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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산 위기 몰린 북핵 협상 … 그래도 막판 ‘빅딜’ 포기 말아야

북한이 어제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버튼을 눌렀다. 지난 10년간 여섯 차례 핵실험을 감행하는 동안 전 세계의 우려스러운 시선을 집중시켰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만탑산 깊은 계곡의 지하 갱도는 무너져내렸고, 핵실험장은 흙더미 속에 파묻혀버렸다. 4개의 지하 갱도 중 이미 핵실험에 사용하고 난 뒤 오염으로 폐쇄된 1, 2번 갱도 외에 아직 사용 가능한 3, 4번 갱도까지 발파음과 함께 무너져 갔다. 한국·미국·영국·중국·러시아에서 온 기자들이 현장에서 이 장면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버튼을 누른 것은 말뿐이던 비핵화 의지를 가시화한 첫 조치라는 점에서 평가할만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소식이 전해진 지 몇 시간 만에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지금 개최하는 건 부적절하다”면서 회담 취소를 전격 선언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슬프게도 당신의 가장 최근 성명에서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토대로 나는 이번에 오래 계획된 회담을 갖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신의 가장 최근 성명’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어제 개인 담화를 발표하면서 ‘회담 재고려’란 표현까지 썼다. 최 부상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김정은이 합의하지 않는다면 리비아 모델이 끝장난 것처럼 끝나게 될 것”이라는 언론 인터뷰 발언을 성토한 뒤 “조·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리비아 모델을 강조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하며 비슷한 말을 한 데 이은 2탄 격이었다.
 
근래 워싱턴과 평양의 강경파들이 판을 깨려는 듯한 목소리까지 여과 없이 쏟아내면서 상황을 우려스럽게 만들어온 게 사실이다. 강경 발언은 속성상 꼬리를 물게 마련이고, 자칫 관리에 실패하면 상황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최 부상은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을 면담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직격하지 않고 나름의 수위조절을 했다. 세기의 협상을 앞두고 어느 정도 기싸움이 있을 순 있지만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겐 통하지 않았고, 결국은 비핵화 국면에서 가장 큰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당초 북·미는 이번 주말 싱가포르에서 실무접촉을 하기로 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 약속을 이행했음에도 회담 취소 선언이 나왔으니 북·미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진행해 온 우리 정부로서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선언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막판 대타협이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정부는 막판 중재에 나서야 하며, 북한도 더 이상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식으로 자극적인 언동을 쏟아내서는 곤란하다. 여기서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기에 우리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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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