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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 전기 쓴 ‘애리조나 카우보이’ “42년 해외 유랑하며 맨땅에 헤딩”

[박정호의 사람풍경] 전기문학 새 길 닦은 이충렬씨 
이충렬씨는 요즘 전에 없던 모자를 쓰고 다닌다. ’지난 2년 동안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 얘기를 쓰느라 원형탈모증에 걸렸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충렬씨는 요즘 전에 없던 모자를 쓰고 다닌다. ’지난 2년 동안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 얘기를 쓰느라 원형탈모증에 걸렸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보물찾기-. 그는 사람을 보물에 비유했다. 시간이라는 씨줄과 공간이라는 날줄이 만나는 곳, 그 복판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보면 우리의 어제를 알 수 있고, 또 그 어제를 보면 우리의 내일을 열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디 보물이 쉽게 눈에 띌까. 또 그 값어치를 어떻게 잴까. 남들이 안 한 일이기에 더욱 마음이 일었다. 한국 사회에 전기문학이라는 새 길을 닦는다는 자부심도 붙었다. “서구에선 일찍이 자리잡은 전기가 왜 우리에겐 유독 빈약할까” 수없이 되물었다.
 

94년 실천문학 등단
남미 거쳐 LA 찍고 애리조나 정착
문청의식 살아나 수필·소설 집필

전기문학 1세대 작가
친일·이념 문제로 전기 쓸 인물 귀해
사자명예훼손죄 때문에 집필 한계

8년 만에 6권 출간
화가 김환기 책 절판돼 마음 아파
조영래 인권변호사 꼭 다루고 싶어

전기작가 이충렬(64)씨 얘기다. 그가 최근 6번째 책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냈다. 『간송 전형필』(2010),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2012),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013), 『아! 김수환 추기경』(2016),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2017)의 맥을 이었다. 미술·문학·종교·학문 등 우리 사회 큰사람들을 줄곧 따라다녔다. 덕분에 한국 전기문학 개척자, 1세대 작가라는 별칭도 얻었다.
 
이씨는 국외자였다. 1976년 가족 이민을 떠났다. 파라과이→아르헨티나→에콰도르를 거쳐 미국,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주 LA를 찍고,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정착했다. 그가 동화작가 권정생 전기 출간에 맞춰 영구 귀국했다. 42년 이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겉으로는 화려한 여정, 하지만 속으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생활인으로, 작가로 홀로 서려는 고투였다.
 
 
동화작가 권정생 책 출간에 맞춰 영구 귀국  
 
6명 전기

6명 전기

다시 찾은 고향, 기분이 묘하겠다.
“떠날 때는 내 의지와 관계 없었다. 아버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가족 여섯이 단돈 3000달러를 들고 떠났다. 이번에 돌아온 것은 자발적이다. 좋은 작품을 계속 써야겠다는 각오뿐이다.”
 
42년 유랑을 마친 것인가.
“김포공항을 떠날 때 최종 목적지가 미국이었다. 고교 졸업 후 직업학교에서 냉동·봉제·용접 기술을 배우며 준비했다. 남미에서 봉제·식당 일을 했고, 관광비자를 얻어 80년 LA로 갔다. 봉제·마켓·부동산업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다시 폭삭 망해 93년 5000달러를 들고 애리조나주로 갔다. 멕시코 국경 작은 도시 노갈레스에서 잡화가게를 했다.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면서 피닉스로 옮겨 왔다.”
 
젊은 시절, 파란만장했다.
“아니다. 이민자라면 다 거치는 경험이다. 이민 초청장이 늦게 오는 바람에 단국대 국문과에 3년 늦게 들어갔다. 결국 졸업은 못했다. 외국에선 생업에 쫓기느라 대학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작가가 됐다. 의외다.
“고등학생 때 틈나는 대로 청계천 헌책방을 찾았다. 문학·철학 서적을 읽었다. 겉멋도 있었겠지만 사르트르·하이데거를 섭렵했다. 문과 체질인 게 분명했다. 초창기 미국 생활이 가장 힘겨웠다. 낮이고 밤이고 왜 그리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지, 자괴감이 컸다. 현지 신문사 사람들, 문인들과 만나며 잊었던 문학 DNA를 발견했다. 수필을, 습작 소설을 쓰고, 신춘문예에도 응모했다.”
 
9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는데.
“애리조나에 자리를 잡으면서 문청의식이 살아났다. 예전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6·25 종전 이후 중립국행을 택한 포로 이야기를 다룬 단편이다. 그간 짬짬이 모은 그림 이야기를 묶은 책도 냈다. ‘애리조나 카우보이’ 이름으로 블로그도 운영했다.”
 
전기 집필로 방향은 튼 이유라면.
“외국에 살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의 실정에 어둡다. 옛날 역사소설밖에 쓸 게 없는데, 그것도 현재성이 떨어졌다. 그때 전기문학에 들어왔다. 사회와 역사에 성취를 남긴 실제 사람들을 복원하는 게 흥미로웠다. 자료를 모으고, 연표를 만들고, 스토리텔링을 얹고 등등. 게다가 한국에선 전기라는 장르 자체가 없다시피 했다.”
 
왜 그럴까. 위인전은 넘치는데.
“첫째, 전기를 쓸 만한 인물이 귀하다. 근대 인물은 친일문제로, 현대 인물은 이념 문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해당 인물의 공과를 다 써야 하는데 유교 전통 때문인지 한국에는 아직도 사자명예훼손죄가 남아 있다. 팩트를 기록해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전기 하면 돈 있는 사람들이 대필작가를 써서 좋은 면만 부각시킨다는 부정적 인식을 낳았다.”
 
