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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고마워요, 다시 사랑할 기회를 줘서

정여울 작가

정여울 작가

요즘 나는 ‘사랑을 넘어선 사랑’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 커플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 한 사람을 향한 로맨틱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좀 더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갈구가 커져간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신경 쓰고, 잘해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때로는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 살아있는 생물 자체, 나와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 인생과 세계자체를 향한 더 크고 깊은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사랑을 넘어선 사랑에는 어떤 집착도 없다. 다만 한 존재의 다른 존재를 향한 무한한 이해와 존중만으로 충분한, 그런 맑고 투명한 사랑이다.
 
한 출판사 사장님은 아들 둘이 모두 장성해 집을 떠난 뒤, 이제 10개월 된 어린 강아지 몰티즈 ‘보리’를 키우기 시작하시며 예전에는 결코 보여준 적이 없던 ‘아빠 미소’를 만면에 가득 머금고 계신다. ‘보리’를 입양한 뒤부터, 아이들이 모두 떠나간 쓸쓸한 집안이 더 이상 외롭지 않아졌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가 바로 자기라는 듯이 보리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자신에게 안길 때, 그때 비로소 ‘자신이 아이들에게 주지 못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아이들한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했어. 그동안 엄마·아빠가 싸우는 모습 너무 많이 보여줘서. 보리처럼, 이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었어야 하는데. 너무 많은 걸 바라며 살았던 것이 후회되더라고. 보리처럼, 그렇게 아무 꾸밈없이, 조건 없이 사랑했어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이란 그런 거구나. 가족이기에, 인간이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내게 와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물론 지나간 모든 시간의 과오마저도 끌어안게 되는, 더 큰 사랑이 바로 그것이었다.
 
최근에 나는 생애 최초로 ‘작업실 집들이’를 했다. 원고를 집중적으로 쓰기 위해 마련한 작업실이지만, 요즘 점점 이 작업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한 무료 게스트하우스’로 변해가고 있다. 내 책을 만들어준 편집자는 ‘여행 온 기분이다. 집에 가기 싫다’며 아예 내 작업실에서 1박 2일 동안 머물다 갔다.  
 
삶의 향기 5/26

삶의 향기 5/26

그녀는 밤새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아픈 상처를 털어놓은 뒤 지쳐 쓰러져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너는 강인한 전사야. 절대 물러서지 마. 너는 네가 꿈꾸는 삶을 지킬 권리가 있어. 아무도 널 함부로 상처 줄 수 없어.”  
 
그녀가 잠들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말이 나 자신을 향한 위로이기도 함을, 그리고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위로의 말임을.
 
집들이에서 10년 만에 만난 한 선배는 “넌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 글은 도대체 언제 쓰냐”고 걱정을 해주셨다. 그러더니 정말 뜬금없이 환한 미소로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셨다. 그 햇살 같은 미소가 바로 ‘삶에 대한 사랑, 존재에 대한 사랑’임을 나는 단번에 이해했다. 너무 오랫동안, 그리운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고 마치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 듯 잔뜩 웅그린 채 살아왔던 내 그늘진 외로움을, 선배는 그 따스한 미소로 한꺼번에 치유해주었다.  
 
오늘도 참 힘든 하루를 보냈을 당신에게, 그 미소의 따스한 온기를 이 글을 통해 선물드리고 싶다. 한 사람에 대한 배타적 사랑, 내 가족, 내 조직을 향한 폐쇄적 사랑을 넘어, 인간을 향한, 존재를 향한, 세상 전체를 향한 더 깊고 커다란 사랑이 내 안에서 무르익어가기를. 365일 중 하루만이라도, ‘무조건 감사하는 날’로 기념하고 싶다. 살아있음에, 아직 서로 사랑할 수 있음에, 이 험난한 세상에서도 아직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았음에 감사하는, 그런 눈부신 기념일이 바로 오늘이기를.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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