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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작가 이미륵 묘지기 26년

송준근 회장은 ’한국사회가 이미륵 기념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최정동 기자]

송준근 회장은 ’한국사회가 이미륵 기념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최정동 기자]

“1년에 1억원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합니다. 독일인 사이에서도 존경과 신망을 한몸에 받으셨고 지금도 그분을 그리워하는 독일인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됩니다. 그런 분을 정작 재독 한인들이나 고국 사람들은 잊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파독광부출신 기념회장 송준근씨
평생 모은 재산으로 기념관 차려
운영비 후원자 찾으러 고국 방문

노신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이게 정말 내 인생의 마지막 사업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땐 간절함이 묻어났다. 피 한방울 섞이기는 커녕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그분’의 묘소를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수십 년간 돌봐온 그는 이번엔 아예 자신의 가게 자리를 내놓았다. 기념관을 마련한 거다. 그러나 차마 운영비까지는 어찌 할 도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독일 뮌헨에 거주하고 있는 송준근(77)씨 얘기다. 송씨에게 ‘그분’은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이다. 송씨는 현재 이미륵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미륵기념관을 알리고 도움도 얻고자 이달 초 한국을 찾았다.
 
송씨는 70년 광부로 독일에 간 뒤 역시 간호사로 온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82년 뮌헨으로 이주해 식료품점을 운영했다. 그러다 92년 우연한 기회에 이미륵을 알게 됐다. “그토록 훌륭한 분이 독일 땅에서 돌보는 이 없이 쓸쓸히 묻혀계시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다른 동포 몇몇과 3월이면 선생님의 묘지를 찾아 제사를 올렸어요. 처음엔 일곱 명이 시작했는데 그 뒤론 많이 늘어났어요.” 송씨는 “그러다 보니 ‘이미륵 묘지기’란 별명도 생겼죠”라며 “독일에서 이 선생 만큼 업적을 남긴 한국인은 없어요. 동포들과 조국이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가 운영하던 가게 자리를 기념관으로 내놓게 됐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념관 운영은 간단치 않았다.  문을 여닫거나 전시물을 관리하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했다. 운영비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송씨는 그래서 한국 사회가 나서주길 원하고 있다. 그는 “돈이 필요하지만 솔직히 돈 문제라기 보다는 정신의 문제예요. 독일에서 나고 자란 동포 2·3세에게 우리 문화를 체험시킬 필요가 있거든요”라며 “독일의 한국 대사관이나 한국 문화원 등에서 관심을 갖긴 하지만 운영비를 충당할 정도는 안돼요.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 단체 등이 직접 나서 이미륵 기념관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미륵(1899~1950)
본명 이의경.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경성의학전문을 다니던 중 3·1운동에 가담, 이후 상하이로 망명했다. 1920년 독일에 정착했고 46년 전후 독일문단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압록강은 흐른다』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여러 나라에서 영역됐고, 독일 중·고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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