 
심장마비 세 번 와 스텐트 6개 끼고 살아
 
미국 애리조나주 노갈레스에 있던 이충렬씨의 집필실. 최순우 선생의 전기가 이곳에서 완성됐다.

미국 애리조나주 노갈레스에 있던 이충렬씨의 집필실. 최순우 선생의 전기가 이곳에서 완성됐다.

외국 사정은 다른가.
“서점에 가면 전기 코너가 따로 있다. 베스트셀러도 쏟아진다. 주인공의 좋고 나쁜 얼굴을 다 드러낸다. 스티브 잡스는 작가 월터 아이작스에게 자신의 전기 집필을 의뢰하면서 자기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의 명단부터 건넸다. 그래야 공인 전기가 나올 수 있다. 이승만·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들의 공인 전기가 없는 우리와 대비된다. 혹시라도 누가 될 만한 대목이 나오면 유족이나 관련 재단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우리 전기문학은 맥이 끊긴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출발조차 없었다.”
 
또 다른 걸림돌이라면.
“화가의 경우 도판 사용료가 비싸다. 한 장당 보통 10만~30만원을 줘야 한다. 사진을 풍부하게 쓰고 싶어도 이를 감당할 만한 출판사가 적다. 프랑스 피카소재단은 공인된 전기작가에게 사진 자료를 무료 제공한다. 번역본도 예외가 아니다.”
 
8년 만에 6권, 작업속도가 빠르다.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자료 정리와 주변 인물 인터뷰가 필수적이다. 간송 전기는 7~8년이 걸렸다. 나머지 책도 2~3년은 기본이다. 간송의 제자가 최순우, 최순우의 친구가 김환기라 다소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다.”
 
 
간송 전형필 전기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김수환 추기경 전기는 대작인데.
“사회를 빛낸 사람도 써보자고 했다. 종교인 김수환보다 사회인 김수환에 무게를 실었다. 약자를 사랑하는 추기경에 집중했다. 스티브 잡스 전기(초판본)가 930쪽인데, 우리나라에도 ‘벽돌전기’를 내보자고 출판사와 의기투합했다. 1100여 쪽, 두 권짜리로 완성했다. (웃음) 그것도 1만여 매 초고를 3500여 매로 줄인 것이다.”
 
책마다 평단의 주목을 끌었다.
“한 권 한 권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썼다. 그간 심장마비가 세 번 왔다. 스텐트를 6개 끼고 산다. 앞으로의 삶은 덤이다. 욕심을 낸다면 10권까지 쓰고 싶다. 평생 병마와 싸우며 ‘이 작품만 쓰고 죽으면 좋겠다’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에 동지애를 느낀다. 앞으로 조영래 인권변호사는 꼭 다루고 싶다. 우리나라 사법부를 바라보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한다.”
 
화가 김환기 책은 절판됐다.
“김환기는 박수근·이중섭과 비견되는 작가다. 그가 미국에서 안타깝게 사망한 과정에 대해 환기재단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도판 사용료 문제도 불거졌다. 법정 합의 끝에 멀쩡한 책을 파쇄해야 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김환기만큼 도전의식이 넘치는 화가도 드물다. 관련 문제가 풀리면 꼭 다시 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굳이 왜 귀국해야 했나.
“지난해부터 미국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전업작가로서 최소한의 삶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자료를 구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한국이 훨씬 쉽다. 작품 폭을 넓힐 수 있다. 언제까지 태평양 횡단 비행기를 타고 다녀야겠나. 소망이 하나 있다면 간송 전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5년 전 계약했는데 진척이 없다. 드라마 ‘몽실언니’로 우리의 역사가 있는 동화를 알린 권정생 작가처럼 간송의 문화부국 정신을 퍼뜨리는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
 
다음 책은 김홍도 … 중인 출신의 고된 삶 짚어볼 것
김홍도 자화상

김홍도 자화상

이번에는 풍속화가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자화상)다. 이충렬 작가가 일곱 번째로 선택한 인물은 다시 화가다. 한국인에 친숙한 천재화가 단원에 방점을 찍었다. “중인 출신인 단원의 고된 삶을, 그것도 예술로 신분차별을 극복하려 했던 단원의 노력을 눈여겨봤다”고 했다.
 
“단원을 학문적으로 다룬 책은 많지만 정작 제대로 된 전기는 거의 없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화인열전』에 일부 나온 정도죠. 지난 3~4년 동안 여러 자료를 살펴보고, 새로운 사실도 몇 개 찾았습니다. 그간 나온 연구서를 제가 과연 뛰어넘을 수 있을지 나름 간을 본 셈이죠.”
 
이씨는 무엇보다 ‘중인’ 단원을 주목했다. “당시 양반들은 단원을 두고 ‘단원군’ ‘김홍도군’이라 불렀습니다. 양반 상놈 구분이 뚜렷했던 시절, 단원이 무시를 많이 당했던 거죠. 그럼에도 그는 그림으로 차별을 넘어서려 했습니다. 물론 한계도 분명했죠. 이를 두루 짚어볼 작정입니다.”
 
이씨가 꼽는 전기문학의 첫째 조건은 감동이다. 또 ‘지금, 여기’를 둘러보는 현재성이다. “요즘 우리 사회 전반에 갑질이 논란입니다. 그 뿌리는 조선시대 양반의식에 있지 않을까요. 지금으로 치면 끊어진 사다리죠. 하지만 현실에 좌절할 순 없습니다. 예컨대 평범한 직장인이라도 자기만의 특장점을 계발해야 해요. 단원에게서 그 작은 계기를 찾아보려 합니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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