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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서머 나이트의 진추하, 암도 이겨낸 그를 만나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말이 있기도 전, 홍콩 여가수 하나가 한국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영화 <사랑의 스잔나>에서 '원 서머 나이트'라는 노래를 부른 진추하(중국어명 천추샤, Chelsia Chan). 대표작 ‘One Summer Night’ 외에도 졸업식 즈음에 어김없이 깔리는 ‘Graduation Tears’이 모두 그가 부른 노래다.
 
1974년 가수로 데뷔한 진추하는 1976년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한국·홍콩 합작 청춘 영화 ‘사랑의 스잔나’에서 심장판막증으로 사망하는 비련의 주인공 역을 맡았다. 이 영화 속 첫 씬이 한국에서 촬영돼 한국인들에게는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 주제곡이 인기를 얻으면서 가수 겸 배우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그는 1981년 결혼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화교로서 중국의 백화점, 부동산 등을 거느린 재벌 기업 팍슨(Parkson·百盛)회장 윌리엄 쳉(鐘延森)과 결혼해 세 딸을 두었다.  

 
진추하의 남편인 윌리엄 쳉(鐘延森) [출처: 바이두 백과]

진추하의 남편인 윌리엄 쳉(鐘延森) [출처: 바이두 백과]

 
팍슨은 동남아를 포함, 100개 이상의 점포를 갖고 있는 굴지의 그룹이다. 진추하는 이 팍슨 그룹의 산하의 라이언 팍슨 파운데이션 기금회 주석이다. 자선활동을 주로 하는 기금이다.  
 
한국인들에게 '추억의 연인'으로 기억되는 진추하는 1957년생으로 올해 벌써 60세를 넘긴 나이가 됐다. 2018년 5월 16일 한양대 공자아카데미 주관으로 열린 특별 강연에서 진추하는 자신과 음악, 인생 2막을 열어준 서예 그리고 자선활동까지 그간의 삶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등장한 진추하는 짧은 은발을 하고 등장했다. 동그란 눈에 귀여운 표정은 젊은 시절 그대로였다.  
 
젊은 시절의 진추하. 사실 진추하는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연예계에 몸담은 시절은 약 7년에 불과하다. [출처: 차이나랩]

젊은 시절의 진추하. 사실 진추하는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연예계에 몸담은 시절은 약 7년에 불과하다. [출처: 차이나랩]

 
진추하는 처음부터 큰 성공을 거둔 연예인이었다. <사랑의 스잔나> 영화 감독은 당시 18세였던 진추하에게 6개의 시를 준다. "5개는 노래를 네가 만들어. 1개는 중국 시인 쉬즈모(서지마)의 '우연'에 곡을 붙여줬으면 해"  
 
진추하는 당시를 회상하며 "좋은 시를 망칠까 두려웠지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솔직히 고백하면 긴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좋은 것은 사실 복잡하지 않다. 단순한 것이 때로는 더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출처: 차이나랩]

[출처: 차이나랩]

<사랑의 스잔나>는 진추하에게 첫 작품이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중화권 영화계 최고 영예 중 하나인 금마장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그러나 7년만에 진추하는 연예계를 떠난다.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금마장 받은 걸로 부족했나요? 왜 그렇게 빨리 그만 둔거예요?"  
 
그는 "제가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을 거뒀던 것 같다"며 웃었다. 금마상을 너무 일찍 받아서 여기저기서 영화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 자기 능력이 어떠한지에 대해 고민을 하거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감독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연기하고, 고만고만한 러브 스토리로 영화를 계속 찍으면 그만이었다. 남자 배우에 반한 듯한 표정을 짓고 노래를 좀 부르다보면 그냥 끝나는 영화들. 진추하는 만족할 수 없었다. 18살~24살 연예계에 몸담으며 소녀 진추하가 느낀 자기 자신은 성장이 없는 사람이었다. "제 자신에게 실망했어요. 돌파구를 못 만든 거죠"  
 
