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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내셔널]세한도 탄생한 제주 유배지에 지어진 추사관 가보니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한도를 모티브로 지어진 제주 추사관. 최충일 기자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한도를 모티브로 지어진 제주 추사관.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사가 그린 세한도 영인본을 감상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사가 그린 세한도 영인본을 감상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건물 한채에 소나무와 잣나무 몇 그루. 기념관 외관을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歲寒圖)’같이 재현해 낸 모습이 눈길을 끈다. 조선의 대학자 추사(秋史) 김정희(이하 추사)가 귀양살이를 한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유배지 터 인근에 지어진 제주추사관이다.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한도를 모티브로 지어진 제주 추사관. 최충일 기자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한도를 모티브로 지어진 제주 추사관. 최충일 기자

지난 2010년 5월 추사 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1192㎡ 규모로 건립됐다. 추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한도가 제주 유배 중일 때 그려진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지어졌다. 개관 8주년을 맞은 이런 제주추사관이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한 교양예능 방송에서 소개된 것이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해 12월 방송 후 찾는 인원이 꾸준히 늘어 평일 500명, 주말 700~800 명에 달하는 많은 인원이 찾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 200~300여 명이 찾았다. 제주추사관을 찾은 임종영(39·서울시 청량리동)씨는 “평소 역사기행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몇해 전 과천 추사 박물관과 진도의 운림산방 등 추사의 흔적이 있는 곳을 찾기도 했다”며 “제주에 와 추사관까지 찾으니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라고 기뻐했다.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추사는 34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참의·형조참판을 거치며 탄탄대로의 삶을 살다 세도정치의 틈에서 화를 입어 1840년부터 제주에서 8년 3개월 간 귀양살이를 했다. 제주추사관은 다채로운 전시품을 통해 그런 그의 굴곡진 삶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 매력적인 공간이다. 
 
제주 추사관 야외에 세워진 추사의 동상.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 야외에 세워진 추사의 동상. 최충일 기자

제주추사관은 3개의 전시관과 추사기념홀, 교육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하 상설전시관에 전시된 100여점의 유물 대부분은 기부를 받아 전시되고 있다. 수많은 전시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세한도'다. 추사가 제주 유배 중일 당시 제자인 우선 이상적이 책을 보내준 데 대한 보답으로 그려준 그림이다.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거칠게 표현된 황량한 분위기는 발문에 쓰여 있는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가 늘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구절에 잘 어울린다. 제주추사관의 ‘세한도’는 일본 추사 연구가가 1939년 복제해 만든 영인본(影印本) 100점 가운데 한 점이다.
 
전시관에서는 유배시절 추사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지인들에게 쓴 편지도 볼 수 있다. 당시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철저히 고립된 유배지였던 제주에서의 생활이 어려웠음을 토로하는 내용이 많다.
 
추사의 편지를 본 성윤희(23·서귀포시 중문동)씨는 “추사가 이웃 청나라에 알려질 정도로 당대의 대학자였던 만큼 그의 인생이 궁금했다”며 “평소 살던 환경과 다른 제주로 귀양왔던 만큼 제주살이가 녹록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어 가슴이 아프다” 고 말했다.
제주 추사관 전시실은 지하에 있지만 원형의 창 등을 뚫어 자연광을 충분히 활용해 어둡지 않다.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 전시실은 지하에 있지만 원형의 창 등을 뚫어 자연광을 충분히 활용해 어둡지 않다.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 전시실은 지하에 있지만 원형의 창 등을 뚫어 자연광을 충분히 활용해 어둡지 않다.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 전시실은 지하에 있지만 원형의 창 등을 뚫어 자연광을 충분히 활용해 어둡지 않다. 최충일 기자

제주추사관의 전시실은 지하에 배치됐지만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늘이 뚫린 천장을 설계해 자연채광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했다. 관람객들이 건물 입구에서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 2개 층이 뚫려있는 전시실인 ‘추사 홀’을 거쳐 추사유배지 앞마당으로 연결된 지상으로 나오도록 설계됐다. 전시실 동쪽 벽에는 세한도의 초가에 뚫려 있는 원형 창을 재현했다.
제주 추사관 옆 추사유배지는 집주변을 가시 울타리로 둘러 당시 추사에게 내려졌던 위리안치 형벌을 재현했다.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 옆 추사유배지는 집주변을 가시 울타리로 둘러 당시 추사에게 내려졌던 위리안치 형벌을 재현했다. 최충일 기자

 
전시관 출구를 따라 나오면 초가집으로 지어진 추사의 유배지를 둘러볼 수 있다. 제주유배 당시 추사에게 내려진 형벌은 형벌은 ‘위리안치(圍籬安置)’로 집 주변을 가시울타리로 둘러 집 안에서만 기거해야 하는 중형이었다.  
추사관 야외에 있는 유배지에는 추사가 제주 청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모습이 재현돼 있다. 최충일 기자

추사관 야외에 있는 유배지에는 추사가 제주 청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모습이 재현돼 있다. 최충일 기자

 
정낭(제주 특유의 대문)안 추사가 거주하던 집에는 추사가 마을 청년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던 모습을 재현해 놨다. 추사에게는 문하생이 많아 '추사의 문하에는 3000의 선비가 있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추사는 제주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추사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책을 직접 구해줄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박대성(45·용인시 상갈동)씨는 “가시덤불에 싸여 살면서도 후학 양성에 힘썼다는 대목에서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며 “초등학교 3학년 딸과 함께 왔는데 그런 모습을 딸이 보고 본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추사관은 최근 개관 8주년 특별기념전을 열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추사관은 최근 개관 8주년 특별기념전을 열고 있다. 최충일 기자

한편 제주추사관은 개관 8주년을 맞아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3개월간 추사관 개관 8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장무상망'(長毋相忘)을 연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도내외 5개 기관 소장 유물을 대여해오는 등 추사의 대표작 40여 점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리로 마련됐다. 제주추사관 관계자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 이는 사전에 문화해설사와의 탐방을 예약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제주 추사관. 최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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