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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병든 아빠 선물로 술·담배 사주라고 한 까닭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3)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련다.
 
아들 내외는 해외에 있다. 혼자서 자수성가한 아이라 늘 ‘그대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지’ 모를 엄마가 된다. 힘든 일을 겪으며 혼자 성공한 아이는 좋은 곳을 구경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늘 부모 생각을 먼저 하는 것 같다. 내가 주위를 둘러봐도 고이고이 길러 발바닥에 땀이 난 적이 없이 살아온 자제나 부잣집 자제는 부모 생각을 그만큼은 안 하는 듯하다. 
 
그런 이유로 우리 아들은 해외 동포지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각별하다. 결혼 후 아내와 엄마가 살아 계실 때 세상구경 시켜드리기로 약속했는지 해마다 해외여행을 보내줬다. 며느리에게 “너희만 잘 살아 주면 그게 효도다”라고 사양하니 “우린 잘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다리 힘 있을 때 함께 구경해요. 기회는 아무 때나 안 온답니다”라며 여행 스케줄을 적어 보내줬다. 남편과 나는 그날부터 벌렁벌렁 뛰었다.
 
아들 내외,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 보내줘 
해외에 있는 아들 내외는 해마다 해외여행을 보내줬다. 그 때마다 우리 부부는 비행기 티켓을 사서 비행기에 오르는 날까지 짐을 풀었다가 쌌다를 반복하며 티켓팅 연습을 하곤 했다. [중앙포토]

해외에 있는 아들 내외는 해마다 해외여행을 보내줬다. 그 때마다 우리 부부는 비행기 티켓을 사서 비행기에 오르는 날까지 짐을 풀었다가 쌌다를 반복하며 티켓팅 연습을 하곤 했다. [중앙포토]

 
며느리가 그렇게 마음먹은 이유는 결혼 전에 친정 부모님 여행을 보내주려고 돈도 모으고 계획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날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때 느꼈다고 한다. 계획보다는 행동과 실천이 우선이라고.
 
그런데 문제는 패키지가 아니고 아들 부부를 중간에서 만나 함께 여행하는 것이었다. 그날이 다가오면 우리 부부는 비행기 티켓을 사서 비행기에 오르는 날까지 몇 날 며칠을 짐을 풀었다가 쌌다를 반복하면서 티켓팅 연습을 하곤 했다. 처음 여행 때엔 미리 인천공항을 답사했던 때도 있었다.
 
자식이 가난하고 모자라는 부모를 챙겨주니 그 행복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들 자랑이다.
 
아들은 고지식하기가 제 아비 닮아서 좋은 말로는 바른 생활하는 사내지만, 흉을 보자면 앞뒤가 꽉 막힌 불통이다. 한번은 태국에서 만나 여행하는데 술을 좋아하는 남편은 아들 잔소리를 피해 미리 팩으로 된 소주와 담배를 가방의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넣고 보따리를 쌌다.
 
그런데 이틀이 채 안 돼 아들 몰래 먹던 술이 똑 떨어진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만 모든 밥상의 오른쪽에 차지하는 한 잔의 술도 남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인데 그것이 떨어졌으니 호텔 내 냉장고에 든 모든 술이 그 빈자리를 대신했다.
 
그게 엄청 비싸다는 것쯤은 알았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아빠 술값이 문제가 아니고 아빠 건강을 생각해 술을 드시면 절대 안 돼요. 대신 음료수로 채워 놓으라고 할 테니 그걸로 드세요.” 술을 마시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음료수가 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한 잔 술이 없는데 오성급 호텔의 수영장이 눈에 찰 것인가, 풍경이 눈에 보일 것인가. 아무것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 남편은 방에서 누워 말도 안 통하는 텔레비전만 이리저리 돌려댔다.
 
여행에 와서 술이 떨어져 속상해하는 남편에게 아이들 몰래 술 사러 가자고 제안했다. [중앙포토]

여행에 와서 술이 떨어져 속상해하는 남편에게 아이들 몰래 술 사러 가자고 제안했다. [중앙포토]

 
멀리 여행 와서 갑자기 측은지심의 마음이 발동했다. “여보, 우리 아이들 몰래 술 사러 갈까”하니 “네가 길도 모르면서 어떻게?” 한다. “일단 나가보자.” 남편은 해병대 일병의 정신이 번쩍 든 모습으로 나를 따라 나왔다.
 
혹시 길을 잃으면 안 되니 호텔을 안고 우측으로만 돌고 돌아 온갖 편의점을 다 다녀도 소주가 없었다. 아니 있다 해도 글을 알아야 사든가 하지. 그렇게 몇 바퀴를 돌다 보니 우리가 묵은 호텔은 한국의 큰 호텔처럼 면세점도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더니 바로 옆에 있네. 하하하~” 둘이서 진열된 위스키와 보드카를 모두 면접하고 그중 가장 인물이 좋은 놈을 들고는 계산대 앞에 서기 전에 남편에게 다짐을 받았다. “이거 센 거니까 정말 조금씩 병아리 눈물 만큼씩만 먹기야~ 알았제?” “당연하지 누가 사 주는 건데. 흐흐흐.”
 
혹시나 비상시에 쓰라며 아들 내외가 준 그 나라 지폐로  계산하니 남편은 어느새 사뭇 흥분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보드카가 내일도 아니고 모래도 아니고 귀국하는 날, 그것도 인천공항에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래도 마누라가 생면부지의  동네를 헤매며 남편을 위해 술 찾아 삼만리를 한 정성에 감동했는지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술을 안 찾고 지나갔다. 그날 남편은 내 손을 부여잡고는 “나는 사는 날까지 울 마누라한테 정말 잘 할끼다”라며 맹세 아닌 맹세를 하기도 했다. 
 
나이 들자 엄마를 이해한다는 아이들 
간암 걸린 남편에게 술과 담배를 선물로 사오라고 한 나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한다는 아이들. [사진 pixabay]

간암 걸린 남편에게 술과 담배를 선물로 사오라고 한 나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한다는 아이들. [사진 pixabay]

 
아이들이 집에 올 때마다 나는 간암 걸린 아빠의 선물로 술과 담배를 사 오라고 했다. 그렇게 아빠가 술을 못 먹게 바가지를 긁으면서도 사 오라고 한다며 핀잔을 주던  아이들이 나이가 들자 이제는 이해가 된다고 말한다.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못 먹게 하는 엄마의 잔소리는 별개라는 것을.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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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