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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 없는 도인 무산 스님의 마지막 길

30일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에서 거행된 조계종 무산 스님의 다비식 장면. [사진 연합뉴스]

30일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에서 거행된 조계종 무산 스님의 다비식 장면. [사진 연합뉴스]

지난 26일 입적한 조계종 무산 스님은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나의 원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자신의 장례를 백담사 만해마을이 있는 용대리 주민장으로 치르라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뒤에 남은 사람들은 그 말씀을 따를 수 없었다. 수많은 불자와 정관계 인사, 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30일 영결식과 다비식을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치렀다. 
 오전 10시 설악산 기슭 신흥사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삼귀 의례, 헌다·헌향, 행장 소개, 추도사 순으로 이어졌다. 영결식 후 스님의 법구는 남한 최북단 사찰인 금강산 건봉사로 이운돼 오후 1시부터 다비식이 치러졌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불길에 휩싸여 걸림 없는 '무애(無碍) 도인'의 이승에서의 시간을 마감했다. 
 
 영결식에서 화암사 회주 정휴 스님은 "스님이 남긴 공적은 수미산처럼 높고, 항하의 모래처럼 많지만, 정작 스님께서는 그 공덕을 한번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수행자의 하심(下心)을 보여주셨다"며 "무산당, 편히 쉬시게"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조계종 진제 종정은 법어에서 "설악의 주인이 적멸에 드니 산은 슬퍼하고 골짝의 메아리는 그치지 않는다"며 "무산 대종사께서 남기신 팔십칠의 성상(星霜)은 선(禪)과 교(敎)의 구분이 없고,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에 걸림이 없던 이 시대의 선지식의 발자취였다"고 회고했다.  
 생전 스님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근배 시인은 조시에서 "그 높은 법문 그 천둥 같은 사자후를 어디서 다시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백세(百世)의 스승이시며 어버이시며 친구이시며 연인이셨던 오직 한 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신흥사 설법전에서 거행된 무산스님의 영결식 장면. [사진 뉴스1]

신흥사 설법전에서 거행된 무산스님의 영결식 장면. [사진 뉴스1]

 
 스님은 도인답게 임박한 죽음을 기꺼이 끌어안으려 한 듯하다. 대표작 선시(禪詩) 33편을 묶어 지난달 출간한 『무산 오현 선시』에는 유독 죽음에 관한 작품이 많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은 하루살이 떼". 수행자의 한평생도 하루살이의 하루에 불과하다는 경지를 노래한 '아득한 성자'다.  
 입적 닷새 전인 21일 오후, 가깝게 지내던 후배 문인들이 찾아갔을 때 스님은 생명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불사르겠다는 듯 이미 20일가량 곡기를 끊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날 스님을 만난 김지헌 시인은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결코 무심히 지나치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영결식에는 총무원장 설정 스님,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최문순 강원도지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 주호영 의원, 이양수 의원, 황영철 의원, 심기준 의원, 이수성 전 국무총리, 성낙인 서울대 총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소설가 조정래, 시인 오세영·김제현·김초혜·신달자·김영재·한분순·홍성란·이홍섭·장석남·문태준·고찬규, 산악인 엄홍길씨 등이 참석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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