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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사람 향기도 은은 … 봄날의 정원을 걸어볼까요

국립수목원은 지난해 8월 『가보고 싶은 정원 100』이란 소책자를 냈다. 전국의 개인 정원 중 정원사가 있고, 누구나 방문 가능하며, ‘영감을 주는 곳’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문화재나 수목원·식물원은 제외했다. 정원의 면면은 다채롭다. 기업이 운영하는 수목원급 정원이 있는가 하면, 병원 마당, 신문사 옥상도 있다. 100곳 중에서 다시 5곳을 추렸다. 규모가 산책할 만한 정도이고, 카페 같은 편의시설을 갖춘 곳을 기준으로 했다. 책자를 받고서 아홉 달을 꾹꾹 참았다.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달은 5월”이란 설명을 듣어서였다. 이윽고 5월이 왔고, 정원을 찾아다녔다. 기다리길 잘했다. 한 폭의 유화 같은 풍경도 근사했지만 정원을 꼭 닮은 사람 마음이 느껴졌다.
 
 
35년 꽃꽂이 강사의 내공 - 효산리 정원
 
효산리 정원은 전남 화순 고인돌유적지 부근에 숨어 있다. 꽃꽂이 강사로 일하던 임경혜씨가 은퇴한 남편과 함께 가꾸는 공간이다. 꽃양귀비와 공조팝나무꽃 만개한 정원에서 임씨가 꽃을 보고 있다. [최승표 기자]

효산리 정원은 전남 화순 고인돌유적지 부근에 숨어 있다. 꽃꽂이 강사로 일하던 임경혜씨가 은퇴한 남편과 함께 가꾸는 공간이다. 꽃양귀비와 공조팝나무꽃 만개한 정원에서 임씨가 꽃을 보고 있다. [최승표 기자]

“집 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 국어사전은 정원을 이렇게 정의한다. 비교하자면 정원은 식물원보다 개인적인 공간이다. 주인 취향대로 꽃과 풀, 나무를 배치하고 풍경을 연출하는 까닭에 예술작품 같다. 그래서 정원에서는 가꾼 이의 정성과 노고가 엿보이고 사람 향기가 느껴진다. 전남 화순의 ‘효산리 정원’이 그렇다.
 
효산리 정원을 찾아간 이달 15일. 고인돌 유적지로 향하는 2차선 농로를 달리다 보니 정원 간판이 눈에 띄었다. 샤스타 데이지가 눈부신 돌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담쟁이덩굴 뒤덮인 농가가 나왔다. 진입로를 걷는 것만으로 마음까지 환해진 기분이었다.
 
“어서오십시오. 차부터 한 잔 하시지요.” 앞치마 두른 임경혜(64)씨가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줬다. 담쟁이 덮인 건물은 헛간을 개조한 카페였다. 허브티를 주문했다. 임씨가 카페 앞마당에서 민트·로즈마리 잎을 따온 뒤 모래시계를 보며 차를 우렸다. 다른 손님들은 커피를 주문했다. 육중한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니라 모카포트로 한 잔 한 잔 커피를 끓였다. “아날로그 방식이어서 조금 오래 걸립니다.” 손님들은 커피 기다리는 동안 정원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효산리정원에서 마신 허브티. 카페 앞 정원에서 갓 딴 민트 잎으로 우려냈다.

효산리정원에서 마신 허브티. 카페 앞 정원에서 갓 딴 민트 잎으로 우려냈다.

 
임경혜씨가 은퇴한 남편과 함께 화순으로 온 건 2009년이다. 광주에서 꽃꽂이 강사로 35년을 일하며 개인 정원을 꿈꿨었다. 이윽고 효산리에 숨어 있던 대나무 우거진 한옥집을 샀다. 1만㎡에 가까운 땅을 갈아 엎어 영국식 정원을 차근차근 만들었다. “아침마다 카페 열기 전까지 정원을 관리하는데 꽃꽂이와는 차원이 다른 중노동이에요. 공부도 쉼없이 해야 하고요. 그래도 정원을 가꾼 게 평생 가장 잘한 일 같아요.”
 