백발이 된 진추하. 여전히 귀염성 있는 모습이 옛적 전성기를 떠올리게 한다. 강연장에는 3명의 딸이 모두 같이 왔다. 그는 "큰 딸이 발표 자료를 만들어주었다"며 자랑도 했다. [출처: 차이나랩]

백발이 된 진추하. 여전히 귀염성 있는 모습이 옛적 전성기를 떠올리게 한다. 강연장에는 3명의 딸이 모두 같이 왔다. 그는 "큰 딸이 발표 자료를 만들어주었다"며 자랑도 했다. [출처: 차이나랩]

 
그는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음악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결혼 후 세 딸을 키우며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던 그에게 2002년은 중요한 해가 됐다. 첫 영화를 찍은 뒤 28년간 오지 않던 한국에, 2002년 9월 오게 된 것이다. 한국서 열린 세계 화상(화교 상인)대회 덕이었다.  
 
한복을 입은 이가 진추하. 진추하의 한국 팬클럽이 마련해준 한복을 입었다. 28년만의 방한으로 그는 다시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출처: 진추하가 직접 준비한 사진 자료, 차이나랩 재인용]

한복을 입은 이가 진추하. 진추하의 한국 팬클럽이 마련해준 한복을 입었다. 28년만의 방한으로 그는 다시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출처: 진추하가 직접 준비한 사진 자료, 차이나랩 재인용]

 
"호텔에서 가방을 들어준 분의 휴대폰 벨소리가 '원 서머 나이트'였어요. 그 노래는 내가 지은 거예요 라고 하니 그 청년이 믿기지 않는다며 놀라더군요. 28년 지난 뒤에도 한국인 팬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그는 자신을 격려해주고 잊지 않은 팬들을 위해 다시 앨범을 냈다. 당시 쇼케이스에서 타이거 JK, 손호영 등과 같이 무대에 섰다.  
 
2002년은 진추하에게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서예를 배운 해였던 것이다.  
5명이 있어야 반 하나 만들어준다고 해서 친구 손 잡고 시작했어요. 근데 예술가는 원래 선생님이 시킨 대로 하질 않잖아요. 저도 그냥 얌전히 시킨대로 하는 건 싫어하고요. 붓 주세요 해서 시작했는데 첫 수업은 1시간반 동안 한 일(一)만 쓰라는 거예요. 진이 빠져서 두 번째 수업은 안 그러겠지 싶었는데 또 작대기를 그으라지 뭐예요. 제가 "저번에 했잖아요!" 하니까 선생님이 "이번에는 세로로 그으세요" 하더라고요. 중국에 30%는 타고난 재주이지만 70%는 노력이란 말이 있어요. 기본기도 안 닦고 뭘 하겠나 싶어서 꾹 참고 했죠.  
연기에 대해 스스로에게 점수를 주자면 80점이었다. 80점에서 더 이상 발전이 없다고 생각한 진추하는 자신의 퇴보를 목격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서예는 0에서 시작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 천천히라도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즉석에서 팬들과 함께 완성한 서예 작품을 들어보이는 진추하. ‘사랑의 스잔나’의 또 다른 주제곡 ‘우연(偶然)’은 중국의 유명 시인 쉬즈모(徐志摩·1896~1931)의 시를 작곡해 노래한 것이다. 그는 서예를 하게 되면서 중국어와 중국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출처: 차이나랩]

즉석에서 팬들과 함께 완성한 서예 작품을 들어보이는 진추하. ‘사랑의 스잔나’의 또 다른 주제곡 ‘우연(偶然)’은 중국의 유명 시인 쉬즈모(徐志摩·1896~1931)의 시를 작곡해 노래한 것이다. 그는 서예를 하게 되면서 중국어와 중국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출처: 차이나랩]

 
진추하가 가진 두 가지, 음악과 서예는 모두 사람들을 돕는데 쓰였다.
1981년 그가 만든 한 점의 촛불 불빛은 10대 중국 금곡상을 받았다. [출처: 차이나랩]

