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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조명록, 클린턴 만나 ‘적대 청산’ 김정일 친서 전달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왼쪽)이 2000년 10월 10일(현지시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왼쪽)이 2000년 10월 10일(현지시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음달 12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실무 접촉을 벌이던 북한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미국에 보내 협상 레벨을 높였다. 회담이 다가오면서 북·미의 고위급이 나서는 건 사실상 예정됐던 코스다. 협상의 핵심인 북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의 빅딜은 실무진끼리 결론 내기 힘든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영철의 등장이 예상보다 빠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판문점에서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27일 한 차례 실무협의를 했고, 이날 싱가포르에서 의전·경호와 관련한 접촉을 시작한 정도여서 양측이 고위급 접촉을 할 정도로 논의가 무르익었다고 볼 순 없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북한 고위급 누군가가 미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당초 정보라인에서 협의를 진행하다 국무부(미국)와 외무성(북한)으로 대화 채널이 넘어간 상황에서 김영철이 다시 나선 건 의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수용 당 부위원장(국제담당)이나 이용호 외무상이 아니라 김영철이 움직인다는 건 그가 북·미 정상회담을 끝까지 챙긴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철의 방미 목적은 1차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외에도 김영철이 북·미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한 최종 조율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북소식통은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 대한 협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김영철은 그 대가로 미국의 체제 안전보장(CVIG) 의사를 확인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김영철이 소소한 협상은 실무협상에서 진행토록 하고 실무협의와 별개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등과 관련한 큰 줄기의 담판을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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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실무협의를 시작한 미국 대표단은 지난 27일 접촉 이후 이틀 동안 서울에 머무르며 추가접촉을 하지 않았다. 27일 접촉이 워낙 잘 됐거나 반대로 모종의 걸림돌이 있어 본국의 훈령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김용호 연세대 교수는 “의제와 관련해 실무선에서 할 얘기를 끝내고 해결되지 않은 비핵화의 최종 형태 등을 미국에서 협의하기 위한 방문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영철의 1차 행선지가 워싱턴이 아닌 뉴욕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뉴욕에 유엔 대표부를 두고 있는데, 언제든지 본국과 연락이 가능하다. 미해결 쟁점을 놓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과 담판을 벌이다가 수시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훈령을 받으려는 의도일 수 있다. 북·미 핵협상 담당인 최강일 외무성 북미국장 대리를 대동한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한편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미 특사로 보낸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은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워싱턴으로 갔다. 조명록은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획기적인 북·미 관계 개선 의지와 구체적인 안을 담은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했다. 두 사람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지, 평양·워싱턴에 연락사무소 상호 개설 등 국교 정상화 문제도 논의했다. 조명록은 회담 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이 주관한 만찬에서 “공화국(북한)의 자주권과 안전에 대한 미국의 담보만 확인되면 (김정일이) 대립과 적의의 조·미 관계를 평화와 친선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중대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또 ▶종전을 위한 4자회담 ▶북·미 적대관계 청산 노력 ▶호혜적인 경제협조와 교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를 골자로 한 북·미 코뮤니케에 서명했다. 북한과 미국은 당시 연락사무소 설치 직전까지 갔지만 미국 의회에서 북한의 인권정책을 문제 삼으며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정용수 기자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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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