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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의 퍼스펙티브] “남북 대화는 이제 시작일 뿐 … 정권 바뀌어도 협력 이어가야”

청년들이 말하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한 사건을 두고 여러 주인공이 전혀 다른 기억과 이야기를 지어내는 방식을 대비시킨 명작이다. 사건은 하나지만 등장인물들의 해석은 제각각으로 흩어지고 뒤엉킨다. 아마도 요즘 우리는 북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의 라쇼몽 앞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의 남북 정상회담 평가
대화 분위기 긍정 평가하면서도
북한 변화에는 신중한 입장 보여
“북한과 관계는 결혼 생활과 비슷
신뢰·책임 쌓여야 흔들리지 않아”

청년에겐 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 중요
같은 민족이니 통일해야 한다는
기성 세대 논리에 공감하지 않아

 
우리는 각자의 꿈과 현실 인식을 담아 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이 펼쳐가는 드라마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편에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정말 변했고 이제 한반도 평화를 향한 마지막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희망적 관측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신중론이 여전하다. 비핵화, 남북 화해, 북·미 접근은 절차와 신뢰 구축을 통해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질 뿐, 섣부른 낙관론과 비관론을 모두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들려온다.
 
낙관론이 주도하고 신중론이 견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주목할 만한 여론조사 결과가 4·27 남북 정상회담 직후 발표됐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다수가 북한은 4·27 판문점 선언을 잘 지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고(58%), 응답자의 65%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생각이 전보다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비핵화 라쇼몽의 주인공은 청년이다. 대체로 긍정적 희망론이 우세한 가운데 청년들은 유독 신중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나머지 모든 세대가 북한이 4·27 합의를 지킬 것이라고 보는 쪽으로 기울어 있는 데에 비해 20대 청년들은 단지 47%만이 북한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예상했다(그래픽 참고). 특히 1차 판문점 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생각이 거의 모든 세대에 걸쳐 꽤 좋아진 것으로 나타나는데 유독 청년들의 긍정 평가는 현저하게 낮다. 19~29세는 단지 40%만이 김 위원장에 대해 평가가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19~29세 그룹의 55%는 회담 이후에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없다고 응답했다.
 
문 대통령, 트럼프, 김정은 세 주인공이 현란하게 펼쳐가는 협상과 줄다리기의 드라마 앞에서 청년들이 차분함, 신중함, 현실론을 내놓은 배경은 무엇인가? 또 청년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외교, 그리고 그에 대해 격렬히 반발하는 자유한국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들에게 남북한의 미래는 어떤 희망이고 전망인가?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건조한 숫자들이 말해줄 수 없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필자는 지난 2월 대화를 나누었던 20~30대 초반 청년들과 다시 한번 자리를 같이했다. 지난 2월 8일자 중앙일보 퍼스펙티브 대화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대부분 다시 참여함으로써 남북 정상회담 이전과 이후 이들의 인식과 해석이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남북, 북·미 대화 : “성급한 희망 자제해야”
 
한국갤럽과 공론 조사에서 드러나듯 청년들은 지금의 남북, 북·미 대화의 흐름 속에서 매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먼저 신중론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청년들은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는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라며 극적인 대화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전망과 북한의 변화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내보였다.
 
“북한과의 관계는 결혼 생활에 비유할 수 있다. 남녀가 만나서 급하게 가까워지고 결혼까지 하게 됐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정(家庭)의 완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부부간에도 아이를 가지는 등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쌓여 신뢰와 책임감이 굳어지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과 같다. 남북 관계도 앞으로 서로의 책임을 공유하는 구체적 결과물들이 쌓여가야 하는 관계이다. 이를 위해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할 것이고, 지금의 대화 분위기는 단지 그 같은 긴 과정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일 뿐이다.”(임아름·31세)
 
물론 신중론과 대조를 이루는 강한 희망의 목소리도 있다. “작년에 벌어졌던 북·미 간의 극심한 대립과 말 폭탄을 상기해보면, 지금의 대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크나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는 사실 평화라는 개념을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한 채 성장해왔다. 지금이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경험을 쌓는 소중한 기회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문옥현·29세)
 
 
문 대통령 평화 외교 : 노력과 행운의 조합
 
그렇다면 지금의 대화 국면을 끌어낸 동력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청년들은 먼저 문 대통령의 노력과 행운을 동시에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과 유엔이 주도한 대북 제재의 효과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는 균형감을 보여주었다.
 