1981년 그가 만든 한 점의 촛불 불빛은 10대 중국 금곡상을 받았다. [출처: 차이나랩]

진추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노래인 <한 점의 촛불 불빛(一点烛光)>을 지었다. 촛불은 빛, 좋은 날들(好日子)그리고 기대와 희망을 뜻했다. 1981년 이 노래는 상을 받기도 했는데 진추하는 이 노래가 들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좋은 일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쓴 곡인데 문제는 재난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모금 운동을 하면서 이 노래를 트시거든요. 이 노래가 많이 들린다는 건 곧 도와야할 사람들이 많다는 뜻도 되어서 슬퍼요"
 
그는 비행기가 갈 수 없는 곳에 사는 백내장에 걸린 아이들에게 백내장 수술을 시켜주는 생명의 특급기차를 위해 후원을 했다. 신장, 윈난, 티벳까지도 직접 가서 의료진과 함께 아이들을 돌봤다. 사람의 눈과 닮은 용안(룽옌)이라는 과일을 보고 만든 노래가 '고향의 룽옌 나무(家乡的龙眼树)'이다. 9개월간 온전히 아이들을 수술해야 하는 의료진들을 위해 만든 노래다. 장학우(장쉐요우), 유덕화(류더화), 알랜 탐, 성룡(청룽)이 진추하와 함께 앨범에 참여했다.  
 
고향의 룽옌 나무 앨범. 청룽, 류더화 등 기라성 같은 홍콩 연예인들이 진추하와 뜻을 같이 했다. [출처: 차이나랩]

고향의 룽옌 나무 앨범. 청룽, 류더화 등 기라성 같은 홍콩 연예인들이 진추하와 뜻을 같이 했다. [출처: 차이나랩]

이 CD는 순식간에 1000만 위안(17억원) 어치가 팔려 아이들에게 수술비를 보탤 수 있게 됐다.  
 
백내장 수술을 해주는 의료진을 태운 생명의 익스프레스. 이 봉사활동에 진추하도 힘을 보탰다. "나는 원래 청결을 중요시하는데 신장에서 아픈 사람들을 보니 그런 생각조차 할 시간이 없었다. 신장을 갔다 온 이후로 제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앞으로 능력과 의지를 봉사하는 데에 쓰기로 했다." [출처: 차이나랩]

백내장 수술을 해주는 의료진을 태운 생명의 익스프레스. 이 봉사활동에 진추하도 힘을 보탰다. "나는 원래 청결을 중요시하는데 신장에서 아픈 사람들을 보니 그런 생각조차 할 시간이 없었다. 신장을 갔다 온 이후로 제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앞으로 능력과 의지를 봉사하는 데에 쓰기로 했다." [출처: 차이나랩]

 
2007년 7월에는 티벳을 찾았다. 당시 오십 줄을 바라보던 진추하는 고산증 등을 걱정할 정도로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래도 티벳행을 막을 순 없었다.  
"변호사 님께 여쭤보고 혹시 몰라서 유서를 써놓고 티벳에 갔을 정도였어요. 티벳은 물이 부족해서 평생 3번 씻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사실 저도 그런 환경에 익숙지 않았는데 저도 모르게 80세 티벳 할머니와 서로 얼싸안고 티벳 민가를 배우고, 봉사활동을 하면서(한국어로 봉사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제가 외려 얻는 게 더 많다고 느꼈어요"  
 
제주도와도 인연...
세월호 아이들 추모에도 나섰던 진추하
진추하는 한국과의 인연이 유독 깊다. 제주도 수출 유관기관장과 진추하의 남편이 몸담은 팍슨 그룹은 제주산 상품의 중국 수출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2015년 체결하기도 했다. 제주산 생수·가공식품 등이 베이징·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 백화점에서 판매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비즈니스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제주도 주상절리를 직접 화폭에 담았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한시를 짓기도 했다.  
 
