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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김정은이 내민 손 잡아 준 문재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의 27일 기자회견을 전후해 사라질 뻔했던 미·북 정상회담이 살아났다. 문 대통령의 수치까지 참아내는 인내심과 진심이 느껴지는 인간성이 통한 것 같다. 우리 대통령이 회견할 즈음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싱가포르 회담 검토는 변하지 않았고 논의가 아주 잘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다행이다. 트럼프의 ‘잘 진행되고 있는 논의’ 가운데 문재인과 김정은의 스파이 접선 같았던 깜짝 정상회담이 들어 있을 것이다.
 

트럼프 편지에 극심한 충격과 공포
핵보유국에서 CVID로 입장 바꾼 듯

남북한 정상의 통일각(판문점 북측 지역) 비밀 회동을 복기해 보면 두 사람이 마치 미국 대통령이 낸 어려운 숙제를 함께 해치운 것 같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난 사실을 26일 오후 5시 끝나자마자 즉시 공개하지 못했다든지(오후 7시50분에 문자 메시지로 공개), 회담 결과 발표 회견을 굳이 하루 뒤인 27일로 미룬 것은 사전에 트럼프한테 내용을 성실하게 전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훈 국정원장이나 정의용 안보실장이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볼턴 안보보좌관한테 문재인·김정은의 대화 내용을 상세하게 브리핑했을 것이다.
 
핵심 소식통은 ‘청와대가 백악관에 어떤 내용을 전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트럼프가 매우 좋아할 내용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포기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핵 폐기, 즉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냐’고 재차 묻자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비핵화의 수준과 방식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확정 지어야 할 사안이다. 한국 쪽에서 먼저 흘러나가면 곤란하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김정은의 태도가 바뀐 이유는 뭘까.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트럼프가 한국 시간으로 24일 늦은 밤 ‘김정은 각하’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었다. 편지는 김정은에게 극심한 고통과 충격을 가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협박했다. 미국 대통령은 “귀하(김정은)가 최근 성명에서 드러낸 엄청난 분노와 노골적인 적대감(김계관과 최선희 이름으로 발표)” 때문에 싱가포르 회담을 열 수 없다고 한 뒤 “우리가 갖고 있는 어마어마하고 강력한 핵무기가 (북한에) 사용되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썼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과거 말폭탄이나 주고받던 트럼프와 달랐다. 그의 정중하면서 절제된 문어적 표현에 ‘물어 버리겠다’는 결의가 묻어났다. 트럼프의 편지는 행동파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상의해 작성됐다. 김정은은 미·북 정상회담이 불발돼 상황이 악화되면 한순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휩싸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어제 회견에 따르면 트럼프의 편지가 평양에 전달되고 하루도 지나기 전에(25일 오후) 김정은이 먼저 문 대통령에게 “만나자는 요청”을 해왔다. 절박하고 다급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아들보다 몇 살 어린 30대 북한 지도자가 내민 “도와 달라”는 손을 잡아 줬다. 대한민국 원수인 문 대통령이 무슨 스파이 접선하듯 몰래 경계를 넘어 적국의 수장을 두 시간이나 만났으니 헌법적 지위와 국격을 훼손하고 한국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그가 논란을 무릅쓰고 비밀 회담에 응해 그 내용을 불신과 의심이 가시지 않은 트럼프에게 정성스레 전달한 것은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과 일을 위해 때로는 자존심도 버리는 특별한 인성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그게 얼마나 고마웠던지 어제 날짜 노동신문 1면에 “김 위원장이 조·미 수뇌회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문재인 대통령의 노고에 사의를 표하시었다”는 기사가 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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