임씨와 함께 정원을 둘러봤다. 고개를 치켜 든 꽃양귀비와 작약이 만개했고, 정원 곳곳에 축축 가지를 늘어뜨린 공조팝나무가 운치를 더했다. 임씨는 “그동안 너무 꽃에만 집중했다”며 “지금은 딸이 정원을 가꿀 30년 뒤를 내다보고 나무를 심고 있다”고 말했다. 월요일 휴무.
 
 
식물의 이로움을 알리다 - 유니스의 정원
 
유니스의 정원 한편에는 이풀실내정원이 있다. 실내에서 식물 가꾸는 방법을 다양하게 알려준다. 내부가 완만한 경사로로 돼있어 유모차나 휠체어도 다닐 수 있다. [사진 각 정원]

유니스의 정원 한편에는 이풀실내정원이 있다. 실내에서 식물 가꾸는 방법을 다양하게 알려준다. 내부가 완만한 경사로로 돼있어 유모차나 휠체어도 다닐 수 있다. [사진 각 정원]

경기도 안산 ‘유니스의 정원’은 긴 줄 서야 하는 인기 맛집이자 인스타그램 명소다. 그러나 인증사진용으로만 소비하기엔 아까운 공간이다. 1만㎡에 달하는 정원 곳곳에 찬찬히 둘러보고 음미할 공간이 많아서다.
 
유니스의 정원을 만든 주인공은 젊다. 지승현(44) 대표는 서른 살 무렵 ‘남 부러워하는 직장’을 박차고 나와 정원사로 새출발했다. 2003년 아버지가 1973년에 사들여 묘목만 가꾸던 밭을 유럽식 정원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고 4년을 공들였다. 2007년 레스토랑과 함께 정원도 문을 열었다.
 
지금 유니스의 정원에는 튤립과 수국이 화려하게 만개했고, 붓꽃과 꽃창포가 은근한 멋을 뽐내고 있다. 정원 어느 곳을 봐도 눈부시다. 그러나 지 대표는 나무를 더 자랑한다. “아버지가 40년 전 심은 실화백나무 100그루가 어느새 20m까지 자랐어요.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 나무여서 주변을 걸으면 온몸이 정화되는 기분이에요.”
 
정원 한편에는 ‘이풀실내정원’도 있다. 빌딩 숲에 사는 도시인을 위해 벤자민·아이비 등 실내 식물로 꾸민 공간이다. 3층 높이 건물인데 유모차나 휠체어도 부담 없도록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었다.
 
 
400년 상수리나무 정원 - 뿌리 깊은 나무
 
뿌리 깊은 나무는 400년 묵은 상수리나무도 근사하지만 야생화도 볼 만하다. 뒤쪽에 보이는 유럽풍 건물은 레스토랑이다. [사진 국립수목원]

뿌리 깊은 나무는 400년 묵은 상수리나무도 근사하지만 야생화도 볼 만하다. 뒤쪽에 보이는 유럽풍 건물은 레스토랑이다. [사진 국립수목원]

대청호가 용처럼 산자락을 휘감는 충북 옥천 안내면에는 아주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산다. 수령 400년의 상수리나무다. 이 나무를 품은 정원이 ‘뿌리 깊은 나무’다.
 
97년 백운배(65)·김수옥(65) 부부는 원래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땅을 샀다. 그러나 혼자만 이 풍경을 누리기 아까웠다. 그래서 레스토랑 ‘뿌리 깊은 나무’와 카페 ‘올드 트리’를 열고 다른 사람도 정원을 즐기도록 했다.
 
앵두나무 도열한 진입로를 지나면 스위스풍 카페와 레스토랑이 반겨준다. 건물 주변으로 온갖 화려한 꽃이 절정의 색을 자랑하고 있다. 작약꽃·금낭화·으아리꽃·인동초꽃·매발톱꽃에 백씨가 지난해 심은 장미꽃이 더해져 형형색색의 풍경화를 완성한다.
 
레스토랑은 스테이크·돈까스 등을 팔고, 카페에서는 매일 아침 직접 구운 빵과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낸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에는 일찌감치 빵이 동나기도 한다.
 