제주도 주상절리를 진추하가 그린 것. [출처: 차이나랩]

제주도 주상절리를 진추하가 그린 것. [출처: 차이나랩]

자신의 첫 작품을 탄생시켜준 한국과의 인연을 놓지 않은 그는 중앙선데이에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칼럼을 썼다. 그러던 중 2016년 유방암 2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칼럼은 이어졌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한시를 지은 진추하 [출처: 차이나랩]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한시를 지은 진추하 [출처: 차이나랩]

투병중에도 모교를 위해 90주년 교가, 자녀들의 모교 100주년 교가 등을 작곡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동문들에게는 발병 사실도 함구했다. "당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80명이나 있었다. 제 건강문제 때문에 일을 멈출 수 없어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일이 다 끝나고 나서 사실을 알렸다."
 
[출처: 차이나랩]

[출처: 차이나랩]

진추하는 병마조차 자신의 봉사활동으로 삼았다. 수술을 받은 뒤, 암에 걸린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강연에 나선 것이다.    

 
병원에서도 투병하면서 붓을 놓지 않았다. [출처: 차이나랩]

병원에서도 투병하면서 붓을 놓지 않았다. [출처: 차이나랩]

 
수술이 끝나고 그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의사 선생님, 우리 같이 셀피찍자" 였다고 한다. 강연장에서 그는 "저 때보다는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죠?"라면서 멋적게 웃었다. 사진 속에서 그는 색색의 두건을 쓰고 있다. 그리고 2017년, 암을 이겨낸 사연을 강연하기로 결심한 그 때, 그는 가발도 두건도 벗어던지기로 했다. 병은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짧은 머리를 드러내기로 한 것이다.  
 
가운데 사진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이가 진추하다. 큰 수술을 이겨내고 지금은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강연을 다니고 있다. [출처: 차이나랩]

가운데 사진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이가 진추하다. 큰 수술을 이겨내고 지금은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강연을 다니고 있다. [출처: 차이나랩]

 
그는 "음악과 서예를 통해 사람들에게 예술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동시에 암을 극복한 제 사연을 통해서 환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추하의 둘째 딸이 데려온 길 잃은 고양이. "작품을 쓸 때 말썽을 부리다보니 10분 안에 작품을 끝내야 한다"며 웃었다. 고양이라면 질색을 했던 진추하에게 지금 고양이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출처: 차이나랩]

진추하의 둘째 딸이 데려온 길 잃은 고양이. "작품을 쓸 때 말썽을 부리다보니 10분 안에 작품을 끝내야 한다"며 웃었다. 고양이라면 질색을 했던 진추하에게 지금 고양이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출처: 차이나랩]

 
강연 중간에 그에게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돌아온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각유소호(各有所好), 모두에겐 저마다 좋아하는 게 있고, 강점도 있다라는 말이예요. 저희 집에서는 각자 좋아하는 걸 자유로이 선택하라고 가르쳐요.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예요. 치약을 중간에서 짤지 끝에서 짤지, 간섭하지 않아요. 남편은 짜게 먹고 저는 싱겁게 먹는다면, 그런 선택은 간섭하지 말자는 주의예요. 딸들에게도 이야기했어요. '너희에게 관심과 사랑은 갖고 있지만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않을 거야. 너희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 선택이 무엇이건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고 기쁘다'고요"  
 
진추하가 암을 극복하고 처음으로 일어서서 쓴 서예 작품. [출처: 차이나랩]

진추하가 암을 극복하고 처음으로 일어서서 쓴 서예 작품. [출처: 차이나랩]

 
그에게 향후 활동계획을 물었다. 제주도에서 열었던 서예전이 그립단다. 진추하는 서예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해왔다. 그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한국, 대만, 베이징 등에서 순회 전시회를 할 계획이었는데 건강을 이유로 대만에서 중단됐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면서 "서울에서도 전시회를 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랑 애(愛)를 쓰고 있는 진추하 [출처: 차이나랩]

사랑 애(愛)를 쓰고 있는 진추하 [출처: 차이나랩]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극복하고 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진추하가 강연을 통해 한국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차이나랩 서유진, 인턴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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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