슭 신흥사에서 열렸다. 불자와 정·관계, 문화계 추모객 3000명이 몰렸다. [연합뉴스]

‘걸림 없는 도인’ 무산 스님의 영결식이 30일 오전 설악산 기슭 신흥사에서 열렸다. 불자와 정·관계, 문화계 추모객 3000명이 몰렸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입적한 조계종 신흥사 조실(祖室) 무산(霧山) 스님은 생전 자신의 장례를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마을장으로 치르라는 당부의 글을 남겼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나의 원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신신당부했다. 평생의 공력을 들인 백담사 만해마을(용대리)의 마을장이면 충분하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스님은 소탈했다. 설법전에서나 평소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무애(無碍) 도인, 격외 선사로 불린 이유다. 하지만 뒤에 남은 사람들은 스님의 마지막 말씀을 따를 수 없었다.
 
 
최북단 절 건봉사에 3000명 모여
 
30일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조계종 사부대중, 수많은 불자와 정·관계 인사, 스님을 따르던 많은 문인이 참석한 가운데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졌다. 3000여 인파가 몰렸다. 시대의 도인을 보내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그만큼 절박했다.
 
이날 오전 10시 설악산 기슭에 자리 잡은 신흥사 설법전. 영결식은 명종, 삼귀의례, 영결법요, 헌다·헌향, 행장 소개, 영결사와 법어, 추도사, 조사, 조시의 순서로 진행됐다. 영결식을 마친 스님의 법구는 남한 최북단 사찰인 강원도 고성 금강산 건봉사로 이운됐다. 오후 1시부터 다비식이 치러졌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이런 외침과 함께 불길에 휩싸여 걸림 없는 도인으로서 이승에서의 시간을 마감했다.
 
평생의 도반이자 절친이었던 화암사 회주 정휴 스님은 “스님이 남긴 공적은 수미산처럼 높고, 항하의 모래처럼 많지만, 정작 스님께서는 그 공덕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수행자의 하심(下心)을 보여주셨다”며 “무산당, 편히 쉬시게”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조계종 진제 종정은 법어에서 “설악의 주인이 적멸에 드니 산은 슬퍼하고 골짝의 메아리는 그치지 않는다”며 “무산 대종사께서 남기신 팔십칠의 성상(星霜)은 선(禪)과 교(敎)의 구분이 없고,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에 걸림이 없던 이 시대의 선지식의 발자취였다”고 회고했다.
 
 
생전 “용대리 마을장으로 치러달라”
 
남한 최북단 건봉사에서 거행된 다비식 장면. [뉴스1]

남한 최북단 건봉사에서 거행된 다비식 장면. [뉴스1]

생전 스님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근배 시인은 조시에서 “그 높은 법문 그 천둥 같은 사자후를 어디서 다시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백세(百世)의 스승이시며 어버이시며 친구이시며 연인이셨던 오직 한 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오늘의 고통, 중생의 아픔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 중생의 아픔이 내 아픔이 돼야 한다.”
 
영결식 도중 스님의 육성 법문 영상이 스크린을 통해 방영되자 식장 분위기는 한층 숙연해졌다.
 
이근배 시인은 스님이 평소 “내가 중인가, 가짜지. 나는 낙승(落僧)”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낮추면서도 돈과 명예에 연연하지 않았다. 거액을 들여 조성한 만해마을을 결국 동국대에 기증하고, 만해축전을 만들어 만해상을 운영하면서도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조시인을 포함해 많은 문인이 스님을 따른 것도 “나는 통장이 없다. 중이 무슨 통장이냐”며 어려운 처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담사 유나 영진 스님도 “스님은 평소에 재산을 모아두는 분이 아니셨다. 있으면 있는 대로 주위분을 도와주셨다. 또 그렇게 하신 일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셨다”고 전했다. 용대리 주민과 노인회, 형편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도 남 모르게 내주었지만 워낙 내색을 하지 않아 주위 스님들도 내막을 자세히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불교는 사람을 살리는 종교” 강조
 
스님이 평소 ‘살아 있는 화두’를 강조한 것도 불교가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본래면목, 뜰 앞의 잣나무 같은 화두는 1000년 전 중국 선사들의 산중문답이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필요없다. 환자가 없으면 의사가 필요없는 것과 같다. 부처는 중생과 고통을 같이해야 한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라고 했다. 사람을 살리는 종교여야 한다는 뜻이다.
 
 
진제 종정 "걸림 없던 선지식 발자취”
 
스님은 생사에 연연하지 않는 도인답게 임박한 죽음을 기꺼이 끌어안으려 한 듯하다. 대표작 선시(禪詩) 33편을 묶어 지난달 출간한 무산 오현 선시에는 유독 죽음에 관한 작품이 많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은 하루살이 떼”. 수행자의 한평생도 하루살이의 하루에 불과하다는 경지를 노래한 ‘아득한 성자’다.
 
입적 닷새 전인 21일 오후, 가깝게 지내던 문인들이 찾아갔을 때 스님은 생명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불사르겠다는 듯 이미 20일가량 곡기를 끊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날 스님을 만난 김지헌 시인은 “워낙 목소리가 강하고 정정해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만나뵌 지 닷새 만에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이날 영결식과 다비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최문순 강원도지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 주호영 의원, 이양수 의원, 황영철 의원, 심기준 의원, 이수성 전 국무총리, 성낙인 서울대 총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소설가 조정래, 시인 오세영·김제현·김초혜·신달자·김영재·한분순·이지엽·홍성란·이홍섭·장석남·문태준·고찬규, 산악인 엄홍길씨 등이 참석했다.
 
백담사 측은 “이날 오후 늦게 무산 스님의 1차 사리 수습을 마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종 수습이 끝나도 몇 과를 수습했는지 밝히지 않는 것을 고려 중이다. 물질에 연연하지 말라고 했던 스님의 유훈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무산 스님 임종게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 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신준봉·백성호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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