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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 나쁜 여자 !

[책 속으로] 김봉석의 B급 서재 
비하인드 도어

비하인드 도어

영화 ‘나쁜 남자’를 좋아했었다. 거리에서 본 여대생이 자신과 너무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양아치가 그녀를 파멸시킨다. 뒤틀리고 왜곡된 사랑의 이야기는 처절했다. 극단적인 정념과 상황으로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나쁜 남자’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악행을, 실제의 배우를 파괴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와 작품은 최대한 분리하는 것이 옳겠지만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나쁜 남자는, 감독 자신이었다.
 
세상에는 나쁜 남자들이 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자. ‘나쁜 남자’라고 말하면서 나와는, 우리와는 다르다고 믿는다. 보통의 남자들 혹은 착한 남자가 있고 전혀 다른 나쁜 남자가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요즘 ‘한남’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비슷하다. 나쁜 남자는 좋은 남자라고 믿는 혹은 눈에 보이는 좋은 남자들 안에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아니 매력적이고 다정하게 보이는 나쁜 남자는 언제나 존재해왔다.
 
영화 등에서 수없이 변주된, 17세기 동화작가 샤를르페로의 『푸른 수염』에도 나쁜 남자는 등장한다. 거대한 성에 사는 귀족이 사실은 아내 연속살해범이었다는 이야기. 강박적이고 폭력적이며 여자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남자의 외관이나 직업은 천차만별이다. 깔끔하고 가정적인 남자의 집착은 더욱 섬뜩하다.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했던 영화 ‘적과의 동침’을 보면서 놀란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가정집 욕실의 수건 모서리까지 다 맞추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된 모습이었다. 나쁘건 말건, 저런 숨 막히는 상황을 견디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로맨스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외모도, 일도 환상적으로 처리하는 남자는 과연 백마 탄 왕자일까. 근래에 읽은 스릴러 소설에서는 그런 남자들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남자라고 말한다. B.A. 패리스의 장편소설 『비하인드 도어』의 주인공 그레이스는 ‘완벽한 남자’를 만난다. 다운 증후군 동생을 돌보기 위해 연애조차 꺼리던 그레이스였다. 가정 폭력을 당한 여성들을 도와주는 변호사 잭은 다운증후군 동생을 전혀 꺼리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다정하고 세심하기까지 한 잭에게 그레이스는 반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자마자 잭은 본색을 드러낸다. 잭의 모든 것은 뒤틀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철저한 위장과 도구였을 뿐이다.
 
예쁜 여자들

예쁜 여자들

카린 슬로터의 장편 『예쁜 여자들』에 나오는 클레어도 ‘완벽한 남자’를 만났다. 영리하면서 자상하고,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인정받는 멋진 남자 폴. 눈앞에서 총을 맞고 죽은 폴을 보면서 클레어는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유품인 컴퓨터에서 이상한 동영상을 발견한다. 여성을 고문하고 죽이는 영상이다. 잘 연출된 동영상인 걸까, 스너프 필름일까. 정말로 죽은 폴은 이런 일에 개입된 것일까? ‘예쁜 여자’인 클레어는 전혀 몰랐던 폴의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서 알게 된다. 폴의 진짜 얼굴과, 자신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착한 여자’가 되었어야 했다는 것을. “만약 남자가 어떤 여자를 거절하면, 그 여자애는 집에 가서 며칠 밤낮을 울어대. 그런데 여자가 남자를 거부하면, 그는 그 여자를 강간해 죽일 수 있거든.”
 
『비하인드 도어』의 그레이스와 『예쁜 여자들』의 클레어는 결국 폭력을 택한다. 그녀들을 소유물로 여기며 억압하는 남자들에게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다. 설득? 호소? 불가능하다. 가정이라는 완벽한 감옥에서 절대권력을 쥔 남자들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물론 폭력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써야 한다. 하지만 교묘하게 사람을 조롱하고 질시하는 여인의 무릎을 박살낸 다음 감옥에 가는 클레어는 말한다. “나쁜 년이 되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은 건지 새삼 깨달았다니까.” 나쁜 남자는 잊기로 했다. 그리고 나쁜 여자를 사랑하기로 했다. 팜 파탈, 그 얼마나 매력적인 단어인가.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naver.com
대중문화평론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등. 영화·만화 등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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