식사를 하든 커피를 마시든 그냥 나가면 안된다. 반드시 호숫가 산책로로 향해야 한다. 푸릇한 풀내음 가득한 정원을 걷고, 우람한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서 심호흡을 하면 맑은 기운이 몸 안으로 흘러드는 기분이다.
 
 
늘 5월 같은 - 시크릿가든
 
시크릿가든은 야경도 근사하다. 화려한 꽃밭 뒤편에 하얀 수피 입은 은사시나무가 보인다. [사진 각 정원]

시크릿가든은 야경도 근사하다. 화려한 꽃밭 뒤편에 하얀 수피 입은 은사시나무가 보인다. [사진 각 정원]

경북 칠곡 팔공산 서쪽 발치에 비밀 정원이 숨어 있다. 이름도 ‘시크릿가든’이다. 하영섭(63)씨가 계곡물 흐르고 소나무 우거진 숲을 어렵게 찾아내 98년부터 약 1만6000㎡ 면적의 정원을 가꿨다. 2015년 카페를 개업하며 일반에 공개했다.
 
정원에 들어서면 계곡물 졸졸 흐르는 소리가 정겹게 반겨준다. 돌다리 건너면 아담한 돌담 뒤로 카페가 보인다. 카페에서는 커피도 팔지만 꽃차가 메뉴판 앞쪽을 차지하고 있다. 하씨가 맨드라미·생강꽃·목련꽃 등을 직접 따고 말려서 판다. 하나같이 향긋하다.
 
정원 한편에는 아담한 통나무집이 있다. 하씨의 식물연구실이다. “5월에는 전국 어디를 가나 꽃이 지천이고 화려하죠. 시크릿가든은 여름이나 가을에도 5월처럼 화사한 풍경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지난 20년은 그걸 공부하고 실험하고 실패한 과정이었죠.”
 
정원 전체에 소나무가 울울하지만 눈에 담기는 나무는 따로 있다. 쭉쭉 뻗은 왕대나무와 하얗게 빛나는 은사시나무다. 카페 앞에는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여백의 미를 살려둔 거란다. 차값(꽃차 9000원, 아메리카노 6000원)이 비싼 편이지만 입장료가 없다.
 
 
대나무 기둥에 150종 장미 - 죽화경
 
죽화경은 얕은 오르막에 터 잡은 정원이다. 지금은 만개한 150종 장미로 눈부시다. [사진 죽화경]

죽화경은 얕은 오르막에 터 잡은 정원이다. 지금은 만개한 150종 장미로 눈부시다. [사진 죽화경]

전남 담양은 정원의 고장이다. 인위를 억제한 한국식 정원 원림(園林)의 대명사 ‘소쇄원’이 있고, 대나무 테마 정원 ‘죽녹원’도 있다. 지난해 전남 제2호 민간정원으로 선정된 ‘죽화경’이 아성을 잇고 있다.
 
죽화경 역시 한 사람의 땀으로 일군 정원이다. 증권사에서 일하던 유영길(53) 대표는 15년 전부터 돈을 버는 족족 담양 봉산면의 버려진 밭을 사들였다. 어느새 1만2600㎡. 그는 버드나무 한 그루 빼고는 땅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그리고 예술작품을 만들듯 정원을 꾸몄다. 대나무 기둥 365개와 장미꽃이 어우러지게 한 것도 유 대표의 아이디어다. “대나무의 고장에 어울리는 정원을 꾸미고 싶었어요. 어느 방향으로 눈을 돌리든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꾸미는 것도 중요했고요.”
 
죽화경은 지금 장미 천국이다. 150종 장미가 정원 곳곳을 물들이는 7월 초까지 장미축제가 이어진다. 완만한 오솔길 따라 걷다 보면 데이지와 꽃창포가 옆구리를 간질인다. 팝콘 같은 꽃잎이 깔린 불두화 터널을 걸으면 비밀의 화원에 들어선 기분이다. 월요일 휴무, 입장료 어른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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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담양=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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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