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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박세리의 흰 맨발은 우리에게 위로였다

박세리는 연장전 18번 홀에서 공이 연못 경사지 러프에 빠져 위기를 맞았다가 기사회생했다. 양말을 벗는 박세리. 하얀 발이 두드러진다. [중앙포토]

박세리는 연장전 18번 홀에서 공이 연못 경사지 러프에 빠져 위기를 맞았다가 기사회생했다. 양말을 벗는 박세리. 하얀 발이 두드러진다. [중앙포토]

최고 권위의 메이저 골프대회인 US여자오픈이 31일 미국 앨라배마주 쇼울크릭 골프장에서 개막한다. 1998년 박세리가 ‘맨발의 투혼’을 발휘하면서 우승한지 꼭 20년 만이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박세리 우승 20주년 기념 영상 상영회, USGA 리더들과 만남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USGA 초청으로 대회장을 방문한 박세리는 “20년이나 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20년 전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맨발의 투혼을 뒤돌아봤다.
 

최고 권위 US여자오픈 오늘 개막
1998년 박세리 우승한 지 꼭 20년
연장 20번째 홀서 극적으로 우승
그 해 7월 4개 대회 중 세 차례 정상

“졌구나, 졌어.”
 
1998년 7월 7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블랙울프런 골프장에서 열린 US여자오픈 연장전. 마지막 18번홀에서 박세리의 드라이브샷이 왼쪽으로 날아가 연못 쪽으로 굴러 들어가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한국의 골프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종아리까지 빠지는 물에 들어가 샷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종아리까지 빠지는 물에 들어가 샷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세리의 공은 다행히 물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경사가 심한 잡초 속에 묻혀있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신인인 박세리(당시 21세)는 동갑나기인 태국계 미국인 아마추어 제니 추아시리폰과 연장전을 벌이던 중이었다.
 
경기를 중계한 미국의 해설가는 “무리하게 치다가는 공이 물 속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황이 워낙 안좋았다. 벌타를 받고 공을 옮기는 것이 나을 듯도 했다. 승부의 추는 추아시리폰 쪽으로 기울었다. 어려움에 처한 박세리를 보는 추아시리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공을 그린 근처로 보낸 다음 느긋하게 과자를 먹으면서 박세리를 지켜봤다.
 
잠시 고민하던 박세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관중들이 환호를 했다. 박세리는 종아리까지 잠기는 물속에 들어가서 칠 수 있는지를 살핀 다음 침착하게 공을 안전한 쪽으로 빼냈다.
 
신발을 다시 신을 때 알 수 있었다. 박세리의 발이 새하얗다는 사실을. 얼굴도 까무잡잡하고 팔 다리도 까매 박세리의 피부가 원래 그런 색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청자들은 하얀 발과 선명하게 비교되는 까만 피부를 바라보면서 박세리의 노고를 알 수 있었다.
 
연장 20번째 홀에서 버디 퍼트를 넣고 기뻐하는 박세리. [중앙포토]

연장 20번째 홀에서 버디 퍼트를 넣고 기뻐하는 박세리. [중앙포토]

박세리가 침착하게 경기하자 오히려 추아시리폰이 실수를 했다. 추아시리폰은 그린 근처에서 어프로치샷을 홀에 붙이지 못해 보기를 했다. 나란히 보기를 범한 두 선수는 서든데스의 연장전을 치러야 했다. 4일간 72홀 경기를 하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연장전 18홀을 치렀는데 그래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자 재연장전을 벌인 것이다.  
 
박세리는 결국 2차 연장전 두 번째 홀, 그러니까 연장 20번째 홀에서 6m 버디 퍼트를 넣어 짜릿한 우승을 차지했다. LPGA투어 역사상 가장 긴 연장전이었다. US오픈 조직위는 올해부터 연장전을 2홀로 줄였기에 그의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연도 많았다. 최종라운드를 앞두고 박세리는 뒤척이다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러나 오전 4시 30분쯤 호텔에 불이 나는 바람에 박세리는 부랴부랴 대피해야 했다. 다행히 작은 화재여서 큰 피해는 없었지만 박세리는 잠을 설칠 수 밖에 없었다.
 
US여자오픈 20년 전과 오늘

US여자오픈 20년 전과 오늘

스물한 살의 신인 박세리와 아마추어 선수 추아시리폰의 연장전 20홀 경기는 미국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경기도 드라마틱한데다 어린 선수 두 명이 역대 가장 길고 치열한 연장전을 치렀으니 관심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박세리와 골프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국민신당 김충근 대변인은 “놀고먹으면서 ‘헤드업’만 하는 꼴불견 국회의원들보다 박세리가 낫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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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에 지친 박세리는 다음 대회인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 출전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자 제이미 파 대회 주최 측은 스타가 된 박세리를 대회에 참가시키기 위해 “자가용 비행기를 보낼 테니 반드시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세리는 2라운드에서 무려 11언더파 61타를 치면서 당시 LPGA투어 한 라운드 최소타 기록을 세웠다. 이후 박세리에게 제이미 파 크로거는 행운의 대회가 됐다. 통산 다섯 차례 우승했다. 2주 후 박세리는 자이언트 이글 클래식에서도 우승했다. 98년 7월 열린 LPGA 4개 대회에 나가 3번 우승했다. 그해 여름 박세리는 태양처럼 뜨거웠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훈장을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들어올 때 카퍼레이드 준비도 했다. 그러나 박세리는 시즌 중이어서 어렵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박세리는 연말이 돼서야 귀국했다. 미국 기자들이 박세리가 탄 비행기를 함께 타고 오면서 인터뷰를 했다. 박세리는 귀국 첫날부터 30분 단위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해 결국 훈장을 주려던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국회의원들도 박세리를 만나려 했으나 역시 불가능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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