“현재의 여러 조건을 두루 묶어 대화의 국면으로 이끌어 온 문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물론 문 대통령의 노력 못지않게 타이밍과 북한, 미국의 내부 사정도 큰 역할을 했다.”(정다빈·29세)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역할은 평가돼야 한다. 지난 10여 년의 공백과 이전의 딱딱한 남북 관계를 고려해보면 여러 어긋나 있는 판들을 묶어 대화 분위기를 끌어낸 문 대통령의 역할은 중요하다.”(우아정·28세)
 
“문 대통령의 못 이기는 척, 길을 터주는 부드러운 제스처가 대화 분위기를 북돋웠다고 할 수 있다.”(오건영·28세)
 
하지만 청년들은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온 데에는 북한 내부의 경제 사정과 미국과 유엔의 역할도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미국과 중국까지 나선 국제적인 압박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데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아직 북한이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처럼 신사고로 전환했다는 경험적인 근거는 충분하지는 않다.”(오건영)
 
 
보수 야당 : 견제와 발목잡기에서 길 잃어
 
문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긍정적이고 균형 잡힌 평가와는 대조적으로, 청년들은 보수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여러 언사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판적이었다.  “다양한 비판과 견제가 가능한 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최대 장점인데, 자유한국당 대표의 현 대화 국면에 대한 발언은 침착하고 객관적인 비판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우아정)
 
“홍준표 대표의 발언이 보수적 입장을 지닌 시민들을 전혀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최근 발언들은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 지지 세력과 중도 세력들의 결속력만 높여주고 있다.”(임아름)
 
달리 말해 지금의 비핵화, 평화 모색의 분위기 속에서 “1960~70년대식의 반공 테제를 여전히 들고나오는 보수 야당은 당파적인 비판에 앞서서 먼저 스스로 자기반성부터 해야 한다. 지금의 남북한 정부는 미국·중국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가와 처가의 간섭 속에서 대화를 이어가기에도 힘겨운데 시누이(보수 야당)의 막무가내식 발목 잡기는 보기에도 답답하다.”(송민상·28세)
 
그런데도 청년들은 문 대통령과 야당 사이의 진지한 대화를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발언 방식이 민주 정치의 건전한 견제에 턱없이 부족하기는 하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야당의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견해를 무조건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동떨어진 의견들이 제기되는지 돌아봐야 한다.”(한은수·32세)
 
 
전망 : “민족의식만으론 통일 안 돼”
 
청년들은 이제 새로운 출발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는 남북한의 미래에 대해서 침착하고도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
 
“지금의 흐름이 문재인 정부에서 완결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바뀌더라도 지금의 협력과 대화의 연속성을 지켜가는 것이다.”(정다빈)
 
“우리는 북한과 같이 살아가지만 가깝게 섞이고 싶지는 않다.”(조창주·31세)
 
“정체성의 기반에 민족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이 있다고 한다면 청년 세대에게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압도적으로 크다.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논리나 믿음에 공감하지 않는다.”(오건영)
 
또한 청년들은 통일에 따른 경제적·비경제적 비용을 걱정하고 있었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도 청년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문제인데 남북한 통일이 가져올 경제적 추가 부담은 정말 부담스럽다.”(송민상)
 
하지만 청년들 가운데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견해도 분명 존재했다. “통일이 머나먼 것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우리는 천천히 준비해야 한다. 통일을 둘러싸고 흔히 경제적 비용 문제가 제기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경제적 갈등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이다. 경제적 관점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만들어가는 통일을 생각해야 한다.”(문옥현)
 
청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필자에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이들의 균형감과 장기에 걸친 변화를 염두에 둔 시간 관념이었다. 지금의 대화 분위기를 환영하고 긍정 평가하지만, 북한의 변화 가능성, 북한 비핵화와 남북의 신뢰 구축에 대해 청년들은 현실주의적·실용적인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었다. 또 청년들은 문 대통령의 대화 노력과 행운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한반도 신뢰 구축과 평화 공존이라는 장기적 변화 과정의 입구에 서 있을 뿐이라는 전망을 갖고 있었다. 한 마디로 청년들은 책임감, 신중함, 현실 감각을 두루 갖춘 미래의 주인들이었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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