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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보자기·장신구·침선 … 한국미 모으기 반세기

2013년 서울 논현동 한국자수박물관에서 소장품을 둘러보는 고(故) 허동화 관장. [중앙포토]

2013년 서울 논현동 한국자수박물관에서 소장품을 둘러보는 고(故) 허동화 관장. [중앙포토]

한국 여성의 미감과 헌신의 마음을 갈무리하던 그다운 마무리였다. 지난 24일 92세로 타계한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은 주변을 번거롭게 하지 말라며 소박한 장례를 가족에게 당부했다. 고인은 “빈소를 차리지 말고, 부고도 알리지 말라”고 유언했다. 이를 섭섭하게 생각할 지인들에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별을 슬퍼하기보다 주어진 소명을 기쁨으로 감당했던 자신의 열정을 기억해 주길 바란 마음이 뒤에 남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고인은 한국 자수공예의 역사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1970년대 초부터 자수병풍과 보자기만 모았다. 부인 박영숙(86) 여사가 운영하던 서울 논현동 치과병원 안에 마련한 전시공간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박물관’이라 불렀다. 그가 컬렉션한 자수를 중심으로 한 유물은 4241건 5129점에 달한다. 자수병풍과 보자기 1000여 점을 비롯해 복식과 장신구, 침선 도구까지 남들이 돌아보지 않던 여인들의 규방 물품을 홀로 긴 시간 정성스레 정리했다. 197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 ‘박영숙 수집 전통자수 오백년’ 전 등 100여 차례 기획전을 연 공을 인정받아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별세하기 20여 시간 전 허 관장은 일생 모은 수집품을 정리한 문집을 내고 병실에서 연 작은 출판기념회에서 이별의 슬픔 대신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까지 책을 30여 권 출간한 중에 오늘처럼 감동적인 순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7권으로 된 전집을 내며 이 정도라도 조촐한 모임을 열게 돼 감사하고 기쁘다”고 인사했다. 허 관장은 부인과 함께 평생 모은 유물 5000여 점을 지난 17일 서울시에 기증했다. 기증 유물은 모두 서울시가 옛 풍문여고 자리에 세우는 서울공예박물관에 소장돼 2020년 5월부터 공개될 예정이다. 고인은 “저의 삶이 작게나마 인류사회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며 “여러분 모두가 저처럼 죽음이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것을 체험하시길 기도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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