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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악성"-정율성은 한국인

현대 중국 최고의 음악가가 해방 전 의열 단원으로 독립 운동을 했던 한국인 정율성이었음이 최근 밝혀졌다. 이 사실은 중국 중앙 군사 위원회가 지난 7월25일 그가 21세 때 (1939 년)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을 「중국 인민 해방군 군가」로 공식 지정하고 현 국가 부주석 왕진이 5년 전 중국에서 제일 걸출한 작곡가라고 그를 칭송함으로써 알려졌다.
그의 작품을 군가로 공식 지정 할 때 중앙 군사위 등소평 주석이 직접 서명했다고 신화사통신 (7월25일)과 인민일보 (7월26일)가 1면에 보도했으며 왕진 부주석은 1983년 북경에서 발행된 「정율성 작곡 선집」의 회고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은 1918년 광주 태생으로 15세 때 남경에 건너가 의열 단원이 된 후 약 5년 동안 남경과 상해에서 항일 투쟁에 참가했다. 1937년 그는 한국의 애국 청년들과 같이 서안을 거쳐 연안에 도보로 도착, 모택동·주덕 등이 칭찬한 「연안송」을 작곡했고, 노변 예술 학원 음악 교수로 재직 중 23세 때 중국인 정설송과 결혼했다. 1942년5월 그는 모택동이 주관한「연안 문예 좌담회」에 참석한 유일한 한국인이 되었으며 그후 중국 공산당의 지시로 무정 등과 같이 태행산에 들어가 「조선 의용군」 등을 창설, 항일 전에 참가했다.
해방 후 중공당의 지시로 연안에서 입북, 한때 평양의 조선 음악 대학 작곡 부장 등을 역임했던 그는 1951년 중공당의 소환에 따라 북경에 돌아갔다. 이때 그가 중국에 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1966년부터 10년 동안 문화 혁명 기간에 그는 한국 출신 등의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문화 혁명의 종말에 따라 그는 복권되어 창작의 권리를 되찾았으나 1976년12월7일 급서 했다.
당시 그의 나이 58세. 그는 생전에 3백여곡의 작품을 창작했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서울 올림픽 평화 대회 추진 위원회는 그의 미망인 정설송씨를 올림픽 손님으로 초청했다. 최근 이 추진 위원회가 9월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하는 서울 올림픽 평화 대회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그녀에게 발송한 것이다. 지금 북경의 외교부 관사에서 딸 소제씨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망인은 네덜란드·덴마크 대사를 지낸 중국 외교계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서울에 오게 될 경우 공식 일정이 끝난 다음 남편의 고향인 광주를 방문, 친지와 생가를 찾아보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율성씨는 광주시 주월 2동 월산 마을에서 한학자 정해업씨 (1933년 봄 사망)와 당시 호남 지방 명문가의 딸 최영온씨 (1964년 사망)의 사이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월산 마을에는 그가 중국으로 가기 전 15세 때까지 살았던 생가가 지금도 빈집으로 남아 있고 유일한 혈육인 5촌 조카 정형률씨 (73·무등 육아원 이사장·광주시 학운동 744)가 살아 있다.
정씨는 광주 지방 3·1운동의 진원지였던 숭일 학교 (사립·현 숭일중 전신)를 거쳐 당시 민족 교육의 요람이었던 전주 신흥 학교 (사립·현 신흥 중·고 전신) 에 입학, 4학년 1학기 때 중국에 건너갔다.
신흥중에는 그의 4학년까지 학적부가 남아 있다.
본관이 하동인 그는 고려와 조선조 때의 명장 정지·정충신 장군의 후손.
또 호남 지방 기독교의 선구자였던 최흥종 목사 (66년 사망·전남 건국 준비 위원장)가 큰외삼촌, 미군정 때 초대 전남 지사를 지냈던 최영욱씨 (사망)가 둘째 외삼촌이다.
<주섭일 편집 위원 실장·김국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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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