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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운전자론 … 문 대통령 “북·미 정상 직접 대화”

[SPECIAL REPORT] 6·12 북미 정상회담 취소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0시부터 1시간 동안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주재하며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긴급회의를 한 뒤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란 입장을 냈다. 왼쪽부터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문 대통령,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임종석 비서실장. [사진 청와대]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0시부터 1시간 동안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주재하며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긴급회의를 한 뒤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란 입장을 냈다. 왼쪽부터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문 대통령,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임종석 비서실장. [사진 청와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청와대는 충격에 빠졌다. 지난 24일 밤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 발표 이후 청와대 핵심 인사들은 한결같이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귀국한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벌어진 일이어서 더욱 안색이 무거웠다. 핵심 참모들에게는 사실상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워낙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시기라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 없다”며 “문 대통령이 전날 밤 소집한 회의에서 언급한 말로 향후 대응책을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대통령의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참모들이 이를 해석하는 설명도 내지 않을 것”이라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들과 긴급회의를 한 뒤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란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지금의 소통 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북·미)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에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NSC 상임위 회의를 열고 북·미 정상 간의 직접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미 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실낱같은 희망이 있는 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대안으로 제시한 북·미 간 직접 대화는 그동안 청와대가 강조해 온 ‘운전자론’과 상충된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은 물론 북·미 간에 이견이 노출될 때마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부각해 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번 발언으로 ‘중재자’나 ‘운전자’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자인한 셈이 됐다. 실제로 북·미 회담 취소 사실도 북한은 공식 발표 7분 전에 통보를 받은 반면 우리 정부는 발표와 거의 동시에 전달받았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카운터파트인 정의용 실장이 아닌 조윤제 주미대사에게 연락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볼턴의 정의용 패싱’ 주장까지 나왔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인사는 “한국의 역할은 여전히 있지만 현 상황에서 당장 청와대가 나서서 특별한 액션을 취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다른 관계자도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남북 간 ‘핫라인’ 통화나 한·미 정상 통화를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검토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패닉에 빠진 근본적 이유는 지나친 낙관론에 휩싸여 미국의 속내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도 적잖다. 지난 21일 정의용 실장은 워싱턴행 기내 간담회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고 장담했다. 그는 북·미 간 이상 기류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비하는 것”이라며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컨트롤타워가 북한이 아닌 미국이 ‘판’을 흔들 수도 있다는 판단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북·미 핵심 인사들과 직접 만나며 소통 창구 역할을 맡아 온 정 실장의 이러한 상황 인식은 문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새벽(한국시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선 기자 문답에서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대해 “확신한다”는 말을 세 번이나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불발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며 청와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문 대통령을 앉혀 놓고 30여 분간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작심 원맨쇼’도 심상찮은 조짐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청와대는 “아니다”는 해명으로 일관했다. 청와대 안보라인 인사들은 귀국길에 “한·미 정상회담이 잘 진행됐다”는 내부 평가를 핵심 참모들과 공유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대미 소식통은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엔 김정은 위원장에게 적당히 양보해서라도 회담을 성사시킬 것으로 봤던 모양인데, 이는 백악관의 강경 기류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라며 “북·미 회담의 이상 조짐이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는데 청와대가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원하는 것은 이뤄질 것이란 생각)’에 사로잡혀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이날 수원에서 현장 선대위 회의를 마친 뒤 “불과 몇 시간 후에 회담이 취소될지도 모르고 99.9% 된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안보실장을 시키느냐”며 “정의용 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등 네 명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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